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친할머니의 심하게 잘못된 성격(입이 거칠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름)탓에
어머니께서 임신기간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셨습니다.
입덧도 심하게 하셔서 몸이 많이 야위셨습니다.
임신 중에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는 태아에게 치명적입니다.
산모가 받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어머니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집살이였습니다.
시어머니로 인한 어머니의 겁과 두려움이 태중에 있던 제게도 밀려와서
어릴 때부터 저는 유난히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아이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피부가 유난히 하얀데다가 외모까지 다소 이국적이어서
동네 아이들한테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 제게는 마음에 못이 박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키는 큰데 몸이 약해서 힘은 없고,
성격 탓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대부분 혼자 지냈습니다.
정서적인 문제는 신체적인 문제까지 야기시켜서 편식도 무척이나 심했습니다.
밥은 잘 안먹고 빵, 과자, 콜라 같은 몸에 해로운 가공식품을 주로 먹었습니다.
몸은 허약해서 매년 감기는 단골손님이었고,
5살부터 알레르기성 기관지염과 아토피 피부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가려움증이 심해져서 팔꿈치 안쪽을 피가 나도록 긁어서
한여름에도 긴소매 웃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기관지염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침과 가래로 고생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약을 먹고 발랐는데 스테로이드라는 부작용이 심한 약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박카스-D, 커피, 홍차, 콜라 등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음료수를 물먹듯 마셨습니다.
카페인은 다량 섭취할 경우 마약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심신을 흥분상태에 놓이게 하면서 정서불안을 야기시킵니다.
저의 몸과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초등학교 때 전학을 3번이나 했습니다. 울산-서울-여수-서울.
한참 말을 배울 나이에 사투리와 표준말로 인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말을 하면 애들이 놀려서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6학년 때 말더듬는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서 말까지 더듬어서
말에 대해서 심한 콤플렉스를 갖게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고1때까지 매년 누군가로부터 놀림받고 괴롭힘 당했습니다.
"왕따"처럼 집단으로 따돌림당하지는 않았지만
저에게는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대며 속앓이를 해야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심한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 변해서 인간관계에 많은 해악을 끼쳤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놀리거나 괴롭히거나 때릴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때문에 먼저 사람들에게 인사하거나 다가가는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척이나 인사성이 없었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열등감과 자격지심, 피해의식, 낮은 자존감, 완벽주의, 강박관념 등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성인이 되면 대부분 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피해망상과 대인공포증 등으로 인해서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가 참 힘들게 됩니다.
오랫동안 억눌려 지낸 성격과 약물 부작용 등으로 인해서
가지고 있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약을 끊은 이후에는 금단증상으로 오랫동안 환각, 환청 등의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상반신의 1/3정도의 피부가 피와 진물이 나오도록 긁음으로 헐어서
여러 달 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외출도 못하고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총체적인 문제아였습니다.
저와같은 이유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군대갔다가 4학년 2학기에 복학해서 2학년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공인 독일어 수업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수업을 독일어로 진행하셨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제게 쉬운 질문을 하셨는데 대답을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창피해서 혼났는데 수업 후에 잘 아는 후배 한 녀석이 제게
"4학년이 그것도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순간 그 말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면서
어릴 때 놀림받고 괴롭힘 당했던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왔고, 정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습니다.
후배들이 저를 놀리고 괴롭히는 생각에 억눌려서
그 다음부터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습니다.
1/3이상 결석한 후에 교수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은 차마 말을 못하고
한 번만 봐달라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고, 죽도록 창피했습니다.
창피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했습니다. 혼자만 끙끙 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해 저는 졸업을 못했습니다.
다음 해에도 같은 과목 첫 수업시간 후에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서
수업을 빼먹다 졸업을 못했습니다.
저의 내적 상태는 마약 중독자의 그것과 비슷했습니다.
약, 카페인 음료, 가공식품 등에 함유된 유해물질이 오랫동안 체내에 축적되고,
그와 함께 잘못된 성격으로 인해서 정신 이상이 야기된 것입니다.
피부병으로 인해서 몸이 가려울 때가 많았고, 어릴 때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로
마음은 늘 억눌린 상태에서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참고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정신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저의 상태에 대해서 거의 말을 안 하면서 지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아프면 엄살을 조금 부린다거나 아프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극도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우면 차마 말이 안나옵니다.
그것을 견디는 과정에서 마음까지 억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릴때부터 참는 것이 몸에 배어있어서
웬만한 것은 다 참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화병으로 발전해서 치유하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제 아토피 피부병의 근본 원인은 화병입니다.
피부를 통해서 화가 분출된 것이지요.
저의 내적인 상황이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되는 상황이었고,
말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끔 상태가 호전될 때도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극도로 심한 감정의 기복, 정신적인 혼란, 가려움 등으로 인해서
무엇을 제대로 하거나 꾸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속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의 행동만 보고 저를 꾸짖거나 나무라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교회 기도실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면서 기도했고
여러 해 동안 잠자리에 들면서 눈물로 베개를 적셨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하나님께, 눈감으면 영원히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도 어떻게 제 자신을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에이리언 같은 괴물이 저를 쫓아다니면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끔찍한 꿈을 여러 해 동안 꾸었습니다.
당시 저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대충 짐작하시겠지요.
내적인 문제가 무척이나 크고 심각했던 만큼
치유 과정도 무척이나 길고 힘들었습니다.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영혼이 성장한 만큼
치유는 이루어집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상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영혼의 치유와 성장에 따른 고통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산순교'라고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치유와 변화와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마음에 박힌 돌이 많으면 고통도 많지만
이를 잘 이겨내면
그만큼 많은 진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을 가려고 하지 않고
쉽고 편하고 넓은 길을 가려고 한다면
영혼의 치유와 성장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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