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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하면? 죽어서만 가는 장소로 생각하십니까?

007 RAMBO 2013. 7. 6. 17:15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율법을 주실때 모세에게

"산 (시내산)으로 올라와 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주시는 큰 복을 말씀 하실때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산에 올라 갔다고 하는것은? 하나님의 복된 것을 중보자를 통해 인간에게 내리신다는

것이며, 전인류를 향해 선포 된다.는 의미 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인간으로 죄인임을 깨닫게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바로 예수께로 안내하는 것이였는데 그 예수가 오셔서

율법이 말한 예수 자신을 통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엄청난 (福)을 선포 하신

것입니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시면서

무엇을 가지고 (福)이라고 하는지를 예수께서 직접 선포(宣布) 하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왜? 천국이 그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위로를 받느냐? 바로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물질 좀 생기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복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참된 (福)은 영적인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를 받아 들여야 사는 그릇과 같은 모양으로 지으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 죄의 값을 대신 갚아 주시고 우리 속에 예수 자신의

생명을 넣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말씀 하시기를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지는 그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 만이 소유 할 수

있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복있는 자가 되었음에 그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 말 입니다.

온유한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

이런 말씀은 몰라도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뭘?

그러니

그 예수만 믿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꼭 이 말씀들을 다 알아야 되는 것이냐? 하고

나온다면 벌써 그의 구원은 글러버렸습니다.

터만 닦아 놓고 거기서 살겠다고 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기초를 닦아 집을 짓는

것도 부실 공사가 된다면 그것도 어느날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의 집을 짓는 신령한 재료(材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집을 세우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 구원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무시(無視)해 버려도 되는 것이 절대 아닌

것입니다.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한절 한절이 바로 살리는 말씀이요, 치료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명이 되고 믿음의 능력이 되고 권세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귀 기울리고 그것을 깨달아 가면서 자기에게서 실제로 나타나야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저주

라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저주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생명인줄 모르는 것이 저주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한절 한절이 생명인 줄 알고 마음을 다해서 깨달아 보려고 하는

영적인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께 관심이 없으면 그에게 신앙의 목표가 있겠습니까?

목표가 있다면? 자기 기분으로 세우는 목표는 있을지언정 성령으로 주어지는 목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수박 겉핥기식의 믿음만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소유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 라고 하셨습니다.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는 정도로 끝나는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알고 있는것 보다도 더 넘치는 분으로써 끝도없고 한도 없는

사랑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서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이 실제 경험이 되어짐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신앙생활 잘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12, 까지 이러한 자는 복이 있다.하시고 무엇이 복이 있는 것인지를 말씀 할 때

아홉번을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팔복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홉번(구복)을 말씀

하셨습니다.

이 "복이 있나니"의 헬라어 원어로는 "행복한 자로다" 행복이 있으라" 행복하여라" 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행복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복이 있나니"

이 말씀에는 이미 복이 있는 자와, 복이 있을 자의 두가지 의미가 전제(前提) 되어

있습니다.

가지는 네가 지금 심령이 가난한 자냐? 애통하는 자냐? 온유한 자냐? 화평케 하는

자냐? 그러면 너는 이미 행복한 자다.

한가지는 너에게 하늘로 부터 주시는 행복이 있으려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라.

애통한 자가 되어라. 온유한 자가 되어라. 하는 뜻이 전제(前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행복한 분이신지? 아니면 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심령이 가난해지고 온유한 자가

되심으로 행복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말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바로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안에

있는 그 영적인 행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이 있나니" 하니까, 부자 되고, 자손 잘 되고, 이 땅에서 성공하고, 그런것만

우리 속에 가지고 있다보니, 그런 쪽으로만 연관 (聯關)지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께만 있는 하늘의 영적인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이 행복은 알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이 있나니"하신 말씀은?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깨달아져 경험

때 만이 생성(生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예수 믿는자에게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오셨다고 말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래서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죽음이 떠나고 생명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래서 (靈)

정신 (精神) (肉)도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래서

예수의 생명이 있는 자는 그 생명 안에 평안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 풍성해지는 만큼

평안도 풍성해짐으로써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의 평안이 내 평안이

될 때 근심도 물러가는 것이며, 세상을 두려워하고 내일의 삶에서 두려워하던 것을

평안이 덮어버리니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의 기쁨은 성령으로 주시는 기쁨으로써 우리에게도 이 기쁨을 주시겠다는 것이니

성령이 임한 자는 기쁨이 있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말씀을 받아들여 말씀으로

충만해서 말씀으로 사는 자면, 인간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내것으로 받아서 내 안에서

말씀이 적용되어 살면 기쁨이 충만해지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사람들은 많은 재물의 풍성함으로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자기

속의 행복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왜 행복 합니까? 천국의 생명이 있으니 행복하고, 그 생명 안에 평안이 있으니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옷을 잘 입으면 행복 할까? 공부 잘 하면?

