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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신부들의 등불이 위태롭게 반짝거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복음이 시작되었고 역사는 기원전과 후로 분리되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교회의 시대에서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이제 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기 위하여 역사를 마감시켜야 한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무화과나무 비유의 최종세대가 카운트되었고 이는 징조의 시작이었다 최종 세대의 끝에 이르자 코로나 전염병이 모든 나라에 전염되면서 이동이 봉쇄되었고 이는 1차 파도에 해당한다 우리는 최종 세대(final generation)이자 악의 세대(evil generation)이다 1차 파도의 효과도 대단하여 교회와 선교의 문을 닫게 하였고 짐승의 체제의 등장을 위한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당대 가장 강력한 제국 미국은 대선 후휴증으로 나라를 분열시켰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적그리스도의..

혼란 속의 평안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땅 위에는 폭풍우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높은 곳으로 올라 구름 위에 이르면 그곳에는 비도 폭풍우도 없으며 따뜻하고 평온한 태양의 빛 뿐입니다. 영적으로 낮은 곳에는 사단의 많은 공격들이 있지만 주님의 놀라우신 임재에 가까이 갈수록 거기에는 사단의 공격이 미치지 못하며 오직 평강과 안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깊이 거하는 자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 살면서도 심령 속에서 깊은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원 목사

내적인 진실성을 원한다

내 아들과 나는 어떤 것 하나를 다른 무엇보다 더 가증스럽게 여긴다. 뭔지 알고 싶니? 종교야. 나는 종교를 싫어해! 나는 모든 자녀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와 친밀하게 관계를 맺기를 원해. 그러나 원수 사탄은 내 자녀들을 종교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종교는 사람들을 속박해. 반면 친밀한 관계는 성취의 노예가 아니라, 내 아들과 딸로서 풍성한 생명의 삶을 사는 자유를 낳지. 내 아들이 이 땅에서 사역하는 동안에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바리새인들에게 더 화낸 까닭은 그들이 부정직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사실 사악한 사기꾼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을 거룩하게 봐주기를 원했어. 나는 내적인 진실성을 원한다. 나는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너를 창조했다. 내 뜻대로 해주겠니? 종교적인 사람이나 영적인..

불순종에 대한 대가

내가 네게 은사나 재능을 주면 그 은사나 재능이 언제나 네게 머문다. 나는 네가 소명과 임무를 잘 감당하도록 기름을 부었다. 네가 내가 지시하는 방식대로 영적인 은사를 쓰지 않더라도 은사는 효능을 나타낼 것이다. 내 자녀들의 유익을 위하는 내 관심 때문이다. 나는 자녀들이 너의 은사를 통해서 유익을 얻기를 바란다. 내 아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주려고 지팡이로 바위를 쳤던 때를 기억하니? 사실 나는 바위에게 명령하라고 모세에게 지시했다. 그런데 모세가 불순종했지. 그렇지만 내 백성들에게는 물이 필요했고, 그래서 나는 내 능력이 모세를 통해서 나가게 허락했다. 나는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준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개인적으로 불순종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내가 그를 위해 계획한 미래를 맞..

내가 네 모든 것의 공급자이다

내가 물질적인 번영을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이 많다. 사실 나는 물질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법을 아는 자녀들에게 물질을 주기를 좋아한다. 아브라함과 욥은 물질적으로 부유했고 다윗도 그랬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물질이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물질을 우상으로 섬길 뿐 아니라, 결국에는 궁극적으로 신뢰하고 신임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때문이지. 그런 경우에는 내가 물질을 제거해야 그들이 구제받는다. 따라서 그들의 삶에서 물질을 제거하는 나의 역사야말로 그들을 위하는 내 은혜이다. 너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 너는 지금 물질의 속박에서 풀려났어. 사탄이 네 삶에 세운 그 "견고한 진"(고후 10:4)에서 해방된 이후에 정말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지. 너는 나를 네게 필요한 모든 물자와 방편들을 채워주..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가장 미운 사람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살면서 구질구질해지거나 비참해지는 일을 웬만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 모든 일들이 그 때부터 시작이다.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어렵사리 마음의 틈을 조금 열어 보이는 순간, 혹은 서서히 내가 아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늘어가는 그 지점에서부터다. 설레임과 기쁨은 계절이 바뀌고 나면 서서히, 때로는 예고 없이 나를 무릎 꿇리고야 만다. ‘너 그동안 많이 즐거웠지?’ 하며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최고의 감정과 최악의 감정은 이어져있다. 사랑에 관한 짓궂은 모순은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

