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내리사랑

007 RAMBO 2017. 8. 18. 15:48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잘 한다 해도

부모가 자식에게 붓는 사랑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이를 누군가 "내리사랑’ 이라고 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랑도 위에서 흘려 내려온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오는 사랑은 의지적이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내리사랑은 자동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 아무리 많아도 모자랄 듯한 이 귀한 내리사랑이

때로는 자녀들에 의해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

부모는 한없이 그 사랑을 주고 싶지만 자녀가 원치 않아

그 사랑을 피해 도망가기도 하고 때로는 반발과 원망을 내보이기도 한다.


철없는 자식이라고 무조건 책망만 할 것인가?

무조건 내려오는 그 사랑을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는 없을까?

결코 사랑이 문제될 리가 없다. 문제는 그 내려오는 것들 속에

사랑을 위장한 다른 불순한 것들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치 상수원이 오염되어 있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물이라도 질병을 주듯이

사랑 자체는 자식을 살찌우지만 때로 그 사랑 속에 포함된 독소가 있어

오히려 병든 자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 문이다.


그 누가 자식에게 독소가 든 물을 주고 싶을까?

그러나 그것은 무색 무취하기에 때로는 사랑인 줄 알고 담뿍 내려주다가

오히려 자식을 병들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자식을 병들게 하는 독소인가?


그 첫째가 소유와 보상의 마음이다.

자식에게 내리사랑으로 퍼붓지만 자식을 하나의 대상적 인격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것을 보상하려는 나의 연장과 분신으로서의 사랑을 하려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이는 자식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기사랑의 또 다른 형태이다.


물론 때로는 부모가 이를 부인하기도 하지만

자식이 자기 기대를 못 채울 때나 더 이상 자식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게 될 때,

그 부모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의 아픔 속에 빠지는 것을 보면

숨겨진 이러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속에서의 자식은 몸과 지식은 자라나지만 마음은 자라나지 못한다.

스스로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살아가게 하는 용기와 자신감이 자라지 못해

기대한 만큼의 삶도 살지 못한 채 위축되고 만다.

결국 부모의 기대를 이루지 못해 스스로 거절되고 만다.

결국 사랑이 거절과 배척의 양태로 끝나 버린다.


또 다른 숨은 마음은 무엇일까?

두 번째로 불신이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대개 과잉보호 속의 사랑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 속에도 사랑은 있지만 ‘잘못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염려와 불신 때문에 부모가 대부분 결정해 주고 시행해 준다.


믿음은 잘 할 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 하거나 안 될 것 같을 때 더 필요한 것이다.

이럴 때 자녀를 믿어 주면 자녀는 그 속에서 엄청나게 성장한다.

그 믿음이 곧 사랑이다. 내가 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믿어 주는 것이 사랑이다.


대개 부모는 자기가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지식을 믿지 못한다.

항상 완벽하게 검사하고 챙겨야 속이 풀린다.

완벽성의 배후에는 불신이 깔려 있다.

부족하고 엉성해도 받아 주는 것, 그리고 희망 가운데 믿어 주는 것,

그것이 진정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다.


세번째의 오염된 마음은 분노이다.

대개 부모가 사랑을 많이 주는 자식에게는 분노도 많이 물려 준다.

사랑도 내리사랑이듯 분노도 내리분노이다.

분노는 일종의 반발심이기에 자기보다 힘 센 사람에게는 터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어머니나 남편에 대한 분노가 대개 큰 아이에게 터지고,

큰 아이의 억울한 분노는 동생에게, 그 동생은 학교에서 힘없는 친구에게,

그 친구는 자기보다 더 약한 누구에겐가 그 분노를 터뜨린다.


대개 정신질환자들은 가족중에 가장 약한 사람일 때가 많다.

사실 그 환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환자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진 사람이 있으나

그 사람은 터뜨릴 대상이 있기에 발병하지 않고

더 이상 터뜨릴 수 없는 사람이 정신질환에 빠진다.


우리는 때때로 TV나 신문에서 그러한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터뜨린 끔찍한 사건들을 보고 듣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 모두가 내려준 분노를 자신 속에 모았다가 대신 터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들보다 힘센 윗 사람들의 연쇄적인 책임 역시 묵과할 수 없다.

그들은 약해서 재판과 벌을 받지만,

이 힘센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손가락질 하며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는 또 다른 범죄를 시작하고 있다.


나의 만만한 자식들에게 사랑과 함께

이러한 분노를 유전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부모의 내리사랑은 너무도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 소중한 내리사랑을 더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순수성을 더욱 찾아야 한다.

우리는 오염된 물을 정화하듯 자식에게 자동적으로 내리는

모든 것을 한번 걸러 보아야 할 것이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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