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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6 - 심리적 방어와 신앙 생활

007 RAMBO 2015. 6. 18. 18:18

제 6 장 심리적 방어와 신앙 생활 - 이성훈

 

상한 마음들은 신앙 생활에까지 끈질기게 따라옵니다.

믿음 안에서 문제점들이 다 드러나고 치유를 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신앙 생활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신앙 생활 속에서 상한 마음을 드러내고 계속적인 치유를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점점 성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더 굳어져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치유를 거부해버리는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심리적 방어 기제


주님을 못박은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주께서 택하신 백성들이었습니다.

성경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이미 교회 안에 들어온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혹시 나에게 바리새인과 같은 면은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내게 오실 때

내가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고

못박지 않을까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아픈 마음과 병든 마음과 죄를

어떻게 숨기면서 살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이런 문제점들을 드러내기를 원하고 계시며

그 드러냄을 통해서 치유하길 원하시는데

인간의 마음속에는 심리적인 방어 기제가 있기 때문에 감추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속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교묘히 숨기고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가) 억 압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억압된 상태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매우 경건하고 조용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적으로 억압된 생활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치유적인 복음과는 반대되는 종교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을 통해서 영혼이 진정으로 자유로와지고 치유를 받아야 되는데,

오히려 더 억눌리고 구속되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 생활입니다.

 

분노, 미움, 음욕, 정욕,

세상에 대한 욕심 등과 같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러한 느낌조차 생기지도 못하게 억압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느낌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긴장을 하며 살게 되는데

그래서 육체적으로도 무리가 오고

또 정신적으로도 뭔가 표현을 하지 못하니까 답답해집니다.

주님 안에 있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자꾸 억누르다 보면 그러한 느낌이 없어진 것 같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되고 오히려 힘이 더 세어져서

결국 나중에는 엉뚱한 곳에서 터질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은 내가 표현해야 할 감정을 표현 못할 때 나타나는 병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어떤 문제점을 느끼고 도망가고 싶고 숨기고 싶을 때

그것을 빨리 예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사랑이 가슴 속에 채워집니다.

 

더 이상 마음이 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한 마음, 두려운 마음, 배고픈 마음 모두 주님 앞에 내어놓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억누르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신앙 생활을 할 때 무조건 억압하고 억누르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해 종종 화를 내는 것은

억압을 푸는 것이 아니고 폭발하는 것으로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항상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데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억압이 되어 폭발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나) 동일시와 보상심리

 

어렸을 때 아이들은 가장 가까운 부모들을 흉내내면서 자라고 닮아갑니다.

그들은 부모의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처음부터 자기 주체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해서 부모가 주는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커 나갑니다.

 

나의 부족한 것을 예수님으로부터 끌어당겨서

내가 강해지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서

내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게모르게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해서

하나님께서 거하셔야 할 자리에 자신을 앉힙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그렇게 해서 받은 능력을 휘두르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이용해서

능력 있는 종으로 과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 아니라 신념과 배짱과 적극적인 생각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고난의 십자가가 없는

영광의 부활만을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깨진 경험이 없는 온전하지 못한 믿음입니다.

먼저 자신의 더럽고 악한 모습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부족한 면이 보여지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 반동형성

 

미워하는 마음이 클수록 반대로 친절할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더 많이 공손해집니다.

마음에 더러운 것이 많을수록 윤리를 더욱 주장합니다.

 
이기적일수록 이타적인 것처럼 할 수 있습니다.

우울할 때 밝은 표정을 하고 웃습니다.

우울하면 더 화려하게 꾸밉니다.

화장도 더 짙어집니다.

교만할수록 더 겸손해지려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어떠한 더러운 것들이 있습니까?

악한 생각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과 훼방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런 것들이 가득하니까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겉모습을 깨끗하게 하려고 합니다.

무덤 속에서는 시체가 썩어가는데

바리새인들처럼 겉에다 회칠을 희고 깨끗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 속이 더러울수록 겉으로 더욱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내 속이 무질서할수록 겉을 더욱 정돈하려고 합니다.

반듯한 것, 깨끗한 것, 완벽한 것, 의로운 것,

이런 것을 지나치게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위장하고 덮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지적하셨듯이

깨끗하게 하려는 너희 속에 더러운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과 도덕을 찾을 때

그 속에 그 만큼 더 비도덕적이고 율법을 어기고 싶은

나의 욕심이 있고 죄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완벽하려는 사람은 그만큼 완벽하지 않고

너무 도덕적인 사람은 그 속이 그만큼 비도덕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역설이 아니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서

바리새인들은 물론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나의 의와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절대 완벽해질 수 없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닮게 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따름이고

인간은 마음의 중심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 행위를 보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라) 지적화(intellectualization)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내 마음 속에

무엇인가 막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풀어 보려고 자꾸 지식화, 지적화합니다.

 

그런 분들 속에는 사랑을 받고 싶고

뭔가 두려움과 불신이 있기 때문에

자꾸 하나님에 대해서 따지는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말씀을 통해서 내 것을 감춥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문제를 합리화시킵니다.

 

성경공부는 열심히 하고

말씀은 많이 아는데

마음이 열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성경은 많이 알았지만

예수님의 거듭난다는 말씀을 이해 못 했습니다.

말씀을 단지 지식으로만 알았을 뿐이고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지적으로만 알면

복음이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합니다.

복음이 진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깨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진정으로 복된 소식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됩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경험하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마) 투 사

 

투사는 자기가 열등하다고 느끼면 괴롭기 때문에

밖에 있는 다른 것에 핑계를 대는 행위입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피해 의식인데

이 속에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자기가 열등해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 때문이라고 원인을 밖에서 찾습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태복음 7장 1-5절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바로 우리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의 눈에 들보가 있는데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비판을 통해 자기 문제를 감추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어 기제를 통해

상한 마음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방어 기제 뒤에 감춰진 

상한 마음을 드러내기를 원하시고

이를 통해서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