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나 대신 앓고 있는 사람

007 RAMBO 2019. 5. 2. 01:17

사람들은 사람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몇 가지 속성을 통해 평가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

어느 동네에 살며, 어떤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어느 대학을 졸업했다는 등의

몇 가지 사실들로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다.


이러한 평가는 병을 앓는 데서도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기왕 병을 앓을려면 좋게 평가받는(?) 병을 앓아야지

괜히 좋지 않은 병으로 자기를 나쁘게 평가받는 것을 싫어한다.


대개 가벼운 알러지, 불면증, 당뇨, 고혈압 등을 앓고 있는 경우

병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는 남에게 뭔가 문화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얘기하기 어려운 병이 있다.

즉, 생식기에 관한 병, 간질, 정신지체 및 정신질환 등이 그것이다.

이런 병들로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나쁘게 평가하는 문화적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른 병은 제쳐놓고 우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신경성 혹은 정신질환이라면 왜 환영받지 못할까?

대개 아프면 동정이라도 받는데 이러한 병을 앓으면

우선 동정보다는 약간 천시받는 듯한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래서 이 병을 앓는 사람이나 그 가족들은 그 병 자체의 고통에다

이러한 문화적인 편견으로 인한 이중적인 고통을 받는다.

편견의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대개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조절할 수 있어야 안심한다.

자기의 조절권 밖으로 벗어날 때 인간은 무척 불안해 한다.

생각, 감정, 행동 및 모든 사회 활동 등이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와 그 조절 속에서 진행되어야 안심한다.


가끔 어린이 공원에서 자기가 조절할 수 없는

초스피드의 청룡열차를 탈 때 무척 불안해 한다.

운전을 해 본 사람이면 가끔 경험하지만

자기가 운전석에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을 순간 경험할 때 극도로 당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 자신의 정신도

자신의 조절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산다.

물론 이러한 불안은 무의식적이다.

심한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중에서는 '이러다가 내가 정말 미치는 것이 아닌가?

아주 나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자신을 무척 억누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억압과 불안은 단지 불안증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인들에게도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 조절을 못 하고 정신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즉 정신질환지를 보면 그들을 잠재적으로 경멸하고 멀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억압과 불안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고자

우리는 코메디나 농담 등을 통해 정신병자의 행태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역으로 즐기기도 한다.


둘째, 정신질환을 두려워 하는 이유로서

그것이 대개 만성질환이고 때로는 평생 못 고치고 폐인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치료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함으로서 생기는 약물의 습관성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물론 정신질환 모두가 만성질환은 아니다.

급성으로 며칠 만에 혹은 몇 주 만에 정말 완전하게 치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만성으로 빠지기도 한다.

정신질환이 모두 만성질환은 아니나 그 일부에서 만성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는 무척 중요하다.

무조건 이를 두려워 하고 피해야만 할 대상은 아니다.


왜 일부 정신질환은 만성으로 가며 이 경우 어떻게 대처하고 치료해야 할 것인가?

급성시 치료를 잘못하면 모두 만성으로 진행되는 것인가?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결국 만성화되는가?(물론 이 경우는 결단코 그렇지 않다.)


먼저 정신질환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발생되는 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신질환은 그 원인과 발생 경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가 심리 및 환경적인 원인이고 둘째가 뇌의 기능적 장애에 의한 것이다.

대개 두 가지가 중복되기도 하고 어느 하나가 우세하게 작용되어 발생되기도 한다.


정신질환은 물론 일시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성격적인 면이나

과거 성장해온, 혹은 경험해 본 과정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현실적인 스트레스란 발병의 구실이 되어줄 뿐,

더 중요한 원인은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경험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과거에 인정, 관심, 사랑을 받지 못함, 배척, 상실, 이별 등의

쓰라린 경험들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이러한 상처를 보상하고 의식에 느끼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방어해오다가

이것이 잘 되지 않거나 그 상처가 다시 자극이 되는 경우 정신질환이 발생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상처를 받지 않고 자라난 사람은 없다.

또 상처를 심하게 받았다고 반드시 정신질환으로 빠지는 것은 아니다.

처를 받았다고 반드시 그 상처를 다시 꺼내어 회복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사람은 이를 깊은 곳에 숨기고 억누르며 산다.