우리는 모두 관심을 먹고 자란다

100일을 갓 넘긴 아가는 타인의 존재를 알아간다. 옆에 앉아 지켜봐주면 즐겁게 놀다가도 엄마가 없으면 칭얼댄다. 술래잡기처럼 함께하는 놀이를 하는 게 아니라 단지 모빌을 보며 발차기를 할 뿐인데도 말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느낌인 게 확실하다. 아이는 그렇게 타인의 관심을 먹으며 자란다. 모두가 그렇게 자라났다. 어른이 된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많은 행위의 동기에는 언제나 타인의 관심이 있다. 옷에 신경을 쓰는 것이나 폼나는 자동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루종일 집에 혼자 있으면 잘 차려입을 필요도 없고, 아무도 만날 일이 없다면 굳이 자가용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관심종자’라는 신조어가..

내가 때를 늦추는 까닭

내가 때를 늦춘다고 해서 전혀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 아들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지냈을 때 나는 모세와 내 백성들의 해방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내 아들 요셉이 감방에서 홀로 지냈을 때 나는 세상을 구하는 임무를 감당하게 준비시키는 중이었어. 내 아들 요한이 밧모 섬으로 추방당했을 때 나는 미래의 세상에 관한 나의 환상을 받도록 준비시키는 중이었고. 너는 내가 때를 늦출 때 시간낭비로 여기겠지만 나는 준비로 간주한단다. 오븐에서 빵을 너무 빨리 꺼내거나 늦게 꺼내면 안 되듯이, 나는 모든 일들을 완벽한 시점(timing)에 행한단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 31:15)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점진적으로 심화되는 테스트

네 소명이 클수록 나는 더 큰 희생을 요구하고 더 어렵게 테스트한다. 이런 과정이 나를 향한 네 사랑과 헌신의 깊이를 드러낸다. 너는 언제나 소명의 깊이와 넓이에 비례해서 역경과 테스트를 받는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역사의 그 누구보다 더 많이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내 아들은 예외로 해야겠지. 아브라함의 소명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소명이었기 때문이야. 나는 아브라함을 신뢰해도 괜찮은지 알고 싶었다. 나는 아브라함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나에게 순종할지 심지어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나에게 순종할지 확인해야 했어. 나는 어떤 자녀에게 큰 목표를 맡기면 더 많이 요구한다. 더 많은 헌신과 믿음과 희생을 요구하지. 물론 너는 하루아침에 나의 요구를 다 감당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내가..

큰 나무로 자라가려면

너는 내 나라와 세상 나라의 차이를 계속 배웠다. 네가 그 두 나라의 차이점에 관하여 배운 기쁨은 단지 그냥 '행복한' 기쁨이 아니라 네 영혼 깊은 곳에 거하는 기쁨이란다. 그 기쁨은 내 아들이 이 땅에서 일할 적에 얻은 기쁨과 마찬가지로 고난과 슬픔에서 나온 기쁨이고, 값비싼 희생을 달게 받는 순종에 뿌리내린 기쁨이지. 엄청나게 가혹한 시기에 찬양을 드리면 그런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견디기 힘든 고통속에서 찬양하면 나의 임재를 체험해. 영혼의 깊은 고뇌를 통해서만 체험 가능한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임재이지. 너는 그러한 나의 임재를 체험해보았어. 그런 체험이 무엇인지 너는 알아.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 그런 기쁨을 계속 맛보면 나의 의(義)의 나무로 성장할 것이야. 나무는 성장에 필요한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