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를 듣노라면 늘 듣는 말이 있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군요.
큰 것을 때릴려고 욕심을 낸 것 같습니다.
힘을 빼야지요.
욕심을 내지 말고 연습하듯이 해야 합니다.”
늘 들어오는 말이지만 상당히 역설적인 데가 있다.
뭔가 잘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강한 의지와 욕심,
그리고 강하게 집중하는 긴장이 있어야 하는데
힘과 욕심을 버려야 큰 것을 칠 수 있다니
알 듯 하면서도 사실 아리송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신경생리학적으로 보면 아주 과학적인 말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스포츠는 짧은 순간에 정확한 판단과 결정,
그리고 이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순발력과 응집된 힘을 요구한다.
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시속 100~150km의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치기 위해서는
공이 투수의 손에서 뿌려지는 순간에
과거 그 투수에 대해 기억된 경험과 정보,
그 상황에 대한 정보가 같이 처리되면서 0.3 초 내에 판단을 내려야 하며,
이와 동시에 각 어깨, 손목, 손끝의 힘과 긴장도를 계산하여
이를 신속하게 말초신경과 근육세포에 전달하여야 한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고속으로 정확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식을 못할 뿐,
그 순간 엄청난 일들이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강한 집중력과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필요한 반면,
뇌 속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능한 그 순간 다른 곳에서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아야지만
순간적으로 뇌가 정확한 계산과 강한 힘을 집중시킬 수 있다.
따라서 욕심을 낸다든지 다른 곳에 힘이 들어가면 그 만큼 에너지가 소모되어
정확한 판단과 강한 힘을 모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우리가 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쉴 새 없이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있지만
필요시 그러한 활동이 중단되고
급하게 요구되는 일에 신속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때로 동원될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의식은 못 하지만 여기저기 정신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고
또한 그것들로부터 종속되어 자유롭게 중단하지 못하는 바로 그런 경우다.
대표적인 예가 완벽주의다.
완벽주의는 모든 일에 꼼꼼하고 빈틈 없이 집중하고 정성을 드린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가 소모되고
때로는 그 일을 중단하지 못해
적시에 필요한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 에너지의 결핍은 만성피로로 나타난다.
사용할 수 있는 자유한 에너지가 그만큼 부족하기에
쉽게 지치고 피곤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감퇴된다.
몸에 기운도 떨어지고 무기력감을 느끼면서
심하면 우울증으로 빠지기도 한다.
정신 에너지는 나이와 생물학적 에너지,
즉 영양과 수면 상태 등에도 많이 의존되기 때문에
특히 나이를 먹어 가고 잠을 깊이 못 자게 되면
이러한 결핍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괜히 피곤하고 정신이 산만한 경우
우리는 그냥 몸이 노곤하고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돌려 버려기 보다는
내 정신 에너지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한번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은행의 잔고에 바닥이 나듯, 나의 정신 에너지의 잔고도 바닥이 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입은 일정한데 쓸데없는 지출이 많아 그렇다면 그 지출은 줄여야 한다.
완벽주의란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겨울철이 되면 집 안에 바람이 새는 곳이 있는지를 살펴보아
이를 방열재로 잘 막으면 상당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쓸데없이 소모하고 있는 에너지가 없는지,
어려운 겨울과 같은 현실을 살아가자면 이를 잘 절약하고 보존할 필 요가 있다.
완벽주의, 열등감, 분노 등의 감정은 우리의 한정된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시키는 가장 큰 주범들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보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남을 의식하고 완벽해 지려고 하는가?
마음의 분노를 감추고 억압하느라 얼마나 많은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사는가?
늘 피곤하다고 말하며 값비싼 영양제나 한약을 달여 먹기 보다
내 마음에서 감추고자 하는 것들을 내려놓을 때 그 긴장감과 피곤이 풀릴 수 있다.
피로의 회복은 안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안식은 그냥 쉰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안식은 나의 열등감과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내어 놓을 때,
그리고 나의 이웃을 용서해 줄 때만이 진정으로 찾아온다.
피로의 회복은 곧 마음의 가난함과 용서에 있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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