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헤어지는 연습

007 RAMBO 2018. 5. 29. 19:43

인간이 겪는 여러 일들 중에 헤어지는 일만큼이나

큰 고통과 불안을 주는 경험은 없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엄마의 치마폭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울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때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쓰라린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슬픔은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사별(死別)의 고통일 것이다.


어떤 만남이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만남은 곧 헤어짐을 기약한다.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생을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인생에 있어 사실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의미있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헤어짐에 대한 불안감이 크면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매번 만날 때마다 그 만남을 즐기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이를 확인하고 따지느라 만남올 제대로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인생의 경우는 온통 헤어짐으로 물들여져 있기도 하다.


사실 헤어지는 것을 항상 두려워하고 또 제대로 헤어지지도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만남과 인생을 영위하지 못한다.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말이 역설만은 아닌 듯 싶다.


헤어진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결코 하루 아침에 극복되어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해결되어지는 문제도 아니다.


연습이 필요하다. 잘 헤어지기 위해서는 헤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연습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능력이요 특전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연습할 것인가?

누구를 매일 만나 헤어지는 연습을 할 것인가?

또 어떻게 매일 죽는 연습을 할 것인가?


우리가 매일 겪는 낮과 밤의 하루와 수면이

바로 그 좋은 연습장임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심한 불면증에 시달려온 한 회사원이 입원을 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입원하여 불면증을 고쳐 보겠다고 했다.


입원 후 상담과 수면 검사를 시행해 본 결과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잠을 못 자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잠은 자는데 무슨 생각을 계속 한 듯하고,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이 다 기억이 나면서

아침에 일어나도 도저히 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문제였다.


그런대로 수면 기능은 있었으나

낮의 각성 상태가 감소되지 않음으로써 생긴 수면장애였다.

밤이 되어도 충분히 이완하고 긴장을 풀 수 없는 것이 환자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과거에 이 환자의 집안은 아주 어려웠다.

거의 고학을 하다시피 하여 대학을 나왔으며,

자신이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경쟁사회에서 한 치도 낙오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아왔다.

늘 학비를 버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살아왔고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능력만큼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좋은 직장에 입사할 수 있게 되어

그 후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 결과

상사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우수사원 표창까지 받았었다.


자신은 아무 배경도 없기에

빈틈을 보이고 실수하면 낙오되고 만다는 강박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늘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눈을 크게 뜨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장감 속에 살아야만 했다.


저녁이 되면 몸은 지치고 잠은 오는데도

그 각성 상태와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내가 긴장을 풀고 현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곧 자기 파멸이기에

계속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아야만 했다.

이것이 그의 불면증의 정체였다.



이렇게 눈을 감고 쉬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것도 살피지 않고 그냥 쉬고 있다는 것은

이 회사원처럼 자신이 없어지는 듯한 불안감을 주기에

이를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며 더 깨어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말로는 피곤하고 졸리다고 하면서도

그 불안감 때문에 수면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이 끝났는데도

곧바로 집으로 가지않고 이차 삼차하며

더 큰 자극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밤을 보내기도 한다.

결국 완전히 지치고 곯아 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을 감고 쓰러져 자게 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을 할지 모르지만,

아이가 잘 시간이 되어 양치질을 하고, 잠옷을 입고,

부모에게 인사를 한 후에 조용히 자기 방으로 가서 자는 것과,

어머니와 안 떨어지려고 옆에서 끝까지 TV를 보다가

지쳐서 잠에 떨어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해가 진 후의 저녁 시간은

우리가 어두움과 수면을 준비하며

홀로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가 살피고 조절해야 하는 것들,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맡겨두고

조용히 안식하며 떠나는 시간인 것이다.


더 풀어 보려고, 더 해결해 보려고 애쓸 필요없이

그냥 믿고 떠나는 것이다.


가기 싫은 밤의 세계를 저항하고 저항하다 지쳐

밤에 굴복하여 수면에 빠지기보다는

나 스스로 안식과 홀로됨을 준비하여 조용히 밤을 맞는 것,

이것이 바로 매일 우리가 겪어야 할 헤어지는 연습인 것이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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