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만나의 원리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사실 대학교를 졸업한 1974년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만나의 원리의 살아온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질문을 해 본다. 1. 하나님이 평생 할 사역을 나에게 미리 알려주시고 명령해주셨다면 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2. 일생 내가 살아가는 길을 미리 보여주셨다면 나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나는 카페를 시작하면서 어떤 방향도 대책도 없었다. 단지 영성훈련을 할 수 있는 카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다음카페를 통해서 그런 일들을 하게 하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1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카페를 돌보게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은 카페에 대한 것도, 사역에 대한 것도 그 날 아침에 하루 분량만 알려주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래를 바라보며 계획을 하는 것은 나이지만, 실제로 매일 아침 신선한 만나처럼, 오늘 무엇을 해야 할 지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자러 가는 전날 밤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아침에 알려주셨고, 나는 그대로 순종해왔다.
카페의 일도 미리 나는 알고 숨기고 있다가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아침에 주신 것을 공개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고 남편도 모르고 오직 주님만 알고 계셨다.
우리는 대부분 사역비만에 빠져있다. 하루도 성실하게 사역하지 못하면서 미래의 물거품 같은 사역, 실체가 없는 사역 때문에 힘겹고 무겁기까지 하다.
걱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루 걱정할 에너지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먼 훗날까지 걱정한다.
걱정에 드는 에너지는 엄청난데, 그 날 하루 공급된 만나로 하루 걱정은 족한 것이다. 더 이상 걱정할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초과된 것은 걱정 비만에 빠져 인생의 무거운 스트레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실체가 없는 걱정에 오늘도 잠을 설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일시에 다 알려주지 않으시고 하루에 필요한 사역과 하루에 할 수 있는 걱정의 양을 정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갔을 것이다.
하나님은 날마다 새로운 말씀과 사역을 주셔서, 매일 아침 만나를 주우러 갔던 이스라엘과 같이 “그 하루가 하루로 족하게 하셨다”.
항상 주님의 말씀은 생명이다. 더 많이 모은 만나는 하루 뒤에는 썩었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많이 먹은 영적 양식도 다음날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영적 양식도 하루양식으로 족하다. 하루의 법칙, 만나의 법칙을 따르면 우리는 걱정 없이,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다.
사역도 하루, 걱정도 하루, 그렇게 살면 온 인생이라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게 될 줄 믿는다.
그렇게 살기 시작하니까, 정말 영원 안에서 사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하루로 충만해지니까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시간이 나누어지지도 않고, 충만한 하루로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한다.
만나로 주어진 오늘 하루, 이 하루가 하루로 족하면, 이 하루는 주님의 하루와 연결되어 영원한 지금(eternal now)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루를 살면서 그 하루를 실체도 없는 걱정이라는 짐으로 가득 채우고 사는 인생이 아닌, 하루를 살면서도 영원을 누리는 삶이 만나의 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소박한 승리이다.
“오늘 필요한 양식을 주옵시며”
1. 여러분의 하루는 미래의 걱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아니면 그 하루의 주어진 만나로 족한 인생을 누리고 있습니까? 무엇으로 충만한지요?
- 윤남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