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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앙을 회복하라

007 RAMBO 2014. 11. 26. 10:47

필자가 50여 년 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생각난다.

그날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봄이었는데,

엄마가 늑장부리느라고 학교에 조금 늦게 갔다.

 

입학식을 기다리며 운동장에 서 있던 아이들은 우산이 없었는지,

필자의 우산 아래로 우르르 몰려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높이 달린 장대에 16(1학년 6반의 뜻)이라고 인쇄된 감색 깃발이

하늘에 펄럭이던 풍경이 가슴에 아련히 떠오른다.

 

손수건을 가지런히 접어 빛나는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처럼,

상큼한 설렘을 안고 교회에 처음 찾아왔던 시절도 있을 것이다.

 

예배당 정면에 커다란 십자가가 걸린, 낯선 교회의 풍경과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던 엄숙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화사하게 웃으며 반가이 맞아주던 집사님들과 성도들 중에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적지 않고,

어디에 사는지 소식조차 끊긴 이들도 많다.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름다운 신앙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처음의 신앙은 시간이 지나서 때가 많이 묻고 변질이 되어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 기대감은 온데간데없고,

예배가 시작되면 잡념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예배가 끝나면 빨리 집에 가서 해야 할 일거리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런 신앙생활을 반복해서

과연 천국에 들어갈 것인가라는 의심조차도 사라진 채,

오랜 타성이 몸에 밴 예배 의식과 익숙한 신앙행위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5~19)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초대교회중의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책망의 말씀이다.

그 책망의 요지는 잃어버린 처음의 신앙을 되찾으라는 말씀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다.

 

초대교회 시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유대교에서 출교당하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의 아랍인들이 이슬람교를 떠난다는 것은

집달팽이가 집을 벗어버리는 것같이 생존이 위태로운 일처럼,

그 당시에 유대교를 버리는 것은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떠나야 했고,

항상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으며,

더러는 잡혀 혹독한 고문 끝에 순교를 당한 이들도 허다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예수를 구세주로 믿은 이들이 바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시간이 지나자 처음 믿음이 변질된 이들에게 혹독한 책망과 함께,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빼 버릴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시다.

 

당신은 어떠한가? 처음 믿음을 굳세게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신앙조차도 없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으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소유를 헌신짝처럼 버리며,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처음 예수님을 구세주를 영접했을 때는

죄다 그런 견고한 믿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자 변질이 되어서 혹독하게 책망을 듣게 되었는데,

당신의 상황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계획, 목적과 속내를 기꺼이 버리고,

그동안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재물과 가족, 명예와 권력까지

배설물처럼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목숨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버릴 각오를 날마다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고? 그게 주일성수를 비롯한 예배의식에 참석하며,

십일조와 교회봉사를 성실하게 하고,

각종 기도회나 전도행사에 참여하고 새벽예배에 나오는 것이라고?

 

아하, 그런가? 그렇다면 그런 신앙행위를 하는 목적이나 속내가 무엇인가?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서 하는 것이라고?

 

오홋, 그렇다면 당신은 훌륭한 신앙인이시다.

그러나 기도할 때 당신이 주절주절 읊조리는 기도목록을 생각해보라.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며, 가족의 번영과 건강으로 채우려는

세속적인 축복만을 주구장창 외치고 있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자신을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로 찾아오는 것이며,

부족한 성품에서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인생관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의 인생관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 속내와 목적으로 주어진 삶을 채우고 계신가?

아니라면, 당신의 영혼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서 양식을 얻어 영혼을 부요하게 하고,

성령의 깨달음을 얻어 부끄러움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마음과 생각, 말과 행위를 깨끗하게 하며,

지금의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처음의 열정적인 사랑을 회복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토하여 버릴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계시다.

 

마지막 종말의 날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은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 되면 이 땅을 떠나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혼을 사랑하셔서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주시고 싶어 하지만,

그 기회를 움켜쥐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목숨을 걸고 예수를 영접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도 가혹한 책망을 아끼지 않은 예수님이,

당신의 가족과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게만 특혜를 주실 리가 없다.

 

지금이라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길 바란다.

미지근한 믿음으로 교회마당만 밟고 다니던 그간의 신앙을 돌이키고,

마음을 찢고 철저하게 잘못을 고백하고 통회하며 회개하기 바란다.

 

그길 만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의 영혼이 사는 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