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성훈
연세의대 졸업. 신경정신과 전문의.
미국 베일러 의대 및 캘리포니아 대학 얼바인 정신과 연수. 연세 의대 정신과 교수
현재 연세의대 정신과 외래교수, 연정 뇌기능 수면 연구소장, 연정신경정신과 의원장
머리말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모태신앙으로 그 누구보다 예수님의 구원과 치유를 많이 들어온 나 자신이
정신의학을 하며 나와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치료해 보려고 그토록 애써 왔건만,
진정 예수님 속에 그토록 깊고 완전한 치유가 있는 지를 오랫동안 몰랐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기회를 통해 예수님과 성령님을 더욱 깊이 체험하도록 하셨고,
그 이후 나에게 찾아온 평안과 치유는
과거에 내가 정신의학에서 추구하고 경험해 온 치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고 좋은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이 신앙적 치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영적치유, 크리스찬 상담, 내적 치유 등 이에 관련된 전문서적과전문가들을 접해
(마침 그 당시 미국에 머루르고 있던중이라 이러한 자료와 상담가들은 어렵지 않게)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나를 광야와 같은 삶으로 인도하셨다.
내 속에 그토록 큰 아픔과 추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두려움, 열등감, 욕심, 인정과 사랑에 굶주린 마음, 미움 들.........,
하나님은 이를 계속 드러내셨다.
무척 아팠지만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이를 하나하나 치유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용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하나의 현장 속에서 깊이 경험하도록 해 주셨다.
지나고 보니 지난 몇 년간의 세월은
하나님께서 내적 치유의 실제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이리저리 나를 인도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경험한 사건, 만난 사람과 환자들, 이 모든 일들이 나의 치유의 내용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치유를 통해 그동안 내적 치유 세미나를 갖도록 허락해 주셨고,
이제 부족하지만 이를 정리할 수 있게 되니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너무도 크심을 새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치유는 본질적으로 지식을 통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부딪혀야 한다.
치유는 치유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성령의 현장적인 역사이다.
이 글이 내적 치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촉발제가 되었으면 하며,
결코 내적 치유의 전부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제 1 장 하나님 나라와 내적치유
우리의 마음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신6: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듯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마음이 차지하는 비율은 큽니다.
신앙이란 결국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에는 열매가 없을까요? 아니 왜 부족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이 성장되어지지 못하고 멈추어져 있거나
영양이 결핍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마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음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싶어합니다.
성경은 심리학 서적도 아닌데 ‘마음’이란 단어가 919번이나 나옵니다.
올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마음상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면
마음의 문제가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의 문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매일매일의 생활속에 많은 갈등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 생활속에서 이런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한다고 새벽 기도, 수요 예배, 주일 낮과 밤 예배,
철야 예배에 나가고 심지어는 각종 부흥회와 기도원에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막상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신앙 안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쩔쩔매게 됩니다.
‘기도하라’, ‘말씀을 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듣고 그렇게 해보지만
잘 되는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마음이 오히려 더 산만해지고 복잡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경우 누구에게 털어놓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남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내적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여
마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한번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열심히 봉사를 하다가도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대부분도 마음의 상처로 인한 것이 많습니다.
마음의 조그마한 상처가 곪아 터져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눈덩이같이 커지듯이
사소한 문제들이 오랜 시간 쌓이게 되면 결국 교회가 갈라지는 일도 생기게 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도 못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변화되어 세상까지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과 마음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의지적인 면이 너무 강조되거나
어떤 종교적 행위가 중요시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마음의 상태를 무시하게 되는데 매우 위험한 신앙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의지적 믿음과 종교적 행위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와 감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고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분이 조금만 좋아지는 것 같으면
쉽게 성령충만이라든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의 깊은 본체를 깨닫지 못하고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거나
누가 말을 그럴 듯하게 하면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누가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면
저 사람은 사단이다. 사단이 들어가서 저렇다고 단정짓곤 합니다.
좀 좋으면 다 성령이요, 좀 나쁘면 다 사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정의 문제를 너무 쉽게 이분화시키려고 합니다.
마음의 문제가 생기면 그 의미와 뜻을 잘 파악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치유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데,
단순히 이분화시키다 보니 마음의 문제를 영적인 문제로 그냥 덮어 버리게 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마음의 문제가 쉽게 무시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종교적인 행위와 신앙 생활의 결과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가난한 과부의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과시적인 면이 있고,
또 열심히 봉사를 하지만 남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의 열등감을 보상받으려고 열심을 내기도 합니다.
그 동기가 순수하게 하나님 앞에 가 있지 않음을 본인도 모를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겉으로 보면 잘 모르지만
그 사람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 무의식적인 동기가 드러나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누구보다도 거룩하고 경건했던 바리새인들의 실체가 어느 때 드러났습니까?
예수께서 오심으로 그들의 거짓과 더러움이 다 드러났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동기와 본질은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으로 신앙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신앙의 겉부분을 중시하다 보니 내면의 것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인 영향으로
자기 감정대로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천박스럽게 여기고 죄악시 합니다.
그래서 마치 코미디언들이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TV에만 나오면 웃어야 되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에만 오면 성령 충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시험들었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집에서는 인상 쓰고 있다가도 교회에 오면 억지 웃음을 하고 다닙니다.
신앙 안에 있어도 때로는 마음이 아프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시며 기도하시고 고뇌에 차서 괴로워하시지 않았습니까?
