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두터운 겨울을 뚫고 솟아난 봄!
봄은 우리 마음을 괜히 즐겁고 들뜨게 한다.
비록 연약해 보이는 연두빛 생명일지라도
그 어둡고 긴 겨울을 뚫고 일어섰다는 것,
또한 여름에는 풍성한 수목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으로 자랄 것이며,
가을에는 탐스런 열매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그 생명에 대한 환희는 사뭇 벅차기만 하다.
봄을 사랑하는 마음은 정녕 생명에 대한 경외와 사랑 때문일 것이다.
죽음과도 같은 겨울을 뚫고 올라온 그 놀라운 생명력과,
비록 작은 생명이지만 풍성함으로 커나갈 그 생명의 가능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왜 우리는 이처럼 그 생명력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될까?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도 자연 속의 생명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같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차갑게 닫혀지고 죽어 있다면
우리는 자연의 생명에 대해서도 무감각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봄에 아무런 마음의 느낌 없이
일상 속에서 반복된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또한 봄을 잔인하다고 하며 봄을 느끼면서도 이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비하면 봄을 그대로 순수하게 느끼고 기뻐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이 아닐 수없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우리 마음의 생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자연 속에 피는 그 싱그러운 생명에 대해서는 이처럼 경외와 희열을 느끼고 사랑하면서도
내 속에 피어오르는 생명은 과연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대체로 자연의 생명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하지만
나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는 무척 인색한 것 같다.
그렇다면 마음의 생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한 환자의 마음에서 이러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환자는 완벽주의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항상 완벽하게 공부와 생활을 하도록 요구를 당해 왔다.
환자가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도 어머니가 요구하는 것은 늘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항상 어머니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지적만 받으며 살아 왔다.
어느덧 환자는 자신은 늘 부족하며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열등한 사람으로 생각이 되고
그나마 자신이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는
늘 긴장하며 완벽하게 살아가야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우수하고 열등해 보이는 것이 없는 환자였지만,
자신은 늘 자신이 모자라고 실수 투성이라고 말하며 자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환자가 오랜 정신과 치료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이 어머니가 말한 대로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실수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긴장감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고 우울증도 많이 호전되어졌다.
어머니의 완벽주의 때문에 늘 열등하게 지적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기,
어머니에 의해 억압받으며 만들어졌던 자기를 벗어 던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자기가 아닌 원래의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서
환자는 그를 괴롭히던 열등감과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새롭게 태어난 자기가 곧 마음의 생명이다.
'넌 늘 틀리기만 하는 바보야!’ 하며 구박을 받던 그 억압을 뚫고
'나는 나야!’ 하며 새롭게 솟아나는 그 생명력이야말로
우리가 봄에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생명력인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의 생명은 무척 연약하다.
아직 나 자신을 열등하게 보는 겨울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짓누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봐라, 너 혼자 뭘 한다고 그래? 너 같이 덜 된 사람이 뭘 한다고 그래.
정신과 치료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니? 다 그만 둬.’
하며 자신을 구박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모처럼 솟아난 마음의 생명은
열등감이라는 거대한 구두발에 짓밟혀 다시 움추려드는 것이다.
내 속에 피어나는 작은 생명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부모 혹은 환경이 만들어 준 내가 아닌 나 자신이 곧 나의 생명이기에,
이 어렵게 태어난 이 생명을 그대로 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잘 보호해 주고 가꾸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갓난아이를 껴안 듯이 소중하게 포옹해 주어야 한다.
과거처럼 완전한 기준에서 이 어린 생명을 구박해서는 안 된다.
막 태어난 아이에게 왜 빨리 뛰지 못하느냐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조용히 지켜봐 주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봄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곧 그 속에 마음의 생명이 싹트는 사람이다.
그러나 봄은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봄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상으로
나의 마음 속에 피기 시작한 이 소중한 생명을
아끼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이 생명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 이성훈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