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되면 태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시내가 범람하여 강처럼 파도가 친다.
다리 끝까지 물이 차오르고 곳곳이 침수되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제방 뚝이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날이면
그 밑의 동네와 논밭이 물에 잠겨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래서 세찬 비가 연일 계속되면
사람들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TV의 뉴스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러나 그치지 않을 것처럼 세차게 내리던 비도
어느 덧 잦아들고 쨍하고 해가 나면 사람들은 다시 환한 얼굴로 밖에 나와
그간 내렸던 엄청난 비와 피해상황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안심해 한다.
이런 현상은 매년 태풍 철이 닥치면 으레 연례행사로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러나 예전에 그러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사건이다.
세찬비가 무려 40일을 밤낮없이 내리고 백오십 일간 모든 것이 물에 잠겨있었다.
갑자기 물 밖 세상이 죄다 수장되어 버린 것이다.
논밭은 물론 집과 가축도 갑자기 불어난 물에 잠겼고
사람들도 공포에 눈이 풀린 채 허겁지겁 높은 곳을 찾아 산에 오르거나
지붕 위나 나무 꼭대기 등 가리지 않고 올라갔지만
차오르는 물이 자신의 자녀와 아내를 삼키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다가
자신도 끝내 거센 물살에 휩쓸려 버렸다.
성경은 그 때의 사건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홍수로 심판한 이유는
땅에서 모든 혈육이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음이 불편하셨는지,
이후로는 물의 심판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앞으로 불의 심판이 곧 닥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홍수의 심판사건은 옛날 옛적 호랭이 담배 피우던 시절,
기억이 가물가물한 때의 사건이기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제 세월이 흘러 세상은 많이 변했고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성경의 경고는 변함없이 우리의 귀에 들리고 눈에 읽히고 있다.
예기치 않게 갑자기 환란의 날, 심판의 날이 닥칠 거라는 말과 함께.
엊그제 성령께서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우리네 교회들을 깨우라고 하셔서
예전에 하셨던 임박한 환란에 대한 말씀들이 생각나서 옮겨보겠다.
‘기회가 나는 대로 일하라. 이 시대는 노아의 시대와 같다.’
‘노아의 시절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이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던 것처럼, 이 시대가 그렇다.’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이다.’
‘심판의 날이 가까워졌다고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느냐?’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 너희 짐을 나누어라.’
‘사람들이 사는 즐거움에 빠져 나를 잊어버리고 산다.’
‘마지막이 임박했다.’ ‘임박한 종말’
‘노아의 때와 같이 이때가 그렇다.’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라.’
위의 말씀들은 이미 성경 여러 곳에 있는 경고의 말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님도 그 당시에 심판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으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재림하실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고 이천여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곧 오실 것을 기대하며 가슴을 졸이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많은 시간이 지나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긴장이 풀어지고 경계가 느슨해져서
하루하루를 먹고 마시는 일에 몰두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야 성경의 경고조차 관심이 없지만 말이다.
오늘 필자가 이 주제의 칼럼을 쓰는 이유는
작금의 카페에 난무하는 종말론자들처럼, 두려움과 공포심을 전염시키면서
자신들의 집회에 참석하고 겁에 질려 외쳐대는 기도회에 들어와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간 그들의 노력(?) 덕분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종말에 대한 경각심을 넘어서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있다.
그러나 이들이 너무 나간 탓인지 늑대소년이 되어버린 느낌도 적지 않다.
결국 그들이 진흙탕을 만들어버린 덕택에,
정작 성경적으로 깨우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삼켜버렸다.
어쨌든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과 별 다름없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심판의 날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게 견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
심판 날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네 상태는 6.25전쟁이 터진 그 날 아침에도
사람들은 야구장에 야구구경을 가고 늦잠을 자면서
안락하고 평온한 일상을 지내고 있던 때와 너무 흡사하여
갑자기 오싹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필자가 종말의 경고에 대한 진부한(?) 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무관심한 세상 사람들이나 세속적인 기독교인에게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들은 필자가 무슨 얘길 하든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필자 역시 그들에게 전혀 할 말이 없다.
필자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준 양들이다.
필자가 받은 성경의 깨달음과 성령의 말씀을 이들에게 전해 주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이 아침에도 이 주제에 대해 쓰는 중이다.
성령께서 하신 말씀은 지금이 바로 영적 각성이 일어날 때라고 하셨다.
영적 각성이란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이 깨어 일어날 때라는 말씀이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천국을 준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인생을 즐기고 있는 상태이다.
물론 자신들은 준비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주일성수를 비롯한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으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금은 쿨쿨 잠을 자고 있을 밤중이 아니라 깨어서 일어날 때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힘쓰며
말씀을 깨달으려고 노심초사해야 한다.
말하자면 성령이 내주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깨어있다고 외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깨어있음’에 대한 성경의 정의를 살펴보겠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구하라.’(엡6:1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이처럼 깨어 있다는 성경의 증거는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일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교회 봉사를 하고 전도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깨어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신앙행위는 기도로 깨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자연스레 나오는 행위이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희생적인 신앙행위는
자신의 의만 드러내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목회자들조차 기도하지 않고 사역에 몰두하고 있으니 교인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아니, 기도하고 있다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성실하게 나오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그게 성경적인 기도의 모습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모습은 항상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지,
새벽기도회에 나와 20분 동안 자신이 소원하는 목록을 큰소리로 복창하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란 입을 달싹거리며 형식적으로 메우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과 깊게 사귀며 몰입하는 기도를 말한다.
이런 기도를 하려면 적지 않은 기간 기도훈련을 받아야 하며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강을 건너기 시작하여 아침, 저녁으로 1시간 이상을 기도해야 한다.
낮에도 틈만 나면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감사하고 경배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이런 기도가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20분기도하는 것조차 시행하지 못하는 자들이
무슨 깨어 있는 사람들인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낙심하거나 상심하지 말라.
이런 기도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성령이 내주하면 기도할 힘과 능력을 주시며 평안과 기쁨을 주신다.
자신이 할일은 다만 성령이 내주할 때까지 혹독한 기도훈련을 통과하면 된다.
그 이후에는 성령이 기도를 인도하시면 기도의 강을 건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훈련조차 관심이 없고,
기도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기회는 없다.
천국은 좁은 문이라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며,
그곳은 싸워 이기는 자가 가는 곳(침노하는 곳이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
마11:12)이라고 성경에 말한 이유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천국 문이 점점 닫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다시는 당신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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