교회에는 죄인들, 슬픈 사람들, 고민 있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항상 깨끗하고, 웃고, 즐거워하는 사람들만 있게 되니까
조금 더러운 옷을 입고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왔다가는 그냥 나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진정으로 이런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와서 위로받고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치유하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마음이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 누구든지 와서
위로받고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은 성경에 있습니다.
치유라는 것은 많은 과정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경우에 따라 단번에 회복시켜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우리가 상실한 그 과정을
하나하나씩 다시 밟아서 원인적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얼마나 치밀하고 차근차근하신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마치 모든 기업과 자손을 단숨에 차고 넘치게 주실 것처럼 부르셨지만,
그가 아들 이삭 하나를 얻는 데 25년이난 걸렸습니다.
출애굽 당시에도 금방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 같았는데,
왜 40년간 방황을 하게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많이 싸우게 하십니까?
이런 많은 시간들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벌써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다 일러 주셨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종살이 할 것과 그 다음에 해방될 것 등을
미리 400년 전에 다 계획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오셨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과 회복을
당신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태를 잘 아시고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십니다.
예수님은 마13장에서 천국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나오는 것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천국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씨앗으로 비유하고 인간을 밭으로 비유했습니다.
씨앗은 완전히 준비가 되어 있고 밭에 씨만 뿌리면 될 것 같은데
밭, 즉 나의 마음에 따라 자라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밭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것이 잘 자라기도 하고 덜 자라기도 하고,
또 하나님 나라로 향해 가기도 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끝까지 가기도 하고, 중도에서 잘못되어 시들기도 합니다.
아무리 씨앗이 많이 떨어져도 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으면 자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가시들로 인해 상처가 많고 돌밭으로 인해 메마르고,
혹 겉으로 보기에 시원한 아스팔트 도로가 좌악 펼쳐져 있는 것 같지만
그 곳에는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돌멩이들을 다 긁어 내고, 가시를 다 쳐 내고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아스팔트는 걷어 내고,
딱딱한 부분을 일구어 옥토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들의 마음에 천국의 복음이 자라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자랄 수 있도록
마음밭을 일구워 내는 작업,
이것이 곧 내적 치유입니다.
내 마음에 복음이 들어 왔다가 뿌리를 내리지 못내립니다.
성령님이 들어오셨지만 거하실 집이 없습니다.
마음 속에 성령의 충만함이 없고
그것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쫓아다니지만
받아도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즉 자신의 마음밭을 가꾸는 농사를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 나라가 꾸준히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밭을 옥토로 가꾼 사람에게는 말씀 하나만 떨어지면 절로 자랍니다.
자신이 변화되고 그로 인해 가정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밭은 안 보고
이리저리 씨만 얻으러 돌아다닙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씨를 얻으면 무엇합니까?
자기 마음밭이 옥토로 일구어져 있지 않으면
신앙, 즉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신앙인들은 남에게 전도하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말로는 전도를 하지만 자기한테 있는 가시와 돌멩이로 인해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됩니다.
이런 마음밭이 딱딱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파합니까?
그래서 내적치유는 중요한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난 후에는 어떤 후유증이 남을까요?
죄라는 것은 육신의 독한 병에 후유증이 따르듯이
그 뒤에는 항상 후유증이 따릅니다.
죄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큰 병입니다.
첫째로, 마음에 굉장히 큰 상처들이 남습니다.
죄라는 것은 마치 운석과도 같아서 작아도 땅에 떨어지면 그 자리에는 큰 자국이 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진 흔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양심으로 인해 괴로워집니다.
죄를 미워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죄지은 자신을 자학하고 미워합니다.
또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둘째로,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지나 않을까,
어떤 죄에 합당한 댓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이때 만약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자신을 벌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셋째로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죄의 문제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었지만
이러한 상처들이 미해결의 문제로 무의식중에 남아 있습니다.
또 성장하면서 환경과 부모, 형제, 친구, 이웃들에게서 받은 여러가지 상처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의 마음밭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친 마음밭으로 만들고 맙니다.
즉 열등감과 자학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게 됩니다.
넷째로 그 마음 가운데 불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의식적으로는 하면서도
막상 급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습니다.
자기가 취할 수 있는 방도를 먼저 행하여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 대신에 의지할 것을 많이 만들어 놓습니다.
돈과 권력과 지식 들에 의지해 보려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 외에도 의지할 수있는 끈을 많이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시는데도
우리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지를 못 하고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상처가 온전히 회복될 수 없습니다.
내적 치유에 있어서 주의 사항
첫째, 남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 자신의 문제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적 치유를 하다 보면 아픈 부분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치유의 과정이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치유는 되지 않습니다.
회피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자신의 문제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 투사(projection)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혹은 강의를 듣다가 다른 사람의 문제로 생각되거나 적용된다면
그 문제가 바로 나에게 적용이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둘째, 이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내면을 보지 못하도록 여러 외적인 사건들을 일으킬 것입니다.
셋째,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치유의 음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데
어떤 경우는 영적인 싸움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거하실 집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치유이며
거기에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넷째, 기본적인 내적 치유가 우리를 단번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게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적 치유를 받으면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내 속에 감추어진 쓴물들이 올라와 더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더 나빠지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치유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다섯째, 사명을 가지고 직접 간접으로 사역에 종사하거나
사역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내적치유가 더욱더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이 치유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곤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이 복음이라는 이름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처를 줄 때는 매우 큰 것이 되고 복음이 가리워지게 됩니다.
여섯째,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은지 꽤 오래되었지만 신앙이 안 자라고,
성경 공부나 교회 봉사도 남다르게 많이 해 왔지만
내면의 평안과 성격의 변화가 없다면
그 분들은 반드시 내적 치유가 필요한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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