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갈등이 생기고 분쟁이 생기는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고 감정적인 문제가 더 지배적인 것 같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고,
외톨이가 되었다든지, 목사님이 덜 관심을 준다든지, 어떤 설교에 감정이 상했다든지,
어떤 교인에 의하여 기분이 나빴다든지 하여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삐졌다고 하는 것이나 시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이나
다 감정이 상처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교회가 특별히 잘못되었다는 정의감에
교회를 떠나는 것은 아마 보다 소수일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소소한 감정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싶어도
감정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다.
순종하고 감사하면서 대응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지는 몰라도
우리의 감정은 "아니다"라고 하니까 감정이 우선은 승리한다고 할까?
워낙 많은 상처를 남편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가장 잘 아는 아내가 남편의 자존심을 깊이 상하게 하다 보니
사랑이 가는 것을 막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내 경우, 사단에게 쓰러지는 경우도,
감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이다.
옳고 그름을 잘 알고 있고,
이러다가 사단에게 지는 것인줄 뻔히 알면서도
감정적인 상태를 조절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리고 사단도 나의 어디를 건드리면
가장 쉽게 쓰러지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그것이 나의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씀보다도 개인적인 감정이 먼저 반응을 하고
감정적 판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멀게 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수치심이 많았고
상처를 많이 받았었기 때문에,
그 감정을 건드리면 어김없이 말씀보다도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결국, 사람들이 싸우고 헤어지는 것은 큰 문제들이 아니다.
감정적 상처의 골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겨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은 머리이지만,
마음에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 이 감정적 상처의 골이다.
그래서 감정을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 E.Q.)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이미지 가운데 감성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감정을 닮아가는 지수이다.
감정을 느끼는 대로 그대로 표현하면서
격하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도 속사람의 감정과 겉사람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감성, 성숙한 감정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슬플 때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 기쁨을 잘 표현하고,
분노를 다스릴 줄 알고, 인격적으로 감정을
성숙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 감성지수이다.
감정적이라는 것과 감성적이라는 것의 차이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여과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감정적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어렸을 때 아파서 울면
“뚝, 아이 착하다”하면서 아픈 것을 잘 표현도 못하고 참아야 하였고,
기쁠 때도 너무 웃으면 “사람이 헤프다”고 비난을 받기도 하여서
감성지수가 자라지 못하고, 감정을 죽이고 사는데 익숙해졌었다.
감정이 과하게 나타나거나, 감정을 죽이고 살거나
이 모든 것은 감성이 아니다.
감성은 건강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성숙한 감성지수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못할 때 사단이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아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게 하며,
사단이 들어오는 가장 좋은 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욥은 두려움이라는 틈을 타고 사단이 공격했고,
사울 왕은 질투라는 틈을 타고 사단의 종노릇하게 되었다.
결국 감정지수가 낮을 때 자녀나 배우자, 가족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
나아가서는 사단의 밥이 되는 가장 쉬운 경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감정지수를 높이는 일, 감정 성화에 우리가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일만여 감정적 표현이 있고, 일만여 감정적 상처가 있는 인생에서
성숙한 감정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길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주님과 동역하면서 성화의 길을 걸을 때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감정을 다스리면서 건전한 감정지수를 갖는다는 것이 너무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도 “이루어 갈 때”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성화의 한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때는 우리가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우리의 손에 다스림을 받는 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
주님은 이러한 감정 다스림의 문제에서도 멘토가 되시기를 원하신다.
성령님과 동역하는 감정적 성화에 길에 한번 들어가 보자.
질문: 가장 어려운 성화의 영역이
감정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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