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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이

007 RAMBO 2018. 5. 27. 22:56

영적 전이(spiritual transfer)  / 펌

 

 

'전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옮겨진다',

즉 어떤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진다는 뜻이다.

 

일전에 TV에서 JMS교에 대해 보도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장면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축구경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교주 정명석이 공을 몰고 들어가면 주위 사람들이 다 피하고, 혼자 공을 몰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JMS의 회원 중 대다수가 대학생들과 소위 엘리트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사람의 이성과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영적인 것이 있다.

예를 들어 JMS에 빠지면 꿈, 감동 등을 통해 정명석이 메시야라는 계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는 영적인 체험을 하고 나면,

상식이하의 행동을 해도 그런 것까지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어둠의 영들이 역사하고 있는 영역에서 영적 전이에 사로잡히게 되면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 것조차도 그대로 믿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통일교, 여호와의증인 등의 가르침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데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영적 전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런 영적 전이가 일어나게 되는 데는

몇 가지 통로가 있으며, 이러한 통로를 거치지 않고는 영적전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영적전이가 이루어지는 첫 번째 통로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떤 사람에 대해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맞지 않고,

문제가 있으며, 도덕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분명한 판단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 사람에 대해 감정적으로 열리게 되고, 호감을 느낀다든지, 우정을 갖게 되거나,

연인 사이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의 도덕성, 행동, 가치 등을 다 받아들이게 된다.

일단 감정이 개입되면 영적 전이가 쉽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같은 종류, 같은 유형의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원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사람들은 ‘저 사람은 나와 마음이 통한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주의해야 할 영적인 원리가 한 가지 있다.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만나는 사람은 거의 같은 성향의 침체된,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람이기 쉽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느끼게 되고,

둘 사이에는 우정이라는 감정이 자라게 된다.

다행히 본인이 침체로부터 벗어나더라도,

친구로부터 영적인 전이는 계속될 것이다.

그 사람과 친구로서의 우정이란 감정이 남아 있기에

친구의 어둡고, 부정적이고, 침체된 성향이

회복된 자신에게까지 계속 전이되어 다시 침체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감정을 통해 영적 전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정을 기초로 한 친구관계 뿐 아니라, 이성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처음에는 상대가 크리스챤이 아니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단지 상대의 외모 또는 이성적 매력에 끌려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일단 그 사람에 대해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면 이 감정이 통로가 되어서

그 사람의 가치관, 영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감정을 통해 영적전이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 그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던 위대한 왕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왕상11:1-3). 이방여인들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통로가 되어,

우상숭배의 영이 솔로몬에게 전이되는 영적전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코 사랑의 감정과 신앙이 별개로 가는 법이 없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한 사람과 교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도 함께 자라갈 수 있다.

 

반면 영적으로 죽어있거나 불경건한 사람과 교제하면서,

성령충만하고,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적전이는 어떤 경우든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이유로 크리스챤은 친구나 이성을 사귀는 문제에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금 영적인 부분에서 자라야하거나,

또는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경우라면, 그를 배척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단 감정에 빠지면, 비신앙적인 가치,윤리 등이 전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거나,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렵게 된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고, 지도하는 것과 감정에 빠지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한 만남이라면 영적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일단 감정에 빠지면 영향을 주기보다는 감정이 통로가 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가 쉽다.

 


영적전이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누가 관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내가 주도권을 갖고 끌고 가는가, 상대에게 끌려가는가에 따라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민수기 13장 25절부터 29절까지에 영적전이에 있어

주도권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가 나와 있다. 
열 두 명의 사람이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보내졌고, 그들 중 열 사람이

먼저 주도권을 잡고 그 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말하고 있다.

땅은 좋은 땅이지만 그 땅의 사람들은 장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땅을 얻는 것이 어렵겠다는 것이다.

열명의 사람들이 먼저 주도권을 잡고 말하자마자,

영적으로 어둡고 부정적인 영향력이 사람들에게 미치기 시작한다. 


믿음의 사람 갈렙이 저지하려 했으나,

먼저 주도권을 쥐고 말한 열명의 정탐군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을 쏟아 놓고 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1-3).


사람들과의 관계와 대화, 교제에 있어서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과 신앙인인 내가 만났을 때,

내가 주도권을 가지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신앙이 없는 상대가 주도권을 쥐면

그 사람의 불신앙과 부정적인 것에 영향 받을 수 있다.

 

얼마 전 지방에 강의가 있었다.

3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을 운전해 강의장소에 도착했다.

초행길을 운전해서 갔기 때문에 매우 피곤했다.

