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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간증 2

007 RAMBO 2018. 6. 13. 21:42

1994년 11월 초부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본격적으로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대학졸업도 못하게 되었고
졸업을 못하니 제대로 취직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사면초가였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기도에 전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오직 기도에만 전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대로 말입니다.
독특한,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말입니다.

 

처음에는 기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한시간 정도 기도하면 힘이 쭉 빠져서
그 자리에 쓰러져 자곤 했습니다.
그러다 깨어나면 다시 기도하고...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기도했더니
3주 후부터 성령의 전폭적인 도우심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도한 것이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기도하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았고
저절로 기도가 되어졌습니다.

 

때로 기도하는 것이 무척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기도했고,
기도하다가 쓰러져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저는 "주시옵소서"라는 간구기도는 안 했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대로 기도했습니다.
간구기도가 기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간구기도는 가장 초보적인 기도고,
그 외에 방언기도, 찬양기도, 감사기도, 침묵기도가 있습니다.

 

방언기도 외에 제가 가장 많이 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졌다."라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다년간의 기도말씀을 통한 내적치유와 영적성장 과정 중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며칠 동안 밥도 못먹을 정도로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심한 구역질을 하면서 하루에 머그컵으로 5컵 이상의 멀건 물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심할 때는 작은 휴지통의 절반 이상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심한 사람은
치유 과정 중에 구역질을 하게 됩니다.


마음에 쌓였던 억눌림과 응어리들이
하나하나 풀어지면서 배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분해지면 숨이 가빠지면서 씩씩거리게 되지요.
그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면서 마음에 쌓인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바튼 기침을 하거나 마른 가래를 뱉어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구역질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반응이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몸이 많이 축나긴 했지만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내적치유를 받으면서 과거에 상처받았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때마다 다시 상처를 받는 듯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상처받았던 수많은 순간들이 수없이 재생되었습니다.

 

이것은 치유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치료를 위해 의사 앞에서
환자가 자신의 환부를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아프더라도 완치될 때까지 의사에게 자주 드러내야지요.

 

그리고 상처받는 것보다 치료받는 것이 더 아픕니다.
이빨이 썩는 것보다 치료받는 것이 더 아픈 것과 같습니다.
내적인 치유과정중에는 상처받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이 따랐습니다.
참고 이겨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워낙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정신적, 정서적인 문제에 시달렸기 때문에
치유기간도 길었고 그에 따른 고통도 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었고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폐인으로 살거나 일찌감치 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죄(죄로 말미암은 것들. 마음의 상처 등등)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로마서 5장 20절)

 

 

전에는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걱정이 자꾸만 저를 따랐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걱정이 물밀듯이 몰려와서 저를 짓누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걱정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평안이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걱정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걱정이 안되는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물론 가끔 걱정을 하기는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 덕분입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들의 거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지요.

 

 

여러 해 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조울증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하늘을 찌를 것 같다가도
얼마 후에는 감정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나도 심했습니다.

 

 

 

고등학생때까지 저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노력을 안했기에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가 하고
마음속으로 업신여기기도 했습니다.
제가 참 교만했지요.

 

대학 입학 후에 잠재되었던  여러 가지 내적인 문제들이 터져나오고

내적인 문제들에 시달리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도 도무지 공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적, 외적인 상태가 악화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리를 다친 사람이 아무리 뛰려고 해봤자
제대로 뛸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는 지적인 호기심이 왕성해서 여러 분야의 많은 책을 읽긴 했지만
글씨를 쓰는 것, 글을 쓰는 것은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글씨도 못 썼고 글도 못 썼습니다.
학창시절에 노트필기를 해도 나중에 제 글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필기를 위한 필기를 한 것입니다.

 

어릴때부터 제가 한 공부는 형식적인 공부였습니다.
제가 그나마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원리를 잘 깨우쳐서가 아니라
대부분 열심히 노력해서 암기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끝나면 대부분 잊어버리는 그런 암기 말입니다.
저의 정신적, 정서적인 문제가 학습에까지 영향을 끼쳤던 것이었습니다.

