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성도의 뜨거운 신앙생활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미지근할 바에야 아예 차가운 것이 낫다는 말씀은 선뜻 이해가 안 된다.(계3:15~16)
교회 전혀 안 나오는 것보다는 미지근해도 교회에 나오는 것이 좋고
그렇게 해서라도 말씀을 듣는 기회가 많아야 변화된다고 생각하면
미지근한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차든지 하기를 원한다.”라는 말은
“엉터리로 믿을 바에야 차라리 교회를 멀리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아니라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라!”는 의미가 강하다.
머리는 냉철하고 가슴은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머리도 뜨겁고 가슴도 뜨거우면 신비주의자가 된다.
성도는 말씀도 차분히 공부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반대로 머리도 차갑고 가슴도 차가우면 자유주의자가 되면서
이론은 있는데 변화의 능력은 없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는 차분하게 말씀도 공부하고 묵상도 하면서
동시에 뜨겁게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균형 잡힌 성도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라.
많은 것을 품는 통전성은 성도의 온전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진리와 비진리는 분별하되 흑백논리에 빠지면 안 된다.
내 편이 아니라고 다 적은 아니다.
하나님은 신비주의자처럼 좌측으로 치우쳐서 덮어놓고 믿는 사람도 원하지 않고
자유주의자처럼 우측으로 치우쳐서 무조건 비판만 하는 사람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고 묵상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헌신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성도를 원하신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말씀 충만’과 ‘성령 충만’이 겸비되어야 한다.
어떤 교인은 펄펄 끓는 건 잘하는데 냉철한 관리 능력이 없다.
때로는 시멘트처럼 배운 것을 굳게 해야 하는데 그런 굳은 믿음이 없다.
그처럼 어떤 일에 쉽게 흔들리고
말 한마디만 듣고 분위기 하나만 바뀌어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면
세상의 빛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기적을 체험해도
작은 일에 흔들리고 조급하고 치우치는 성도는
결코 능력 있는 성도가 될 수 없다.
부자도 벼락부자보다는 많은 시련을 통과하고
많은 시간을 경과한 후에 부의 정상으로 올라선 부자가 진짜 복된 부자다.
그래야 돈의 귀중함도 알고 마지막에는 좋은 일에 쓰고 천국에 간다.
너무 서두르거나 치우치지 말고
너무 자기만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꾸준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치우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 복의 열매가 가득 맺히게 된다.
건강과 형통의 은혜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치우치지 않는 믿음이다.
못 배우고 가난하고 죄가 많아도 길이 있지만 치우치면 길이 없다.
그러므로 치우치지 않도록 잘 박힌 못처럼 믿음 관리를 잘해야 한다.
말씀 충만과 성령 충만이 겸비되어야 한다.
말씀 충만의 보수성과 안정성으로도 너무 치우치지 말고
성령 충만의 개혁성과 변화성으로도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말씀 충만’으로만 너무 치우치면 율법주의자가 되고
‘성령 충만’으로만 너무 치우치면 신비주의자가 된다.
요긴하게 쓰임 받는 사람은 대개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다.
치우치지 않으면 직장생활도 잘하게 되고 인간관계도 잘하게 된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치우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복을 주시겠는가?
신앙에는 속성코스도 없고 왕도도 없다.
중심을 따라 꾸준해야 한다.
우등상 신앙보다 개근상 신앙이 더 아름답다.
하나님은 화려한 성도보다 충성된 성도를 더 원하신다.
이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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