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한밤의 울음 소리

007 RAMBO 2019. 5. 30. 06:48

"국물을 통 안 먹던 아이였는데, 요즘 국을 그렇게 찾아요.

알고보니 혼자 방에서 그렇게 많이 울었다고 하더군요.

요즘 방문을 닫아놓고 늘 울고 있어요.

왜 우느냐고 물어도 자기도 모르겠데요.”


딸의 문제 때문에 외래를 찾은 한 어머니의 호소이다.

“요즘 사실 그렇게 슬픈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전에는 이보다 휠씬 더 답답하고 힘들 때도 울지 않았어요.

전 참 눈물이 없었어요.

그런데 왜 요즈음 나도 모르게 마구 울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차츰 상담을 진행하면서 이 학생이 어렸을 때

특별히 아버지에 대해 강한 적개심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남성에 대해서도 같은 감정을 가지고

기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을 가게 되고 여러 기회를 통해

자주 이성을 접하게 되면서 이러한 감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자신에게 집요하게 접근해 오는 남학생이 생긴 후부터 더욱 그러했다.

그럴수록 이 학생은 더욱 의도적으로 남자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하고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결코 부인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미움의 감정이 이를 감출 수 없어

그 사랑을 찾고 싶은 마음이 눈물로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


사랑을 찾고 싶은 눈물!

이제 그 학생은 건강한 사랑을 향해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스럽기는 하였지만 무척 아름다운 출발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울어야 할 때에 제대로 울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눈물이 없는 사람들은 사랑이 없고, 마음도 차갑게 닫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감정 찾아가며 도대체 울 틈이 어디 있어?

난 그런 사람 보면 참 한심해 보여!"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한번은 중년의 평범한 한 직장 남성을 호흡기 내과로부터 의뢰받아 상담을 하게 되었다.

3년 전부터 이맘 때면 꼭 천식이 밤중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계절과 관계된 알레르기 천식으로 생각되어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감정의 상태에 따라 증상의 기복이 심하다고 하여 정신과에 의뢰된 경우였다.


환자의 어머니는 무척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셨다.

대신 아버지는 다소 우유부단한 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런 면을 늘 원망하며

아들에게 너는 이래서는 안 된다’며 더욱 강하게 교육시켜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환자는 어머니의 이러한 기대를 채울 자신이 없어

늘 열등하고 위축된 마음으로 지내왔다.


대학을 들어가면서는 드디어 폭발하듯 어머니에게 반항하게 되어

그때부터는 마치 청개구리처럼 어머니가 원하는 길의 반대로만 살아왔다.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전공과도 관계없는 이일 저일을 벌여 놓으면서 살아왔다.


하는 일마다 끈기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아버지처럼 온전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자신있게 사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미워하는 아버지처럼 사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어머니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직장을 갖고 비교적 착실하게 살아가면서

어머니를 서서히 만나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도 자식을 다시 보지 않겠다던 마음을 돌이켜

자식을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4년 전에 돌아가셨다.


거의 45년 만에 찾은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이었고

이제는 어머니와 화해를 하고

그동안 못한 효도를 하며 살아갈 것을 기대했던 환자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45년간 갈구해 왔던 어머니의 사랑을 이젠 더 이상 억누를 길이 없었다.

‘어머니’ 하고 큰소리로 부르고 싶고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더 이상 옆에 계시지 않았다.


환자가 이 마음을 드러낸 것은 상담을 통해서였다.

환자는 자신이 이러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단지 마음이 우울하고 답답한 것만 느끼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실컷 울고 싶었으나 울 수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심한 죄의식이 이를 더욱 가로막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몸이 대신 울고 있는 것이다.

한밤의 천식 소리는 바로 환자가 어머니를 찾아 울고 싶은 바로 그 소리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때쯤이면 매년 환자는

그 천식을 통해 어머니륜 찾으며 곡(哭)을 하고 있었다.


때론 원래의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표현해 주지 못할 때

몸이 이를 대신 말해 주기도 한다.

마음과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에서 하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신경성이다. 꾀병이다' 하며 넘겨버릴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 마음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무척 의미가 깊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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