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던
배삼룡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었다.
그가 입은 옷차림부터
웃음이 나왔다.
헐렁한 통바지에
낡은 넥타이로 허리를 질끈 묶고
바지 한쪽은 삐죽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당황하면
남의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헛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문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바보 같은 그 모습에
사람들은 악의 없이 웃었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새 그는 구시대의 희극인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개그맨 시대가 왔다.
어느 날 그가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병원에서 산소 마스크를 끼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그 무렵 한 기자가 삶의 불꽃이 꺼져가는
그와 인터뷰한 기사가 나온 걸 봤다.
늙고 병들어 있으면서도
그는 아직도 그를 찾는 무대가 있으면
나가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냥 나는 당신보다 좀 모자라고
생긴 것도 못났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바보 연기의 요체도 그것이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를 읽는 순간
나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삶의 비결은
상대보다 한 계단 내려가
무릎을 꿇는 자세였다.
칠십년대 말
나는 군 법무관 시험을 보고
훈련을 받기 위해
광주 보병학교에 입소했었다.
그곳에는 두 종류의 그룹이 합류해
함께 훈련을 받았다.
한 부류는 나 같이 고시에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법무장교 시험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십 년이라는 기나긴 복무기간이 앞에 있었다.
다른 한 부류는 고시에 합격하고
짧은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한 사람이었다.
제대를 하면 전원 판사나 검사로 임관이 되고
시간만 흐르면 앞날이 보장되는 사람들이었다.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이 있었다.
그런 시기심은
실속 없는 건방짐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독특한 겸손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지방대를 나온 그는
얼굴도 미남이 아니고
덩치도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자신을 낮추면서 공손하게
상대방의 훌륭한 점을 인정했다.
그와 같이 전방으로 명령이 나서
이웃 부대에 근무했다.
나는 건방졌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도
‘나는 나다, 너는 누구냐’
라는 식으로 대해 적을 늘여갔다.
그 친구는 달랐다.
사병에게까지 겸손하게
그리고 살갑게 대해 줬다.
그는 항상 대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보다 못난 사람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동기생 중에서 그가 제일 먼저 장군이 됐다.
얼마 후 그의 장군 계급장에는
별 하나가 더 붙었다.
장군이 되어도 그의 태도는
예전과 다름이 없는 것 같았다.
별판이 달린 검은 장군차를 타고
어깨에 번쩍거리는 계급장을 달고
으쓱거릴 만한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패한 동기생들을 보아도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국제형사재판관이 됐다.
세계 각국에서 유능한 판사들이
차출되어 근무하는 곳이다.
십여 년이 흐르고
그는 육십대 중반이 되어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그는
국제형사재판관으로 추천되어
유럽으로 향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그를 좋아해서
다시 재판관으로 모신 것 같았다.
칠십 고개에 다다른 그는
아직도 열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십여 년 전
함께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사람들은
전부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한번은 그의 입에서
“나같은 놈이 성공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모두 주님의 덕입니다”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그는 철저히 겸손했다.
위선적 겸손이 아니고
처세의 겸손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성공을 보면서
세상을 이기는 가장 무서운 힘이
겸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동기생인 그의 앞에
마음의 무릎을 꿇는다.
성경 속의 예수는
수건을 허리에 동여매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고 말했다.
“너희가 주님이라고 부르던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이걸 깨달아
그대로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자세를 낮추고 무릎을 꿇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지혜가 겸손인 것을
나는 몰랐었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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