집회 전 식사대접을 하는 책임을 맡은 전도사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현재 서울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고향교회에서 연합집회를 하기에

고향에 내려와서 행사를 돕고 있다며 자기 소개를 했다.


그런데 식당으로 가는 순간부터 교회가 강대상이 너무 크다는 말부터 시작해

교회에 대한 험담과 그 지역은 너무 연합이 안 된다는 등

계속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다.

식사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목회자들에 대해, 연합이 안되는 이유에 대해,

그 지역은 이단이 많다는 등 험담을 쏟아놓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그럼 이 지역에는 좋은 점은 하나도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 있지요.

이쪽 지역 성도들은 목회자들을 참 잘 섬겨요”라고 대답하곤

다시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강사인 필자가 대화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만일 상황이 반대였다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영적 전이의 관계에서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조심해야 한다.



영적전이의 통로 중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확실한 일치와 전이를 갖게 하는 통로이다.

이 통로는 바로 성관계이다(고전6:15~18).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창조원리에 의하면

두 사람이 합법적인 부부이든 아니던 성관계를 통해 두 사람 사이에는

영적인 일치와 전이가 일어나도록 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혼에 대해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창2:24)이며,

그 관계는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성적인 관계를 갖게 될 때

그들 사이에는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깊은 영적인 일치와 전이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일치와 전이는 부부관계가 아닌 성관계에서도 이루어진다.

창녀와의 관계든, 결혼 한 남편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갖는 성관계이든 간에

이러한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내와도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루며,

동시에 다른 여자와도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그런 사람은 심한 영적 결박과 혼돈스러운 일치와 전이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잘못된 성관계를 갖게 되면, 자기의 의지만으로

이런 관계를 쉽게 청산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성관계라는 것이 단순한 육체의 하나됨이 아닌

영적인 결박과 전이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닐 앤더슨(Neil Anderson)목사(Freedom in Christ Ministry)가

프리섹스에 중독된 한 여자와 상담을 했다.

앤더슨은 그녀에게 예수를 소개했고 그녀는 예수를 영접했다.

앤더슨은 그녀가 이제 예수를 영접했으므로,

그동안 성관계를 가졌던 수 백 명과의 영적인 관계를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성적인 관계는 매춘부와의 하룻밤으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깊은 영적 전이와 결박이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보혈의 권세로 결박을 끊지 않으면

10년 전의 하룻밤의 일일지라도 계속적으로 영적인 영향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적치유 사역자인 죤 샌드포드(John Sandford)는

“하나님께서 한 여인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되도록 만드셨는데,

만일 한 여자가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맺으면

그녀는 그녀가 관계를 가진 여러 사람을 그리워하고,

찾게 되고, 그녀의 영은 여러 갈래로 찢겨진다.


또 한 남자는 한 여자를 복주며, 돌보고,

그녀의 필요를 공급하며, 그리워하도록 창조됐는데,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여자와 관계를 갖게 될 때,

그의 몸과 마음과 영이 나뉘며, 여러 여자를 찾게

되고, 혼란스러운 영적 전이와 결박이 가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세대의 풍조가 젊은 시절 적당히 즐기기 위해

하룻밤 자고 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가 돼가고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심각한 영적 일치와 결박, 그리고 전이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동성애의 문제는 여타 다른 문제보다

벗어나기가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이다.

물론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고 진정으로 치유받기 원한다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벗어나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 동성애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어린 시절 또는 청소년 시절에 주변의 동성으로부터

성적으로 희롱 또는 유린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분명히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일단 그렇게 성적 유린을 당하면 성인이 되어

자신도 동성애의 파트너를 찾게 된다.

그것은 영적 전이가 이루어져서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동성애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단지 분위기나 태도 등 간헐적으로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이가 이루어진다.

믿지 않는 사람, 불경건한 사람, 부정적인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적 전이를 통해 나도 똑같이 그렇게 되어져 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한 기쁨의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혈통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권세 아래 있고,

또 그 권세를 적절히 사용할 때,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영적전이나 잘못된 성관계로 인한 영적 전이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벧전1:18).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악한 동무들과의 전이관계를 끊고,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의 인간관계를 잘 검토해보자.

친구 이성 직장상사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나의 신앙이, 영적인 것이,

좋은 것으로 상대에게로 흘러가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악한 것이 내게로 흘러들어오는가,

즉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만일 내가 상대를 함께 초대해가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면

그 관계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상대를 외면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주도권을 가진 상태에서

도울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안 좋은 영적 전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며(딤후2:22),

모이기를 힘쓰고(히10:24), 경건의 훈련을 사모하고,

성경의 가치관 속의 신실한 교제 안에서

자신의 삶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