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글모음/간증과 일상

9.11 테러 & 여친

007 RAMBO 2013. 3. 19. 01:14

혹시 911테러 때 여친을 잃었나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반대입니다. 
여친이 생겼죠.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저는 그것이 제게 기회가 될 것이란 강한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살고있던 일산 외곽 허름한 오피스텔이 경매로 넘어가서 
변호사를 통해서 법적으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고 있었습니다. 
돈이 별로 없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관리비가 밀려서 몇 달 동안 전기가 끊어져있던 상태라 
당시 테러 장면을 집에서는 보지 못했고 
인근 피씨방에서 봤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에 돈이 조금 마련되어서 
밀린 관리비 일부를 낸 후에 전기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기독교 포털 사이트인 호산나넷 메인화면에 
911테러와 관련된 게시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 올려진 글들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고 
글 하단에 글쓴이가 운영하는 다음카페가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그 카페에 가입한 후에 카페에 글을 올리고 
카페 청지기인 자매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급속하게 친해졌습니다. 
열흘 만에 친남매 이상으로 친해졌고 
남에게 좀체로 말하기 힘든 것까지 이야기했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30통 이상 메일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자매는 저보다 나이가 11살 어렸지만 
생각하는 것이 무척 성숙했고 신앙도 참 좋았습니다. 
자매는 광주에 살고 있었고 
대학교 휴학중이었습니다. 

카페 가입하고 한달 후에 
자매가 잠시 서울에 올라오게 되어서 
그때 처음 만났습니다. 
키가 167cm였고 글래머였습니다. 
(제 키는 185cm) 

제 형편에 누군가와 사귀게 된다는 건
전혀 상상도 못 했고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니까
그럴 생각할 여유도 없었는데
정말 뜻밖에 사귀게 된 겁니다.

그해 12월 20일에 오피스텔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보상금으로 200만원을 받았는데 
관리비, 세금 밀린 것 등을 제하고 남은 돈이 80여만원 이었습니다.

은행에 입금하러 갔는데
직원이 신용카드 안 만들겠냐고 물었습니다.
다년간 제 경제상황이 안 좋아서
그 전에는 카드 신청해도 발급이 안 되었는데
얼씨구나 싶어서 카드발급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서울역으로 가서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는 오피스텔을 나올 때 
억울하거나 하는 마음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주실까 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시죠.

광주에 도착한 이후
잠은 싸우나에서 자고
낮에는 피씨방에 있거나 자매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매 방에서 며칠동안 몰래 지냈습니다.
자매의 언니, 오빠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자매와 부모님만 있었습니다.

잘 지내다가 어느날 자매 아버님께 발각되었습니다.
문을 잠그고 지내다가 하필 문을 잠그지 않고 
저 혼자 자매의 방에 있을 때
자매 아버님께서 들어오셨거든요.
차마 사실대로 말씀 못 드리고
실은 제가 노숙자인데 대문이 열려있어서
몰래 들어와 있었다고 둘러댔습니다.

자매 아버님은 경찰서에 전화하셨고
경찰이 집으로 출동했습니다.
경찰서로 가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경찰이 자매네 집에 전화해서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밤 자매는 어머님한테 얻어맞았고
그 다음 날 짐 싸들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 은행에 들러서 신용카드를 받은 후에 강남으로 갔고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습니다.
걍 그러고 싶어서 말이죠.

그 다음날 코엑스몰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지낼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너무나도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2시간 동안 끙끙거리면서 앉아있었습니다.
119를 부를까 하다가 
또다른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갔습니다.

(그 동네에 인터컨티넨탈 호텔이 두 군데 있습니다)

그 때가 겨울 비성수기라 
패키지로 싸게 나온 좋은 방이 있어서
(그래도 1박에 20만원이 넘습니다)
그곳에 묵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말이죠,
방에 들어간지 10분도 안 되서
배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언제 배가 아팠냐 싶더군요.

원래 하룻밤만 묵기로 했는데
너무나도 크고 깊은 평안함을 느껴서
카드 한도액 바닥날 때까지
1주일 동안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컴터 스피커 좋은 거 사서 
CDP에 연결한 후에
대부분 방에서 있으면서
음악을 들으며 기도하며, 교제하며
정말 천국에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주일 후에 카드 한도액을 다 써서 체크아웃하고
다시금 코엑스몰 의자에 앉아서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남은 돈은 3만원인가, 5만원인가,
암튼 그 정도였고요.

문득, 길 건너편에 강남교회가 있고
거기서 청평에 있는 강남기도원으로 버스가 운행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강남교회로 가서 버스를 타고 강남기도원으로 갔습니다.
이전에 간 적이 있거든요.

기도원 생활 며칠 후에
가진 돈이 바닥났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남에게 손 안 벌리고
기도원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돈은 없고 배는 고파서
남들이 먹다 남긴 과자나 빵 등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이런 생활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는데도
자매는 불평 한 마디 없었고
여기저기서 먹을 것을 구해서
제게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기도원 생활 시작부터
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굴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보통 5,6시간씩 말이죠.
한겨울이고 산 아래에 있는 곳이라
무척이나 추웠고
기도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나면
발이 시렵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어떻든 상태가 어떻든
기도는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어느날 아침,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일어나자마자 기도굴로 기도하러 가는데
길바닥에 봉투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열어보니까 5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 길을 다니는데
하필 제가 그 봉투를 줍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죠.

주님께 감사드리고
그 돈으로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그 이후부터
경제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제 경제상황에 대해서 말도 안 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먼저 제게 말을 걸어오고
먹을 것을 사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제가 감기에 걸려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기도원에서 알게 된 어떤 분이
감기약과 제과점 빵을 사오셨습니다.

이 분은 이미 기도원에서 하산하셨고
제가 감기에 걸린 걸 전혀 모르셨습니다.
다시 오시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덕분에 감기가 빨리 나았습니다.

어느날 기도원 식당 입구에
식당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지가 붙어있었고
자매가 식당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겨울방학이고 구정 연휴가 있어서
식당 일이 참 많았습니다.
이전에 이런 일은 해보지 않았고
간이 좀 좋지 않았던 자매로서는
참 힘들었을 텐데도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자매는 식당 일로 해서 3끼 다 먹을 수 있었고
저는 저녁 식사 걱정은 안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점심은 굶더라도
최소한 저녁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50 여일 동안의 기도원 생활이
어떻게 끝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정 연휴 특별 집회 기간 동안
기도원에서 알게 된 어느 형제가
선교사님 두 분을 제게 소개해주었고
함께 은혜로운 교제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두 분이 주무실 자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달 이상 생활했기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분들께 제 자리를 드려야겠다는 감동함이 생겨서
그분들께 제 자리를 드리고
저는 딴 곳으로 갔습니다.

그분들이 이에 감동하셔서
제 상황을 물어보셨고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3월초 어느날 몇시에 모 백화점 정문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저와 자매가 생활할 곳을 마련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도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매는 전남대 휴학중이었고

원래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싶어했습니다.

언니, 오빠가 서울에 살고 있었기에

부모님께서 허락을 안 해주셔서

광주에 있는 대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었는데

저와 함께 서울에 살면서 편입시험 준비하다가

성공회대 편입시험에 합격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기록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자매와는 2년 동안 사귀다가

2003년 말에 헤어졌습니다. 
싸우거나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요. 

2006년 여름 자매에게 오랜만에 메일을 보냈더니
그해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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