큰 집에서 살면? 돈이 많으면 행복 할까? 하고 일평생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이 여자하고 살면 행복 할까? 저 남자하고 살면 행복 할까?

행복하지 않을까요? 심령이 가난한 자로써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

팔복이 자기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이 행복이 있다면 지혜롭게 가정을

잘 이끌어서 온 가족이 예수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하셔서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저희것이 되는 복이

있으니, 그런 자는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에게는 없는것,

이 영적인 행복을 주기 위해서 예수가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첫 복음 사역의 시작이

하늘의 행복을 주시는것 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가라사대" 첫째로 행복의 조건이 심령이 가난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을 깨닫는것 부터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자기의 것으로 적용 되어질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라야 만이

자기 말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애통 할 수 있고 애통하는

자만이 온유를 알고 온유해 질 수 있는 것이고, 온유한 자가 긍휼함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들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것이 복이며, 믿음 생활에 너무나 중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저의 것이 되기 때문에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예수를 통채로 받아 가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덴동산의 '아담'이 눈이 열려 자기 실체, 죽음을 받아들인 흙밖에 되지 않는

겉껍데기 밖에 안되는 자기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것은 뭐냐?

영의 빈곤 (貧困)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것, 영적 벌거숭이, 영의 메마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자기가 빈곤에 처해 있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너는 복이 있다.'

라고

하시는 것이며, 세상의 것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헤매는 자여!

그것을 줄 수 있는 나에게 왔으니 네가 복이있다.는 말씀 이십니다. 끝없이 다가오는

갈증은 세상것으로 채워지지 않음을 뼈저리게 깊이 자각(自覺)하고 있는것 그것이 바로

천국이 저희것이 되는 복있는 자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진심으로 아는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사람도 예외 (例外) 없이 영의 가난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 나와 말씀을 듣지 않으면 자기가 영적인 존재인 줄 모르고 육체와

정신만 가진 존재로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육신의 것만 갈구 (渴求)하고 노력함으로 어떻하면 육신의 만족을 채워주느냐?

하는 것에 모든 초점 (焦點)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영의 고통, 영의 호소, 영의 소원을 막아 버리고, 불안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으면 육체와 정신의 환락 (歡樂) 을 즐기라고, 그것을 즐김으로 잊으라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들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고 소유가 많고 세상적인 능력을 많이 갖추면 거기에 능력이 있고 평안이

있다고 육체의 만족을 준다고 유혹 (誘惑)하는 것입니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영이 고통하고 있음을 깨달아라. 네 자신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육체와 정신, 그 이상의 영적인 존재인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 나와 이 말씀을 듣는 자는 행복하다. 귀를 열고 자기가 영적인 가난함에 있다는

것을 듣고 깨닫는 자가 되었으니 복있는 자다.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영의 갈증과 빈곤(貧困)을 겪다가 예수님을 만나 영의 가난이

영적으로 부유해지면서 행복해진 자가 있습니다.

[눅]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예수님을 만나는 자는 어떤 자인지? 성경이 바로 그 영적인 것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내용들 입니다.

예수께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삭개오를 만난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고

소원하는 삭개오의 가난한 마음을 따라서 예수께서 거기에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은 필연(必然)적인 만남인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들을 하나님의 마음과 눈을 가지고 들여다 보아야 참 뜻을 알 수있고 그 내용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영적인 관계에 대해서 깨달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사회적 지위(地位)명예 (名譽)가 있고 돈도 많은 부자 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동족들에게 편견 (偏見)과 오해로 인해 따돌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민족은 로마의 속국 (屬國)이였으므로 로마인들이 세금을 징수(徵收)

갔습니다. 그래서 세금 징수의 모든 업무 관할(管轄) 책임자가 바로 삭개오 였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기 민족들에게 세금 많이 걷는다고 비난 받고, 같은 동족들에게 기생충처럼

로마 편에 붙어서 로마에 세금을 걷어다 바침으로 대우받고 얼마는 자기가 착복(着服)

하는 '도둑놈' 이라고 비난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의 '개'가 되어 세금 도둑질 해 먹는 도둑놈이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야 할 죄인

이라고 유대 민족에게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사실

삭개오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삭개오의 마음에는 상처로 얼룩지고 큰 외로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돈도 있고 지위도 있지만 그것으로도 외로운 상처로 상한 심령에

평안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리기를 그 분은 죄인들을 영접해 주시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데, 만나는 자마다 기쁨을 얻고 얽매인 마음이 자유를 얻는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눅]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 19: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예수님이 너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좋을것 같은 그 분을

어떻게 볼까? 하다가 자기가 세리장이라는 체면도 잊어버리고, 저 앞에 보이는 뽕나무

위로 어린아이 처럼 올라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삭개오에게 사랑이 가는것 때문에 그쪽으로 삭개오를 만나려고 일부러

지나 가신 것이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의 소원에 이끌려서 자기의 체면따위는 잊어버리고

던져버리고 그 나무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눅]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묻지 않으셨습니다.

