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루를 살아갈 양식, 만나를 주셨다.
그런데 그 에너지를 과거와 미래에 소비하면서
현재는 충실 되게 못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과거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상처로 매여서, 과거를 향해 쏟는 에너지
미래를 바라보면서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에 대해 쏟는 에너지
그래서 막상 오늘을 살아갈 충분한 에너지를 못 얻는 것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못난 자존감과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항상 우울했다.
(여러분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것은 주관적인 비교에서 생겼으리라).
워낙 친구들이 빵빵한 집안이고 나는 너무 내가 생각해도 초라했다.
그들은 권력, 부, 명예, 아름다움, 실력, 건강,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전국에서 0.03 %의 부자가 산다는 중학교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시골 초등학교를 나온 나는 덕수, 수송, 미동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에게 밀리었다.
그들은 그룹을 지어 다니면서 다른 이들의 기를 죽였다.
(자신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모두 자가용 운전사들이 운전해주고,
요리사가 만들어주는 특급점심도시락을 들고 오는 친구들이었고,
신동아 재벌의 딸은 2년간 나의 짝이었었다.
그녀의 가방에는 몇 십 만원 현찰이 항상 들어있었는데
그 때, 우리 아버지 월급이 3만원 할 때였다.
그것이 1960년 대에 일이었다.
이러한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을 길은 오직 공부하나였다.
그래서 전교 1등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열등감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우월감이 태어나게 된 이유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하루 종일 생각하였다.
지리 선생이 될까? 아니면 국어선생이 될까?
아니면 소설가? 시인? 아니면 대학 교수? 아니면 만화가?
나는 매일 무엇이 될까? 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소일했고,
그 대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였다.
그런데 딸만 다섯 명을 두신 아버지,
그리고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이신 아버님께서
나에게 신학을 하라고 권고하셨고,
나는 순종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해서 감리교신학대학에 발을 내디디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했던 미래는 완전히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던 길로 가게 되었고,
부흥사나 치유사역자가 되리라고도 생각한 적이 인생에 한 번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증인이시다.
과거와 미래에 쏟는 에너지로 인하여
하루가 너무 부실하게 지나가게 되었다는 생각을 요즈음에 하고 있다.
미래를 걱정해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하루 풍성하게 살, 그만큼의 에너지와 양식을 주셨는데,
그 귀한 것을 과거에 대한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모두 소진하였던 것이다.
어느 한 목사님을 춘천에서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한 것 같다.
“하나님이 이 춘천에 치유센터를 지어서 나에게 맡기시겠다고 하셨고,
말레이시아에는 100 만 명 모이는 집회를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계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르친 이 감정의 치유에 대하여는 이미 원서로 다 읽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목회자 세미나를 내가 인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래에 있을 위대한 사역에 붙잡혀서 현재를 보지 못하는 이 불쌍한 목사님,
실체도 없는 뜬 구름을 잡으려고 하는 이 목사님,
지금 20년이 지났지만 말레이시아에서
100만 명을 모으고 집회를 한다는 목사님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다른 그 어느 누구도 없었다.
왜 과거에 붙잡히고 미래에 붙잡혀 있을까?
그것은 사단의 전략이다.
현재를 빼앗으려는 사단의 전략이다.
그래야 미래도 없으며, 현재적 부요와 풍요도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미래에 붙잡히면
현재도 불행해지지만 생각하는 더 좋은 미래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이 내일을 위한 귀한 초석이 된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건강한 과거가 건강한 오늘이 되고,
건강한 오늘이 건강한 미래가 된다.
그런 종말론적인 삶이
결국에는 영원한 지금, 오늘에 충성하는 것이다.
지금이 없으면 영원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미래에 만나주시는 분이 아니라 현재, 이 자리에서
즉 “지금, 여기서 here and now"에 만나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그 좋은 미래의 싹은 오늘에 있다.
오늘이 그 훌륭한 미래를 낳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럴 수 있는 만나를
오늘 하루에 부족함이 없도록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주신 것이다.
이 만나는 내일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늘 24시간에 주신 것이다.
이것을 남겨두면 내일은 썩는다.
내일의 만나는 내일에 내린다.
1. 혹시 여러분은 썩어서 버린 만나가 많이 있었는지요?
- 윤남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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