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장애자의 희망

007 RAMBO 2017. 8. 18. 15:35

일반 질병과 장애자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일반 질병이란 적절한 치료를 통해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말하며,

장애는 치료를 한 후에도 어느 부분은 더 이상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므로 장애는 어떠한 치료를 하더라도 일부 기능의 상실이 영구적으로 남아있게 된다.

때로는 그 기능 상실이 계속 진행이 되면서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인간을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장애자에게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이러한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장애 자체도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장애의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큰 절망감을 주게 된다.


정신지체아의 경우 이러한 절망을 느끼게 하는

정서 및 정신적 기능에 장애가 있어

이러한 절망마저도 뚜렷이 느끼지 못한다.

대신 그 주위의 가족들이 이를 심각하게 느낀다.


그래서 정신지체아의 경우는

자신보다는 그 가족들의 고통이 더욱 크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애자나 그 가족들에게는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인가?


사실 장애자들에게 치료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병을 치유하는 치료라는 개념보다는 재활이라는 용어를 쓴다.


재활이란 그 장애를 극소화하고

그 장애로 인해 일어나는 이차적인 후유증을 예방하며

또한 남아있는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다든지, 그외 보조적인 수단을 통해

그 장애를 가지고도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장애자나 그 가족들은 상실된 그 기능에 미련을 갖고 좌절해서만은 안 된다.

더 이상의 장애가 확장되지 않도록 예방하며 남아있는 기능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를 평가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래도 장애는 남는다.

아무리 남아있는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고

보조적 수단을 강구한다 해도 불편과 어려움은 남는다.


특히 정신지체아들의 경우는

신체의 모든 기능을 통괄해야 하는

지능과 언어에 장애가 있으므로

재활치료에 한계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이들과 가족들에게는

또다시 좌절이 찾아온다.


그럼 여기서의 해답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한 ‘진정한 이웃’이 필요하다.

어려움을 서로 나누는 이웃이 필요하다.


건강한 이웃들이 이들의 고통과 장애를 위로해 주고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해줄 때 그들에게는 또다른 희망이 싹튼다.


우리는 그들의 진정한 이웃과 희망이 되어주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물어 볼 질문들이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다.(요한복음 9:3)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란 무엇일까?

바로 이웃을 통한 사랑과 희망이다.


고통스러운 사람의 어려움을 서로 나누고 사랑함으로

절망 속에 있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고,

곧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이다.


정신지체아의 이웃은 누구에게만 국한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작은 정성이지만 서로의 장애를 나누어 가진다는

이웃의 사랑에서 이 일이 계속 진행될 수 있다면

장애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신체와 정신에는 장애가 있을지 모르나

영혼의 장애자로까지 진전되지 않도록

우리는 사랑으로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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