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과 파괴(search and destroy)" 라는
작전 용어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 정글 속에 깊숙이 감추어진
적의 거점을 찾아내어 파괴시키는
미군들의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하는 한
아무리 그 지역을 점령했다고 해도
숨겨진 거점을 기반으로
적이 다시금 역습을 해오기 때문에
또다시 밀려나는 등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충만히 역사하시는 상태가 되었다 해도
그 어느 구석엔가 아직도
적의 견고한 기지가 남아있을 수가 있으며,
이러한 적의 견고한 요새가 구축되어 있는 자는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언젠가 역습을 당해 교란되고,
최악의 경우 패배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이 잔존하는 옛 상태를
견고한 요새로 구축하여
재탈환을 시도하면서 반격하기 때문입니다.
이 견고한 요새는 거듭나기 전까지
사탄의 지배하에서 오랫동안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으므로
파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거듭난 후에도 본능적인
옛 습관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다든지,
여전히 혈기가 살아 있어 발끈한다든지,
신경질을 잘 낸다든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한다든지,
이기심과 교만, 게으름 또는 열등의식 등에
사로잡혀 있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옛 상처와
한이 맺혀있는 것도 견고한 요새입니다.
상처와 한이 남아있으면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계속 미움의 감정에 시달리게 되며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못합니다.
이처럼 견고한 요새가 남아 있어
자유롭게 풀리지 못한 자는 악한 영들이
끈질기고도 집요하게 공격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상당한 곤경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점령지의 적은 물론
아이들과 가축과 전리품까지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너무 비정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죄는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하나님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임을 깨닫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가 가중되면
범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과 후손,
심지어는 그의 가축이나 소유물에게까지도
죄가 침투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전리품을 몰래 취했던
아간으로 인해 이스라엘 족속이
쓰라린 패배를 맛보아야 했고,
마음이 약해져 적의 일부를 남김으로써
그후 잔존하여 내려온 적이 빌미가 되어
결국 곤욕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단 소제하고 수리되었던 집에
다시 악한 귀신이 들어오게 되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악한 영들에게 재점령을 당하면
그만큼 재탈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이처럼 잔존하는
적의 견고한 요새를 알면서,
또는 모르는 채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너무나 많이 보게됩니다.
사실 사람은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또 스스로 속는 약점이 있어서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견고한 요새들을 부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이럴 때 바로
탐색과 파괴의 작전을
실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등불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의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탐색하여
그 견고한 적의 요새를 성령의 인도하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이름과 예수의 보혈로
모두 다 파괴하고 깨끗이 씻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작전을 과감히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마치 각자 앞에 거울을 갖다 대듯이,
우리 자신 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어두운 요새를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요새가 많을수록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잔존하는 요새를 발견하여
과감히 분쇄하기보다는
자신을 그대로 덮어둔 채
무조건 정욕으로 달라고만 기도하니
하나님으로서는 응답할 수도 없고,
크게 사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와 한(恨)은
일생동안 지워지기 어렵고 힘듭니다.
특히 한국 민족에게는
상처와 한이 많습니다.
이러한 한과 상처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속히 성장했기 때문에
그동안 맺혀있던 가난과
고난에 대한 한과 상처가
물질적인 탐욕으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계에서 지적되는 부작용 중의 한 예는
대학진학이 어려워지면서 소명도 없고
자질도 없고 실력도 없는 낙오자들이
임시 돌파구로 신학교를 선택하고,
어쩌다가 졸업하게 되어 목회를 하게 되면
거의 모두 열등의식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역을 하면서도
열등의식을 커버하기 위해
권위주의를 내세우게 되고
결국 교인들에게 더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게 됩니다.
성도 각자는 물론
목회자 및 교계 지도자들이
충분한 성화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외적 팽창에만 힘을 써서
한국 교회가 외화내빈의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홍의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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