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시대에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파한 이래로,
박해와 핍박의 일제강점기가 끝나자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성장하고 번영했다.
복음이 들어온 지 백여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무려 천만 명의 교인들이 생겼다.
항공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서울은
빨간 십자가의 물결이 넘쳤다고 한다.
세계의 초대형교회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있었고
사회지도층인사가 기독교인으로 가득 찼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라는 전도구호가,
세속적인 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속내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영혼구원의 복이 우선이었지만,
목사들은 그걸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고
교인들은 그걸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목사들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목회성공의 속내를 감추지 않았고
교인들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3분짜리 영접기도로 구원은 기정사실화되었고,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헌금을 드리며
각종 교회봉사를 하면 세상의 축복을 쏟아부어준다는
가짜복음이 우리네 교회에 만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탐욕적인 목사와
세속적인 교인들이 판치는
우리네 교회를 지켜보시는 게
견디기 어려우셨을 것이 불 보듯 환하다.
그래서 일년 전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나라를 초토화시키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성령께서는 작년 2월에
세상이 바뀌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게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서라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과학문명이 하늘을 찌르는 현대에
하찮은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겨우 일 년이 채 되기 전에,
온 세상 사람들은 전에 경험하던 세상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다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걸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코로바이러스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곳을 알아보면 된다.
그 곳은 바로 돈 버는 곳과 교회이다.
사람들이 박에 나가지 않으니까
자영업자나 회사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돈을 버는 곳은 피해가 막심하다.
사실 이 시대의 우상이 바로 돈이지 않은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하나님 대신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돈을 빼앗아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허무함을
느끼게 해주시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치명적인 피해를 받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닌가?
교회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왜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징벌을 받아야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네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이 해오고 있는 신앙방식이
하나님을 전혀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거꾸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칼을 빼 드셨으니까
목적을 달성하실 때까지 칼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이 일 년이 지났으므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목사들과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언제까지 교회를 흔드실 것인지 아는 게 어렵지 않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에서 저지른 최악의 죄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하나님을 찾아오지 않은 죄이다.
하나님의 만나는 통로는 기도와 말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은
하루에 10분도 기도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목사들도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소수의 교인들도
하나님을 찾아와서 깊게 사귀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소원을 이루는
“다오, 다오”하는 기도를 무한 반복할 뿐이다.
또한 이 시대는 성경이 완성된 시대라고 떠벌리지만
집에서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교인들은 별로 없는 게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찾아와서 찬양하고 경배하고 감사하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원하시지만,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조차 종교적인 의식을 마치고
먹고 마시고 낄낄거리다가 집에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팬더믹이 끝나면
교회 수는 반 토막이 날 것이고,
교회에 남아있는 교인들도 믿음이 식어져서
교회마당을 밟다가 이 땅을 떠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눈치 채셨을 것이다.
당신과 가족들의 영혼이라도 구원받으려면
골방에 들어가서 목이 메도록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를 보라.
그들은 로마당국과 유대교의 핍박과 박해로
숨이 막히도록 공포의 일상에서 살아야 했다.
잡히면 고문 끝에 순교하는 이들이 주변에 널렸다.
그래서 그들은 평생 숨어 도망자로 살다가
세상을 뜬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을까?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가
바로 생명줄이었을 것이 불 보듯 환하다.
우리나라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구한말 선교사들의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내 싹을 틔웠지만
일제의 박해와 핍박은 이제 겨우 자란 복음의 싹이 고사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우리네 믿음의 선조들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절박한 기도가
한국 기독교의 생명을 이어주는 산소 호흡기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네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다.
이렇게 교회가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당해 짓밟히고 있는데도
그동안 하나님을 찾지 않는 대역죄를 통곡하고
회개하라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가르치지 않은 탓이다.
그러므로 당신이라도 살려면 골방에 들어가서
그동안 하나님을 찾지 않은
패역무도한 죄를 내어놓고 통회자복하시라.
지금의 암울한 상황은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세속적인 복을 얻으려고 교회마당을 밟았으니
하나님이 거들떠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하나님이 칼을 빼들으셨으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은
징벌의 칼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과 가족들이라도 살아남아
천국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사랑하는 친척들과 이웃이라도 살리고 싶다면
골방에 들어가서 석고대죄하고
눈물의 성을 쌓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그루터기라도 남아있다면,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새로운 싹을 틔우게 하실지
누가 알겠는가?
종말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암울한 시대에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 던져질 것이 불 보듯 환하다.
그러므로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암울한 이 시대에,
당신의 기도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살리는
촛불이 될 것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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