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성격에 따라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위험한 것이 있어도 이를 피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모험은 위험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과 기쁨도 크다.
그러나 안전 위주의 삶은 큰 위험은 없지만 그만큼 무미건조하다.
사랑에도 대개 두 가지 형태가 있는 것 같다.
모험 위주의 위험한 사랑이 있는가 하면 아주 안전하고 확실한 사랑이 있다.
전자는 우리를 가슴 설레이게 하고 흥분시키는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는 그만큼 슬픔과 고통이 크다.
그러나 후자의 사랑은 실패의 위험이 따르지 않는 만큼 흥분이나 기쁜 감정이 크지 않다.
대개 첫사랑이나 짝사랑이 모험적인 사랑이 되는 반면
평생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에서는 안전한 사랑이 선호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는 안전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어떤 사람들이 안전한 사랑을 추구할까?
성격적으로 모험적인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사랑을 추구할 것 같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무척 내성적이고 매사에 꼼꼼하며 모험을 즐기지 않고
안전 위주의 삶을 사는 사람인데도 사랑에 있어서만은 모험적일 때가 있다.
조용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사랑에 빠져 흥분된 상태로 다니는 사람이 있다.
대신 다른 일에는 무척 대담하고 모험적이면서
막상 결혼할 대상을 사귀는 데는 너무나 소극적인 사람이 있다.
그래서 사랑에는 성격이 그렇게 크게 지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신비인지도 모른다.
성격보다는 그 사람에게 깊이 내재된 마음이 이를 결정하는 것 같다.
성격은 겉에 드러 난 모습이다. 그러나 사랑은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리기 때문에
겉에 드러난 성격보다는 깊은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안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한 환자의 마음을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주부가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억지로 먹은 경우는 구역질이 나서 다 토해 버려 몇 주째 심하게 고생하며 탈진된 상태였다.
물론 내과적인 질환으로 생각되어 면밀한 종합 검사를 받았지만
식도나 위장 계통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소위 신경성이 아닌가 히여 정신과에 의뢰되어 나와 만나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복한 가정의 주부이다.
남편은 크지는 않지만 건실한 사업체를 가지고 있고 아주 성실한 사람이다.
사업을 한다고 해서 술을 늦게까지 마시거나 나돌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무척 가정적이다.
모든 사람이 남편을 칭찬한다. 특히 마음이 아주 너그럽고 선량하다.
자식들 역시 공부도 잘 하고 말생을 피우지 않는다.
무척 안정된 집안이고 별로 신경 쓸 일도 없는데,
신경성일 것 같은 병을 앓고 있으니 본인과 가족들이 무척 의아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신경을 쓴다는 것은 어떤 현실적 사건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구실일 뿐,
원인이 되는 문제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 있다.
이 주부에게서도 현실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내면에 어떤 갈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상담을 시작하였다.
환자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였다.
키도 크고 노래도 잘 부르는 아주 멋장이 미남이었다고 한다.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여 주로 밖에서 사교하는 일에 바빴다고 한다.
성격도 좋고 기분파라서 사람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었다고 했다.
교제가 많으니 사업이라고 하지만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편이었다.
집에 돈을 제대로 갖다 주지 못하고 늘 교제비로 사용해 버렸다.
이로 인해 제일 큰 고생을 히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5남매의 학비에다 집안을 꾸려 나갈 돈을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리저리 돈을 꾸기도 하고,
있던 재산을 팔기도 하고, 보따리 장사 등도 하여 어렵게 집안을 꾸려 나갔다.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아주 심했다.
몇 번 큰소리를 치며 싸워도 봤지만 자신만 힘들다고 생각되어
아버지에게 별로 상관하지 않고 자식에게만 마음을 두고 살아갔다.
특히 첫째딸이었던 환자에게 기대를 많이 했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아주 잘 했던 환자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대단했다.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알고
'나는 커서 저런 남자를 만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늘 살아왔다.
그러나 환자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원망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다.
아버지에게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결코 지워버릴 수 없었다.
기분파였던 아버지가 가끔 술을 드시고 선물 꾸러미를 들고 들어와
첫째딸인 자신을 불러 엉덩이를 툭툭 치며
귀여워해 주시던 모습을 때때로 그리워하고 있었다.
멋장이에다 맘도 좋은 아버지!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고생시킨 아버지!
환자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복잡했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결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지만
그 빈 마음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향한 강한 욕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환자는 가정에도 충실하고 아버지처럼 멋장이인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어려서부터 그러한 아빠와 남편을 꿈꾸고 있었다.
대학을 가니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자신에게 많은 남학생들이 접근해 왔다.
그 중에는 환자가 평소 꿈꾸던 성실하고 멋있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남자가 결혼을 생각하고 심각하게 접근해 오면 늘 교제를 중단해 버렸다.
그래서 몇 번 좋은 남학생들이 실망하고 곁을 떠난 적도 있었다.
나이가 차니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 했다.
그녀는 결혼에 있어서는 아주 안전한 길을 택했다.
자신이 꿈꾸던 그런 결혼을 추구하는 모험을 피하고 아주 안전한 사람을 택했다.
학교도 자신보다 못하고, 키도 작고 미남도 아닌 남자,
멋도 낭만도 없이 성실하기만 한 남자,
그저 환자만 바라보고 좋다고 하는 남자를 택하여 결혼을 하였다.
왜 자신이 진정 바라던 남자들을 제치고 이 남자를 택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성실하고도 멋장이인 남자를 꿈꾸면서도
혹시 아버지가 어머니를 고생시킨 것처럼
자신을 고생시키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늘 어머니가 주입한 얘기, "남자는 딴 것 볼 것 없다.