 

내적치유가 진행되고 영혼이 성장하면서
주님께서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제 영혼에 참된 피와 살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복음과 구원, 죄사함과 같은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신앙서적이나 설교테이프 등을 통해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성령)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이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사람의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처음에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성령의 가르침인지, 사탄의 가르침인지
잘 분별이 안 되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헷갈립니다.

 

하지만 계속 분별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점차 성령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게 됩니다.

 

수많은 성도들, 수많은 사역자들 조차도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 8:32) (깨달은)진리를 알지니
(깨달은)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정한 앎은 깨달아 얻은 앎입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케 되지만
진리를 모르면 율법과 계명에 얽매여서
답답하고 피곤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이죠.

 

말씀을 깊이 묵상해서 깨달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많이 읽거나 외우려고 하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인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신앙생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에 감춰진 비밀을 깨닫지 못한 채
남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그냥 달달달 외우다시피 하니까
말씀에 권세가 없고 능력이 없어서
영혼을 살리기는 커녕
자기 영혼도 죽은 말씀으로 인해 죽어갑니다.

 

 

저는 신앙생활 초기부터
남들이 가르치는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뭐가 옳고 그른지 분별하려고 노력했고
말씀 속에 감춰진 비밀을 깨달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스스로 깨달으려고 하지 않으면
절대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비교적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고있지만
전에는 작문실력이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문법 무시, 논리 무시 등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게다가 글씨조차 지렁이 흘림체였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제 소원 중에 하나가 글을 잘 쓰는 것이었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지요.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99년 초부터 갑자기 신앙에 대한 글이 쓰고싶어서
처음에는 노트에 적다가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내적치유가 진행되고 영혼이 성장하면서
글을 쓰는 능력도 계속해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언어)이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언어능력이 향상되고

언어에 민감해지게 됩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참된 의미는
말 그대로,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주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만 제대로 가르치고
전심으로 이렇게 기도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기를 바라셨지만
예수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고 할지라도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대학 입학 후부터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교양서적들입니다.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했습니다.
제가 돈 주고 산 책이 최소한 1천권은 넘고
그 중에 신앙서적이 1/4 이상 됩니다.

 

제가 읽은 신앙서적은 이론적인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 저자가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들을 기록한 것들입니다.

그러한 신앙서적들은 제게 많은 도전이 되었고
저도 그러한 삶을 살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듯이
그러한 신앙서적을 읽는 것은
믿음의 말씀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머리로 책을 읽지 않고
마음으로, 느낌으로, 감으로 책을 읽습니다.

내용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깨달으면서 저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 사(思), 생각 상(想)의 부수는
모두 마음 심(心)입니다.
진정한 생각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자가 성경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 잘 아실 것입니다.

 

어릴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제가 내적, 외적으로 별 문제가 없고 건강했더라면
그렇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놀고, 먹고, 마시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입니다.

 

책의 제목이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많은 양의 독서가 저의 내면세계를 깊고 넓게 만들었습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도 길러주었습니다.

 

오랜 지적 연단은
정보의 홍수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글은 말보다 진실하기 때문에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은
제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1985년 9월에 예수를 영접한 후에 한동안 기쁨으로 지내다가
1986년 초에 영혼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면서
그 이후로 제 삶의 0순위는
하나님과의 첫사랑 회복이었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한

영혼의 변화와 치유, 성장과 성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6)

 

두 말씀이

제게는 오래 전부터 채찍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때부터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토하여 내치신다는 것은

구원을 잃는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언제부터인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날선 검처럼
제 심령을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어왔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검처럼
제 마음을 후벼파듯이 무자비하게 찌르고

상하고 썩은 마음을 도려냈습니다.

한동안 성경말씀을 대하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은 것에 비하면
그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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