이름을 부르신 것은?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신 것은? 삭개오의 집에가서 머물겠다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 이유는 "내가 네 안에 들어가 머물겠다"

라는 그러한 뜻인 것입니다. 바로 너의 안에 기쁨을 주고 너의 안에 내 평안을 주어서

너로 쉬게 하겠다. 너에게 내게 있는 영적인 행복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삭개오의 마음에 그대로 흘러들어가니까, 삭개오의 마음에 자유와 기쁨이 용솟음쳐버린

것입니다. 영의 가난 때문에 고통하던 그가 영의 부요를 가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눅] 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하였습니다. 거기에 모인 무리들이 다 예수를 본(see) 자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meet) 자는 삭개오 뿐이였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만남, 예수의 마음이 들어갈 수 있었던 마음의 그릇은 삭개오의 마음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어가 쉬실 수 있고, 쉼을 주실 수 있는 마음은

삭개오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이

돈 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날 교회서 헌금 (獻金) 자꾸 강요하면 안됩니다.

삭개오의 마음에 예수의 행복이 임해버리니, 가치관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자기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 앞에서 삭개오는 "주여 보시옵소서" 제가 일평생

성실과 근면으로 살면서 돈을 모아 재산가가 된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라는 뜻으로

자기가 유대인들이 비난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돈이나 명예, 지위가 동족들의 비난과 짓눌린 마음에 고통에서 지켜주지

못했고 괴로움만 더했음을 주께서 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찾아

오셔서 이 엄청난 자유의 기쁨을 내게 주시니 이제는 주님만이 내 행복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하는 것으로 삭개오는 자기 마음을

예수께 두었다는 것을 나타낸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에" 토색한 것이 있다면?" 이 말은 토색한 일이 없다는 말 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인생에서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 명예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이 가지고 있는 관심을 우리 속에 똑같이 가지고 있다면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닌 것입니다. 나는 예수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존재구나!

나는 예수가 아니면 지옥가는 존재구나! 내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존재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이 영의 가난함에서 영적

부유 (富有)를 소망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영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아는것, 그 영은 하나님과 교제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아는것, 죄로 영에 죽음이 들어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 되어서 영이 그

가난으로 고통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와 같이 영적 빈곤을 깨닫고 오직 예수로

살고자 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 되어서 행복한 자가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국"하면? 죽어서만 가는 장소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집을 벗으면

가는곳, 영원히 사는곳, 그 곳이 천국이라고 하니까, 어떤 장소적인 개념 (槪念)

가지고 그것 만을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삭개오 처럼 예수를 영접한 자는 천국이 자기 안으로 와 버린 것입니다.

죽어서만 가는 장소가 아니라 "천국이 저희 것이요" 하신대로 그 사람 안에 임하여 그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가 오신 것을 보고 "천국이 왔다"라고

세례(침례)요한이 말했던 것입니다. 이 땅으로 하늘에서 천국이 내려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이라는 것은? 엄청나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 예수님이 천국이신데

예수님이 들어 오시면서 그 천국이 믿는자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이 육신을 떠나서 죽어서만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님이 들어오시니

천국이 저희 것이 되어진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안에

예수가 들어오시면 천국이 들어왔는데, 천국은 기쁨입니다. 평안입니다.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모든것을 다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행복 하여라" 왜요?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과 천국의

모든것을 통채로 가져오시니 거기에 기쁨이 있고, 참 평안이 있고, 죄가 사해지고

영생이 있고 기도의 응답이 있고 하늘의 참 지혜가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것은? 막연하게 알고 믿는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자는 예수 안에

있는 이 천국을 받아 소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 안에 있는 것을 전부

주겠다"고 하시는 말씀 입니다. "내가 너의 소유가 되어 주겠다."

세상을 이길 능력과 세상을 초월 할 수 있는 능력, 목숨도 지배 할 수 있는 능력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이 너희 것이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한 기쁨이 영혼에서 차고 넘칠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처음 이 땅에 와서 입을 열어 가르치신 것은? 행복을 찾아서 그 마음이 헤매며

고통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내게로 와서 나의

말을 들어라"하고 그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아! 이제보니 내가 심령이 가난한 자 였구나! 그래서 이렇게

내 안에 고통이 있고, 불안이 있고,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고, 이와 같이 내가 행복함이

없이 살아 왔구나!

세상것이 행복인줄 알고 그렇게 좇아다니며 아주 아픈 고통의 세월을 살았는데,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로, 예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행복이 없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자에게는 바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모든 천국을 가지고 들어와서 너에게 행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아야 예수님과 예수님의 모든 말씀으로 주시는 그 천국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끝도 한도 없는 하늘의 엄청난 행복을 소유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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