그저 가정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라고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던 얘기를 거역할 힘이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 아빠와 같은 사람을 그리면서도
어머니를 보니 도저히 불안해서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안전한 사람, 아주 성실한 사람, 그러나 부족해 보이는 사람,
결코 자기를 박차고 나갈 것 같지 않은 사람을 택하게 된 것이다.
자기보다 조금 못해 보이는 사람과 같이 있어야
편하고 안전한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안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사랑은 성장하는 것이다.
날 때부터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부모의 사랑부터 조금씩 사랑을 배우며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사랑의 성장이다.
믿음을 갖는 사랑이 그 성장의 방향이다.
때로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불안한 사랑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꿈에 그리던 상대를 만나 첫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말 못하는 짝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대개 첫사랑은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한다.
사랑에만 뜨겁게 빠진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너무 환상적이다 보면 점점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오면서,
그리고 상대방의 다른 모습을 보면서 그 환상이 깨어지는 고통과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지만 내재된 두려움이 더욱 가세되면서
마치 해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래서 결국 첫사랑은 첫사랑으로만 끝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첫사랑이나 짝사랑의 상처를 경험하고 나면 사랑이 더욱 두려워진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위험한 사랑을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결혼할 때까지 얌전히 있다가 아주 안전한 상대를 만나 결혼하려고 한다.
대개 부모들은 안전한 상대가 제일이라고 권한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온 부모들이 최우선으로 꼽는 것은 안전과 안정이지만,
젊은이들은 그보다 이상과 꿈이 우선한다. 그래서 모험을 추구한다.
그러나 결국 그 모험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다시 부모가 바라는 그 안전한 사랑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안전한 사랑은 역시 안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은 안전한 것으로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속에 내재된 꿈을 역시 버리지 못함으로
잔잔한 결혼생활을 계속 괴롭힐 수 있다.
앞선 그 가정주부의 예를 계속 살펴보자.
그녀가 기대한 대로 선택한 그 길은 참으로 편하고 안전하였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성실하였지만 환자에게 너무 의존적이었다.
그저 부인과 늘 사업을 의논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탁하고,
실제로 사업 자금이나 어려운 청탁이 있으면 환자가 직접 나서서 하기도 했다.
남편도 이러한 부인의 도움을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인에게 더 잘 해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이것이 점점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점점 안정이 되어갈수록 환자 마음 속에 꼭꼭 눌러놓았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남편, 나밖에 모르는 남편이 고맙기는 하지만 뭔가 맘에 다 차지 않는다.
멋도 없고 낭만도 없고 키도 작다. 자기에게 의지만 하지 자신이 의지할 푸근한 품이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환상을 한번 더 꿈꾸어 본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멋있는 중년 남성이나 가끔 길에 나가서 마주치는
의젓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남성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끌리기 시작한다.
환자는 무척 당황하기 시작한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남편, 열심히 사는 남편, 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남편을 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자신을 미워하고 자책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할 수 있을까?
꾹꾹 마음에 억누르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이 괴로움이 마음에 더 이상 억눌려 있지 못하고
몸으로 터져나온 것이 그녀의 증상이었다.
먹는다는 것은 사랑을 의미한다.
먹고 싶은 마음은 곧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남편을 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나
자꾸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목에서 걸리는 것이고,
그래도 꾹 참고 먹으면 결국 토하고 마는 것이다.
이 증상은 결국 그녀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준 것이다.
주위의 적지 않은 부부의 갈등에서
이러한 안전과 이상적 사랑의 갈등을 발견한다.
안전을 위해 꿈과 이상을 버리고 억눌러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그 꿈을 찾아볼 것인가?
그 안전한 가정을 박차고 나올 것인가?
이는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
많은 중년 부부의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이기도 하다.
너무 편해서, 나쁜 바람기가 있어서 그렇다고 자신을 학대만 하고 있을 것인가?
더욱이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서 이러한 유혹과 흔들림은 정말 괴롭다.
신앙의 뿌리까지 흔들리는 위기까지도 갖는다.
사단의 유혹이라고 더욱 정죄하고 신앙적인 노력을 가한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 보지만 결코 이 맘이 가라앉지 않는다.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 강해지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게 한다면
이 부인처럼 결국 몸의 증상으로 터져 나오고 만다.
성경에서 이러한 좋은 예를 본다. 수기성의 여인이다.
그 여인이 다섯 명의 다른 남편이 있었다고 했으며
지금의 남편도 자기의 남편이 아니라고 했다.
바람기가 많은 나쁜 여자로 비난받기에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 여인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많은 남자와 관계했을까?
단순히 성적 욕구 때문에? 돈때문에?
이러한 요구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더욱 원척전인 원인은 사랑에 대한 갈구와 두려움이다.
당당하게 자기가 원하는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추구할 자신이 없기에
돈으로 주고 받는 안전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
때로는 정말 마음을 주고 싶은 좋은 남자를 만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남자가 조금 살다 도망갔을지 모른다.
그 때의 충격 때문에 다시는 남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사랑이 그리워 이제는 다시 안전한 사랑을 추구했을지 모르고,
그러다보니 다시 그리던 남자에 대한 꿈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렇게 살다보니 다섯 명의 남편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이 여인을 결코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죄의식과 사랑의 목마름에 억눌려왔던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서 그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받아 주셨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인 예수를 발견하고 그토록 기뻐했다.
자신의 모든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이 바로 그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의 실제 생활은 이 여인과는 다르지만
우리의 솔직한 심정만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사랑의 굶주림과 두려움 속에 사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이를 채워줄 허상의 사랑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맨다.
아무리 마셔도 또 목마르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밖에 없다.
예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인간 사랑의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현실의 어떠한 사랑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을 하고 또한 나누어 줄 수 있다.
이것이 허구적 사랑을 찾아 순례하는
인간 사랑의 해답이자 종착점이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