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어둡고 아픈 현실을 뛰어 넘어
우리를 밝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소망과 함께 용기를 심어준다.
어두웠던 한 해가 있었지만 밝은 새해가 있고,
춥고 긴 밤이 있었지만 따뜻하고 밝은 햇살을 비추어 주는 아침이 있기에
우리 인생은 다시 출발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새해 아침!
어제와 과거가 어떠했던지
누구나 새롭게 출발해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야무진 꿈과 소망을 가지게 된다.
미래로, 새것으로 향해 열려지게 하는 꿈이다.
그러나 동시에 꿈의 허구성과 이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그 꿈은 꿈으로 마냥 열려져 있지 못하고
조금씩 어두운 현실 속으로
닫혀져 가고 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다시 꿈을 잃고 일상에 매여 살아가고 마는 것이다.
왜 꿈은 꿈으로 끝나고 우리는 여전히 이 속에서 살아야 하나?
왜 꿈이 미래의 현실이 될 수 없을까?
꿈을 이룬 사람들, 그 들은 어떻게 이를 이루었을까?
꿈을 이룬 사람 중에 구약에 나오는 요셉을 보도록 하자.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이것이 그의 꿈의 내용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고 계시이기에 무조건 이루어진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하나님의 계시는 일방적이지 않다.
인간의 연약함과 상함 속에 던져지고 그 속에서 시작된다.
그의 꿈은 곧 그의 품과 상한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으로 인해 형들의 큰 미움과 배척을 받았던 요셉!
형들의 미움 속에 너무도 무력하게 억눌려 살아야 했던 요셉!
이것이 그의 아픔이고 어두움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 억눌림과 열등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즉 형들을 지배하며 그들을 이겨 보는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드는 꿈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를
'소원 충족'이라 하였다.
현실에서 상실되고 억압된 그 무엇을
채우고 보상하려는 마음이 꿈 속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꿈은 사실 미래를 향해 열려져 있기보다는
과거의 아픔과 상실의 반응과 그 카타르시스와 같은 것이다.
그의 열등함과 무력감의 보상 기능이 요셉의 꿈이었다.
모든 꿈의 출발은 과거의 상실과 상함이다.
꿈은 어둠과 긴 밤에서 시작된다.
어둡고 깊은 밤을 통과해서 새벽과 밝은 아침을 향해 가면서
그 꿈은 맹렬히 탄생되어진다.
실제로 꿈은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 - REM) 수면중에 나타나는데,
이 REM 수면은 수면 초반에는 거의 없으며 중반 이후부터
주로 새벽녘 수면에 대부분 나타난다.
그래서 꿈은 주로 새벽녘에 많이 꾼다.
이와 같이 꿈은 어둡고 무력한 밤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꿈을 과거의 아픔과 어두움을 도피하고 부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쉽다.
무조건 "과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새로이 꿈을 갖고 출발해 봅시다."라고 말하지만
꿈은 결코 하루 아침에 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실되고 어두운 밤을 통해 꾸어지고 탄생되어 진다.
꿈 속에 나의 아픔과 무력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꿈은 아픔을 인정하고 이를 치유하는 곳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아픔을 덮어두는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 끝난다.
나의 어두운 시절과 아픔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 아픔의 중심에 서서 나의 꿈을 꾸고 있는가?
술 마시고 잊어버리기 위해 꿈을 꾸고 있는가?
꿈은 어두운 밤과 과거에서 시작되지만
결코 거기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아침과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새벽은 어두운 밤에서 시작되어
그 어둠이 치유되고 걷혀지면서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침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아침이 어둠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이를 빨아들이는 믿음의 힘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둡지만 곧 밝은 아침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믿음은 불신과 두려움의 긴 어두움을 통과하며
치유되어진 새로운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요셉이 그 꿈을 이룬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이었지만
이는 요셉의 어두운 고난 속에 있었던 치유와 믿음을 통해서였다.
우리가 매년 새해를 맞이하며 꾸는 꿈은 어떤가?
그 꿈이 우리의 아픔 속에서 시작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덮어둔 채 시작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꿈 속에 아침과 미래를 향한 믿음이 있는가?
우리의 꿈이 어두운 과거에 열려짐과 동시에
밝은 미래를 향해서도 열려질 때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호세아 6:3)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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