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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4 - 죄와 죄의식

007 RAMBO 2015. 6. 16. 08:40

제 4 장 죄와 죄의식 - 이성훈

 

상한 마음과 죄

 

상한 마음은 크게 굶주린 마음과 버림받은 마음이며 깨어진 마음입니다.

굶주린 마음에는 사랑받고 의지하고 보호받고 싶은 갈증이 있고,

배척받은 마음은 두려움과 열등감과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상한 마음이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무엇인가로 자꾸 채우려고 합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불신이 있기 때문에 그냥 일용할 양식만 채우면 되는데도

그 외의 것을 자꾸 쌓아두게 되는데 바로 끊임없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죄는 세상 속에, 육체 속에 있는 것을 즐기는데

성경은 ‘세상의 정욕’과 ‘성령의 열매의 반대로 나오는 육체의 일’ 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즉, 투기하고 미워하고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등을 자꾸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생긴 본질적인 죄가

상한 마음과 또 이런 죄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몸소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모든 욕심과 정욕들을 십자가에 함께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용서를 받고 돌아 왔는데도

고멜처럼 또 죄를 지으러 나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배척받은 마음과 굶주린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 이후 잘못되어 나가는 것

 

첫째, 감추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로 감추는데 어떻게 감춥니까?

선한 일을 통해 보상하려 합니다.

성령의 열매로써 충성과 온유를 맺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죄를 감추기 위해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선과 봉사와 희생은 늘 피곤합니다.

누군가 여기에 좋지 않은 자극을 주면 금방 반응합니다.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은 자기에게 똑 같은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을 자꾸 지적함으로써

자기는 느끼지 못하지만 자기 문제를 감추려 합니다.

 

성령의 열매로써 하는 일과 내가 나를 감추기 위해서 하는 일은

과정과 결과를 보면 드러납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그 과정이

즐겁고 신이 나고 또한 그 결과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추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가 힘이 듭니다.

또 조그만 장애가 있으면 굉장히 힘들어지고 시험이 듭니다.

 

둘째, 죄를 짓고 나면 사단이 쓰는 전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죄의식입니다.
과잉된 죄의식은 초자아가 너무 부풀어 올라서

그 사람을 짓누르기 때문에 병적 죄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의식을 느끼는 자체보다

그 다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가면 잘된 것이고

예수님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죄를 지은 나는

예수님 앞에 용서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무엇을 하든 기필코 예수님과 멀어지게 하지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어떤 것을 통해서든

예수님과 가까워지게 만듭니다.

 

인간의 감정이 경건한 신앙생활에 무조건 무익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마치 신체에 있어서 통증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픈 신호가 없으면 우리 몸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뇨가 심한 사람은 신경이 마비되어서

밤새도록 뜨거운 온돌방에서 자다가

뜨거운 줄 모르고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신체가 이같은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통증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 세계에도 통증이 필요합니다.

 

미움과 욕심과 외로움 등이 느껴지면

마음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 주는 신호입니다.

그때는 두려워 할 것 없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조건 자신의 의지로 억누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실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앞으로만 가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죄책감으로 숨기려 하고 의지적으로 억누름으로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욕심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데

그것을 인간적인 의지로 억압한다고 해서 욕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잠재의식 속에서 자라며 실제로 더 커집니다.

 

마음속에서 미움이 커지면서

누군가가 집을 짓게 됩니다.

누구의 집입니까?

사단이 거할 집 입니다.

그 집으로 사단이 들어와서 확실하게 자리잡고 나면

그 다음에는 미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자꾸 미워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원한이 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이런 부정적인 문제에 당면하면 흔들리게 되는데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한 방향으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고

더 깊이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생기고 미운 마음이 생길 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집사가, 권사가, 장로가 이러하다니 하면서

자책 하고, 숨기려 하고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드러내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애통하고 상한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치유받고 해결해야 합니다. 
죄를 느낄 때마다 놀라지 말고, 숨기려하지도 말고,

우리 주님 앞에 통회하며 상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죄로부터의 자유함

 

죄의 문제를 포함한 신앙 생활의 여러 문제도

결국 이 상한 마음에서 옵니다.

채워지지 않은 것들과, 열등감과, 두려움 속에서 옵니다.

하지만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나의 속이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고,

불신과 두려움이 치유가 되면 죄와 죄의식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열등감과 죄의식을 치유하시고

우리를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크신 것으로 채우려고 하시는데

자꾸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용서받았지만 품꾼처럼 불쌍하게 살아 갑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저 용서받는 것으로 끝나는 개념이 아닙니다.

놀라운 회복을 통해 풍성한 것이 마음에 채워지게 됩니다.

 

상한 마음이 치유되어서 

하나님의 풍성한 것으로 채워질 때

그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죄와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와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