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가 터지기 전에,
우리나라의 교회 수는 수만 개이고
교인 수는 천만 명이라는 게
하나님이 우리네 교회에 복을 주신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목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네 목사와 교인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욕을 많이 얻어먹고 있는
조롱과 멸시의 대명사가 되었다.
왜 그런지 아는가?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고
통회 자복하는 교회와 목사들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모습을 보며
코로나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우리네 교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네 교회가
이렇게 소금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
세상 사람에게 짓밟히는
뜨악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네 목사와 교인들에게서
떠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진 교회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손쉬운 증거는
교회에서 기도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하루에 10분도 기도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목사들도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차가운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성경이 완성된 시대에,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들이
수십만 명이 있다는 우리네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설교 때마다 성경지식으로 무장한 목사들이
말의 성찬은 벌이고 있지만,
정작 말씀의 능력이 없으며
기도의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
뜨악한 현실이 더욱 초라하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은,
교회도 목사도 성경도 교인도 없던 시절에
하나님으로부터 친구라는
빛나는 호칭을 얻게 되었으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도에 비밀이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 살펴보고 싶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창12:7~9)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4)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는 히브리어원어는
리크로(to call) 브셈(on name of) 야훼(Yahweh)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다는 의미이다.
영어번역은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이다.
이 말뜻은 주의 이름을 불렀다고 번역되었다.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에게 처음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불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야훼’라는 것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행위인 셈이다.
이름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셈’인데,
이는 이름, 명성, 하나님의 대표성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피조물인 인류를 통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부르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크라’인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뜻은
여호와를 예배하다,
여호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의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을 요청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한다,
여호와의 축복을 간구한다는
다양한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신앙고백인 셈이다.
성경도 목사도, 교회도 교인도 없던 시절의 아브라함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이삭과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믿음의 가문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성경과 목사, 교회와 교인들이 넘쳐나고
방송이나 인터넷에 들어가면 24시간 설교를 들으며
외국의 유명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자랑하는 신학교 교수들과
목사들의 성경공부를 24시간 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에 있는 우리네 교회와 교인들의 기도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지 기이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하지도 않으며
가르치거나 훈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에서 하는 기도는
거머리의 딸이 하는 기도에 불과했다.
목사들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목회성공을 추구하는 기도를 해왔고,
교인들도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는
소원을 이루는 기도만을 희생적으로 반복해왔다.
이런 기도는 귀신들이 넣어주는
무속적인 기복신앙의 기도에 불과하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잠30:15)
위의 성경에서 말하는 거머리가 누구인가?
바로 끊임없이 탐욕을 채우는 귀신을 말하고 있다.
거머리의 딸은 귀신의 자녀로서
귀신의 영을 받아 탐욕스러운 교인들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는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무속적인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그래서 교인들은 너도 나도
세속적인 복에 눈이 멀어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무한 반복해 왔다.
그러나 이런 탐욕스럽고 가증스러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 리가 없다.
그래서 한 때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졌던
많은 기도원들이 문을 닫았고
새벽기도회에 사람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을 찾아와서 만날 생각도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세속적인 기도에
하나님이 외면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보내셔서,
형식적인 예배의식을 드리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면서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교인들을 양산하는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들이 심판대 앞에 서면
어떤 운명이 될지 아는 게 어렵지 않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걸어간 전철을 밟아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 불 보듯 환하다.
그러므로 당신이라도 살아남아
가족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면,
하나님을 찾지도 만나려고 하지 않은
패역무도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찾으시라.
그 길만이 당신과 가족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성경도 교회도 없던 시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놀라운 삶을 살아갔듯이 말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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