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녀들에게 쉼 있는 인생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믿고 쉼 있는 삶을 누리고 계신가?
쉼 있는 인생이란,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이
마음이 평안하고 잔잔한 기쁨이 넘친 삶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삶을 누리고 계신가?
아니라면 예수님의 약속이 거짓인가,
아니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거짓인가?
어느 것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당신의 곤혹스런 표정이 떠오른다.
그래서 필자가 대신 말씀드리겠다.
당신네 교회의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말이다.
아니라면 당신의 삶에서 이를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우리네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행사가 예배의식을 시행하는 것이다.
새벽예배를 포함해서 대략 일주일에 열 번도 넘는 예배의식이 드려지며,
모든 교인들은 이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종용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네 교회의 예배의식이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면,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이 죄다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면서,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는 것이 예배의 삶이다.
그게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배의 삶이 없이,
종교의식에 참석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특히 예배의식에는 헌금시간이 꼭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없거나 생계에 지장을 초래하는
과도한 헌금을 내야하는 것도 팍팍한 인생의 요인이다.
또한 많은 시간을 예배의식에 참석하면서
영혼이 쉬지 못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한 교회의 조직을 지탱하기 위한
각종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대형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조금 낫겠지만,
개척교회나 소규모의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성가대, 교사, 구역장 등 여러 개의 직책을 중복해서 맡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주일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토요일이나 평일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야 한다.
특히 휴가철이면 교회 수련회행사와 겹쳐서,
봉사를 열정적으로 하는 중견교인이라면
가족들과 휴가를 다녀온 기억조차 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매년 교회마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 이에 참석을 종용받거나,
특히 전도를 강요받는 경우가 심각하다.
전업주부이거나 직장이 없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에 부응하지 못해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게 된다.
사정이 이러니 어떻게 쉼 있는 인생을 누리겠는가?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 땅에서의 봉사행위가
천국에서의 상급을 얻는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예수님이 약속하신 쉼 있는 인생인가?
이 땅을 떠나 천국에 들어가면 얻게 될 것이라면,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꺼내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시간이나 재능을 투자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좀 낫다.
과도하게 돈을 헌금을 요구하는 교회가 널려 있다.
십일조는 물론이고, 각종 헌금명목을 만들어서 드려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특히 교회건축을 하거나 리모델링 등,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면
교인들에게 갹출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은행대출에 보증을 서게 하는 교회도 있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헌금을 드리는 성경적인 원칙은 자발적이고 은밀하게,
기쁜 마음으로, 재정적인 능력의 한도 내에서 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담임목사는 교인들의 재산을 탈탈 털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이런 교회에 다니면 어떻게 쉼 있는 인생을 누리겠는가?
그래서 하다하다 못해 숨을 곳이 많은 대형교회로 떠나거나,
아예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날이 갈수록 가나안 교인(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이 많아지는 것도,
이렇게 탐욕스런 목회자들의 횡포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더 이상 교회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거나 소극적인 신앙생활로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교회에 몸담고 있는 교인이라면,
재산과 시간과 에너지가 탈탈 털려서 빈 쭉정이가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쉼 있는 인생을 주신다는 약속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당신 안에 찾아오셔야 한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앙방식으로
쉼 있는 인생을 얻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누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네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를
가장 열정적으로 하는 이들이 목회자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쉼 있는 인생을 누리고 있는가?
자신들도 누리지 못하는 인생을
평신도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래도 필자의 주장이 믿기지 않는다면,
종교의식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 신앙의 선배들을 찾아보라.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다.
그들은 성경을 암송하고 600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새끼라는 책망을 듣고 지옥 불에 던져졌다.
그들이 해왔던 신앙행위는, 모세가 직접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 하는 종교의식과 신앙행위들은 성경에도 없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율법을 지켰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그 행위의 속내와 목적과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못해서 지옥 불에 던져졌는데,
성경에도 없는 종교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우리네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교회에서 시키는 것들을 하면 할수록,
삶이 더욱 핍절되고 영혼이 건조해지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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