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기 교수님의 글입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예수를 알든 모르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그분에게로 가고 싶어하는 욕구가 들어있습니다.
이 욕구를 '믿음에의 욕구'라고 합니다.
믿음을 향한 욕구도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굶주리면 영양실조에 걸립니다.
믿음에의 욕구에 굶주린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자연물을 숭배해오고 여러 신과 종교를 만들어왔습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이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면
병들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믿음을 지향하는 욕구는,
계곡의 맑은 물에서 태어난 연어가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머나먼 길을 헤엄쳐 돌아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산란하고 죽게 된다는 귀소본능과도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본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귀소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귀소본능의 욕구,
즉 믿음에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병이 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의사이자 금세기 최고의 심리학자였던 칼 융은 수많은 환자들
(정신병자, 성격 파탄자, 히스테리 환자)을 치료하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믿음에의 욕구에 굶주려서
병이 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융은 이 욕구를 '영적욕구'라고 부르면서
환자들에게 이 욕구를 강하게 채워줄 수 있는
신앙적인 방법들을 제시해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방법으로 치유된 사람은
병이 전혀 재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서
전 유럽에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믿음에의 욕구를
'신비에의 욕구'라고도 부릅니다.
인간은 이 신비에의 욕구가 충족될 때라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열렬한 유대교 신자였지만
이 신비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비로소 신비에의 욕구가 충족되었고
크고 위대한 사역을 감당해냈습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신비에의 욕구가 올바르게 채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신비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신비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은 신비한 분입니다.
무한한 신비로 가득한 분입니다.
기도, 말씀,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면
거룩한 신비에의 욕구가 충족되어지고
이러한 경험을 하다보면
서서히 변화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눈다고 생각되는 사람
(사실은 그가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도)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앞에서 신비를 느낍니다.
이것은 성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
즉 영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훈련받지 않으면
올바른 신비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사이비 신비에 빠져서 고통당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나 점쟁이들한테
재산을 몽땅 갖다바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허위나 속임수로 가짜 신비의 영양분을 주는 이단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정한 신비를 채워줄 수 없고
결국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교회에서만이 올바른 찬양과 말씀, 기도와 친교로 성도들에게
거룩한 신비의 영양소를 공급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이런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머슬로우는
"세계의 역사를 움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에의 욕구, 즉 신비에의 욕구가 충족된 사람들이었다."
고 말했습니다.
신비에의 욕구가 올바르게 충족된 사람은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신비가 가장 급속하고 올바르게 채워지는 때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와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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