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라는 표현은
감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말이지만,
행간에 심오한 목회철학과 신앙방식이 배어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위대한 그분의 이름이 만 천하에 드러내고
온 세상 만물이 그 앞에 나와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우주를 운행하시고 대자연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이런 표현을 나열하니, 무슨 찬송가 가사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게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고 목표이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 말에 동의해야 하며 동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동의를 하는 게 지식이나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해야 하며 행동으로도 나타나야 한다.
물론 그렇게 살고 있지 않지만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무진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은 크리스천도
적지 않은 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라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말하자면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드러내고 그 분의 영광만을 비추라는 것이다.
뭐, 그걸 모르는 크리스천을 별로 없을 게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자신이 하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게 없다는 말이다.
원론적으로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이 말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고? 그렇다면 행동으로 배어 나와야 한다.
가슴으로 느낀다면 행동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느낀다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무진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면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재물을 하나님 나라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재물을 교회에 헌금으로 드리라는 게 아니다.
불쌍한 이웃을 돕는 구제와 복음 전하는 모든 일에 사용하여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의 조건으로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고 하신 이유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써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주일 헌금과 십일조 헌금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당신의 임의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생활비로 쓰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돈들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에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
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모든 재물을 마음대로 쓰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다고
자랑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의 시간은 또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잠자리에 눕는 시간까지
무엇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아마 가장 많은 시간은 돈을 버는 데 사용할 것이고,
남은 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사용할 것이고,
예배도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사용할 것이다.
돈 버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당신의 처지를 필자도 이해한다.
필자도 오랫동안 사역을 병행하면서 생업을 가지고 있기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돈을 버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계비를 충분히 넘는 수입을 벌고 있는 데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무얼 하는가? 친구를 만나고,
TV를 보고, 취미생활을 하고, 쾌락을 즐기는 데 소비할 것이다.
뭐, 필자가 그런 당신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아끼지 않고 물 쓰듯 하면서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고 성경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하는 당신을 빗대어하는 말이다.
물론 예배의식에도 성실하게 참여할 것이고,
교회 봉사와 전도부에도 들어가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뭐 새벽예배도 다니고 있다고?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예배에 겨우 참석하는 사람에 비하면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기준이 다른 교우나 친구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다시 본론의 주제로 돌아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라는 구절을 곱씹어 보도록 하자.
이 말씀은 성경에 있으며 유명한 찬송가 가사로도 불리어지고 있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벌고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각종 헌금과 십일조를 내고 교회건축헌금도 낸다.
그리고 교회에서 정한 여러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교회봉사와 기도회에도 열심이다.
그러나 이런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과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하는 행위인가?
예배의 광고시간에 헌금봉투에 쓰여진 이름이 호명되고
주보에 실리지 않으면 교회수입이 삼분의 일이 줄어들 것이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는 것이라면
굳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본 교회까지 와야 하는 이유가 뭘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각종 봉사와 전도행위를 비롯한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시험이 들고 서운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필자가 이 주제를 끄집어 낸 것은
성령께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하는 것은
기도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기도에 집중하려면 빛과 소음 등에,
방해받지 않은 장소에서 방해받지 않은 시간에 해야 한다.
그렇다면 새벽 이른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에
조용한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교회의 기도회에 여럿이 참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행위를 두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의란 자기 자랑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모두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 하기에 말이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침을 튀기며 말하곤 한다.
그렇게 드러나게 말은 안 해도
교인들이나 목회자가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맘이 들고 시험에 드는 이유이다.
이런 현상은 교인 뿐 아니라 목회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생을 바치고 사명을 받아
신학교를 졸업해서 목사가 되었을 게다.
그러나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목사들을 보는 일은 드물다.
그들은 개척하기 무섭게 어깨띠를 두르고 전도지를 들고
하루 종일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다.
교인이 어느 정도 들어차면
예배를 인도하거나 교육을 받거나
심방을 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역은 시킨 일이라는 뜻이다.
주의 종이라면 예수님께서 시킨 일을 하는 노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에게 능력을 주셔서 일을 맡기신다.
그렇다면 능력을 받는 행위가 무엇인가?
기도하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골방에 틀어박혀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에 따라,
재능과 은사에 맞게, 환경이 열리는 대로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 대부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기다리지 않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왜 기도하는 일에 매진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거나
자신의 능력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목회자도 그럴진대
그 밑에서 배우는 교인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필자는 사역을 시작하고 원룸을 얻어 교회 간판도 십자가도 없이
10여년간 아내와 단둘이 예배를 드리며 사역을 시작했다.
수입이 없어 화장품 방문판매업을 10여년이 넘게 하며
오직 기도와 말씀을 읽는 일에 매진을 했다.
그렇게 13년차가 되자 사역이 열렸다.
오랜 시간 기도한 열매가 풍성하고 은사도 적지 않게 받았다.
만약 사역이 열리지 않았다면
지금도 기도하고 말씀 읽는 이외에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운 필자의 과거사를 밝히는 이유는,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사는 것은
골방에 틀어박혀 기도하는 일이라는
성령의 말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당신이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면 영적 능력을 주시고
각종 은사와 지혜와 지식을 주시고 환경을 열어주시고
사람을 붙여주셔서 일을 하신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그릇이고 도구이고 종일뿐이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골방에 틀어박혀
기도하는 일에 삶의 최우선 순위를 두길 바란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며
최고의 능력을 얻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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