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삶이 아니라,
매 순간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삶이다.
즉 생명 나무에 속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누가복음에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예수님이 한 촌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줄곧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열심히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이런 태도에 불만이 생겼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눅 10:40).
여기에서 나타난 마르다의 태도는
행위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섬기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르다가 일로 분주했다는 부분을 주목해 보라.
분주한 마음으로는 예수님에게 집중할 수 없다.
마르다는 무엇 때문에 분주하여 예수님에게 집중하지 못했는가?
예수님을 잘 대접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섬기는 일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아마 마르다에게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1-42).
마리아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
마리아는 좋은 것, 즉 예수님 안에 거하는 편을 택했다.
이것이 섬기는 일을 무시한 것인가?
예수님이 마리아와 함께 있다가 마리아에게 목마르다고 속삭였다면,
마리아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 단숨에 일어나 물 한 컵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한편 마르다는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졸립지도 않은데 잠자리를 준비하느라고 바빴다.
거듭 말하지만, 내 말은 섬김의 가치를 악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섬김이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느라 항상 바쁘다.
우리는 온갖 봉사활동으로 교회에서 분주하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한 그 모든 충성으로 섬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갈급함과 허전함이 남는다.
무언가 빠져 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이
예수님의 인격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생명 나무가 없다.
율법적인 삶은 우리에게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 사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을 느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율법주의다.
은혜는 나에게 스스로 하고 싶다는 소원을 불러넣는 반면,
율법은 결코 만족을 주지 않는다.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은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행위로 판단한다.
그러나 행위란 언제나 부족한 법이다.
행위를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성경을 하루 두 시간 읽는 사람에게
'하루 24시간 중 겨우 그 정도밖에 읽지 못하느냐' 고 말할 것이다.
하루 한 시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기도할 수 있는데
겨우 한 시간밖에 기도하지 못하느냐' 고 말할 것이다.
이들이 전도할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같은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매사에 이렇게 행동하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율법에 사로잡혀 살아갈 동안은
우리에게 만족함이란 결코 없다.
나는 결혼한지 23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아내에게 얼마나 입맞춤을 해야 하는지,
네 명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몇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사랑을 겉으로 표현하는 행위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명 나무에 속한 인생을 살 때,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가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은혜는 아무렇게나 편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께 마냥 기대어 무책임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
은혜의 삶' 이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이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는 것이고
그런 삶이 바로 기적의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어떤 기적을 행하실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 동료를 사랑하는
아주 단순한 일일 수도 있고,
세상을 떠들석하게 할 만한 대단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다.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서 생명 나무로 옮겨 갈 것을 결단하라.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 은혜 안으로 걸어들어가라.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이 당신을 통해 흘러나올 것이다.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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