그것을 기억하게 되면 불안하여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 이를 자주 기억나게 하는 스트레스나 사건 등을 경험할

정신적인 불안, 우울 및 신체증상을 앓기도 하나

이럴 때마다 반드시 과거의 그 상처를 꺼내어 치료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그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시 그 상처가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현실적인 처방이나 시간의 흐름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큰 경우이거나 상처는 크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이를 해결할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경우이다.

이럴 때는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대개 정신질환을 치료할 때 가족들은 의사가 약물이나

어떠한 특수치료로 환자를 치료해 주기만을 바란다.

혹은 환자에게 문제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시간이 지나면 치료될 것으로 기대한다.


환자가 자신들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아 병이 생긴 것을 부인하거나,

인정하더라도 말로만 그렇다고 인정할 뿐 진정 그들이 변화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변화되지 않고 환자만 치료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 병의 원인인 자신들이 변화되거나 치료되지 않고서

환자만 끌고 와서 치료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 그 병은 치료되지 않는다.


환자가 그 가족의 희생양인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문제가 나머지 가족들에게 더 많은 경우가 있다.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더욱 더 환자의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자신들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왜 환자가 변화되지 않느냐고 따진다.

그래서 정신질환은 치료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만성질환이 되고 만다.


모든 사람이 같은 환경에 놓여있다고 해서 같은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정신분열증, 우울증, 불안장애, 알콜중독증, 신체적 장애 및 성격장애 등의

각각 다른 정신질환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아무런 정신적 장애 없이

이를 소화시키고 더욱 건강해지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환경적 요인이나 가족관계의 영향력 이전에

자신에게 내재된 기질적인 문제가 선행된다는 이야기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정신질환의 이러한 기질적, 생물학적 발생요인에 대해 연구해 왔다.

정신질환증의 경우 특히 어떤 이유에선가

전두엽의 뇌기능이 다소 떨어진 경우에 많이 나타날 수 있으며

우울이나 조증의 경우 생체리듬의 장애가 선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체질적으로 키가 크고 마르거나 비대한 사람이 있듯이

뇌기능이나 생체조절 기능이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으며 어떤 면에 장애가 먼저 있다가

이를 유발시킬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부가되면 정신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이나 발생과정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어렵다.


체질적인 조건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 장애를 도와준다. 결코 그 장애를 그 사람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정신질환을 '네가 못나서 그렇다.

다른 형제들은 같은 환경에서도 멀쩡한데

너만 책임감이 없고 철이 없어서 그렇다.’는 등

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

가족중 그 누구 때문이다. 자기 팔자다.’ 라는 등 원망과 한을 터트린다.


이에 대한 좋은 성경 말씀이 있다.

요한복음 9장 13절에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제자들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예수께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대답하셨다.

여기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해답도 역시 얻을 수 있다.


만약 인간에게 통증이 없다면

어느 곳이 아픈 곳인 줄 모르고 있다가

더 큰 병으로 죽고 말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고통은 피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것이지만

인간의 문제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정신질환이란 인간 정신의 고통과 통증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정신적 고통은 그 사람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통은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의 고통일 수 있으며

그들의 문제를 대변하는 신호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람의 정신적 고통을 통해

그 사람들과 관계 되었던 사람들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이 받는 정신적 고통의 의미이다. 즉, 정신질환의 의미인 것이다.

그 사람의 고통은 나를 보는 거울일 수 있다.


한 개인의 신체적 통증은 그 한 사람의 신체적인 문제를 알려 주는 신호일 수 있지만

한 개인의 정신적 고통은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문제를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그 신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이로 인해 우선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그 사람의 정신적 질환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

이를 서로 나누어 가질 줄 아는 태도와 관심이 필요하다.

와 우리는 그대로 있고 환자만 치료하려는 태도는

더 이상 정신질환의 치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정신질환을 향한 하나님의 신비로운 치료방법이다.

나는 그대로 있고 너만을 치료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있는 한,

그 환자는 치료되지 않고 아마 만성으로 언제까지 우리 주위를 멤돌 것이다.

이 경우는 그 사람의 정신질환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

우리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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