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렇게 하면 아빠가 칭찬해 주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말도 없으셨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빠에게 얘기하기도 싫어졌어요.”
우리는 이와 같이 우리의 기대가 허물어질 때,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화가 나고 답답하며 슬퍼진다.
미래를 예상하고 기대하는 일이 우리에게 없다면
세상은 무척 삭막할 것이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래도 미래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유일한 창구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이래도 몇 년 후면 자식이 어떻게 되고, 남편이 어떻게 되어 좋아질 것이다.
지금은 비록 비좁은 이곳에서 작은 월급으로 살지만 말이다.’
참으로 위로가 된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들이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럴 리 없어. 잠깐 지나가는 것이겠지!’
이렇게 우리는 부인하려고도 한다.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그 기대 때문에 실망과 좌절이 큰 경우도 있다.
"선생님. 제가 그렇게 답답해하고 어려웠는데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계셔서 전 얼마나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는지 몰라요.
선생님이 자상하게 하나하나 캐물어주고 조언을 주실 줄 알았어요.
상담을 마치고 나가면서 깜깜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었는데...
그런데 다음 시간, 이 환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타났다.
"제가 왜 그처럼 어려웠는지 알 것 같아요.
왜 그렇게 간단한 것을 그동안 몰랐을까요?
이것을 알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쁜지 모르겠어요.”
이 환자는 결국 예기치 못한 실망을 통해
자신의 중요한 문제를 깨닫게 된 셈이다.
그 환자가 발견했다는 사실은 이러하다.
“전 제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늘 자신감 없이 살아왔지요.
그런데 저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환자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담자를 의지해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담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이 기대가 채워지는 한 그는 늘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살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무너지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미래를 향한 꿈이나 누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에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와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문제를 감추고
덮어두기 위한 도피적 기능을 가질 때도 있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기대인 경우 더욱 그렇다.
진정하게 현실을 바로 보고 그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으로 진정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예상이나 기대를 한 경우들이다.
우리는 흔히 기대할 때, 나는 기대할 권리가 있고
상대는 나의 기대를 채워 줄 의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기대가 허물어졌을 때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원망한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이해할 겨를도 없이
그 감정에만 빠져 있게 된다.
나 자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닌지,
얼마나 나의 기대를 상대방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했는지,
표현했다면 그 표현 방식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당연히 해야할 것을 남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이러한 여러 가지를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나와 상대방에 대해 더욱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이해를 통해 상대방과 자신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어쩔 수 없이 좌절하고 놀라지만
그것은 그 좌절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와 현실, 그 상대방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깨어지는 꿈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꿈도 없고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으며,
오직 믿는 것은 현실과 지금의 나 뿐’ 이라는
냉혹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를 기대하고 믿어주어야 한다.
미래에 대해서도 꿈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기대와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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