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빛을 먹고 사는 마음

007 RAMBO 2018. 6. 28. 09:20

몇 년째, 해가 짧아지는 겨울이 되면 찾아오는 환자가 있다.

꼭 이맘 때가 되면 우울증에 빠지는 한 가정 주부이다.

그녀는 올해도 어김없이 외래의 문을 두드렸다.


몸에 기력이 없어지고 주위의 일에 재미를 느낄 수 없으며

하고 싶다는 의욕도 점점 사라진다.

마음은 우울해지고 괜히 슬퍼진다.

행복한 가정이 있어도 나 혼자인 것 같고 고독해 진다.

모든 것이 귀찮아 잠만 자고 싶어진다.


이것이 이 환자가 외래를 찾는 '계절성 우울증' 이란 장애이다.

이 우울증의 원인은 특이하게도 빛이었다.


"겨울이 되면 빛을 더 쬐고 싶어요. 빛만 계속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겨울밤이 되면 집을 아주아주 밝게 해요. 그래야 좀 살 것 같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 애써도 겨울이 점점 더 깊어지면

왠지 모르게 무기력해 지고 우울해져요.

겨울이 싫어요.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이 환자의 고백은 아주 정확한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 충분한 빛만 있다면, 해가 짧은 겨울만 없다면

전혀 우울해 질 필요가 없다. 빛을 상징적으로 느낌으로써

겨울의 쓸쓸함에 빠지는 센티멘탈이 우울의 원인은 아니었다.

빛 그 자체, 빛의 물리적 결손이 바로 우울을 유발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럴 리가 있나 하겠지만 이런 환자가 적지 않다.

아마 겨울이면 괜히 기운도 없어지고 침체되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 을 것이다.

이것이 뭔지도 모르고 몇 년째 그냥 지내는 사람도 있다. 

'병' 이 라 고 인식하지 못할 뿐 적지 않은 사람이 이를 앓고 있다.


특히 햇볕을 보기 힘든 북유럽 사람들에게 무척 많이 발병하는데,

물질적으로 부유한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우울과 자살율이 높은 이유로 일조권의 부족을 꼽고 있다.

미국과 같은 경우, 겨울이면 북쪽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남쪽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로 옮겨 그들의 우울을 예방하기도 하며,

또한 임상에서는 실제로 광선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빛이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작용을 하길래 우울이 발생되는 것일까?

뇌 속에는 신경계와 생체의 여러 리듬을 조절하는 내적 시계가 있다.

생체는 심박동, 호흡, 수면, 여성의 생리 등 여러 리듬을 갖고 있으며,

이 리듬을 통해 생체의 기능을 더욱 효율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한다.

인간의 감정 역시 이러한 리듬에 의해 조절된다.


이 내적 시계는 빛으로부터 중요한 신호를 얻는다.

특히 태양의 빛을 받음으로써 이 시계는 시간을 알 수 있고

그 시간에 따라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자연계의 모든 리듬과 질서를 태양이 조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개 이 내적 시계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는다.

빛에 원천적인 영향은 받지만 스스로의 자율성을 갖고 생체를 조절할 수 있다.

즉 며칠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생체리듬이 붕괴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은 빛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

빛의 양이 조금만 부족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리듬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 우울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빛과 마음의 관계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계절성 우울증'처럼 그렇게 예민하게 빛에 반응하지는 않지만,

마음과 몸을 잘 조절하고 건강한 삶을 갖기 위해서는 적절한 빛이 필요하다.

태양은 자연계의 에너지원인 동시에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도 그 빛에 의존하여 생존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그 빛을 받아 먹어야 살 수 있다.


빛으로부터 오는 신호가 차단될 때

생체의 시계는 무질서해 지고 무절제한 리듬으로 빠지게 되므로

이러한 어두운 면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빛나는 태양의 밝은 빛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가?

어두침침한 방과 흐릿한 날이나 캄캄한 밤만을 즐겨 찾지는 않는지?

우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실제로 건강하게 해 주는 빛을 즐겨 찾는 동시에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비추어 주는 빛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점점 춥고 더 길어지며 캄캄해 지는 겨울밤을 지낼 때면

이러한 빛은 더욱 절실해지고 그리워지는 것이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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