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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쓰고 하나님 거리두기라고 읽는다

007 RAMBO 2020. 10. 10. 09:38

이제는 코로나사태가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다.

상점들을 줄줄이 문을 닫고 인터넷 쇼핑회사들은 대박을 치고 있다.

 

방문판매와 다단계 판매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지만

택배회사와 오토바이 배달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의 폭격이 가장 심한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바로 교회이다.

 

그간 교회는 교인들이 교회건물에 모여앉아 예배의식을 행하고

성경공부를 하며 각종 교회봉사를 하면서 신앙을 유지해왔다.

 

특히 주일오전에 드려지는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교인들의 필수적인 의무사항으로 여겨진다.

 

혹시 어쩔 수 없는 일로 인해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징벌이 내려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벌벌 떨기도 한다.

 

그동안 교회에서 예배는 하나님과의 호흡이며

생명줄이라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사태로 인해 오랫동안 예배가 중지되거나

현장예배에 참석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커뮤니티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배중심으로 신앙을 지켜오던 교회가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리던 교인들이

몇 달 동안 현장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전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며,

도리어 어떤 교인들은 억눌려왔던 희생적인 신앙행위의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줄이 끊어져버린 풍선처럼

당혹스러움과 더불어 하나님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엊그제 소모임에 갔다가 들은 얘기이다.

아시다시피 울 영성학교 식구들은 이전에 다니던 교회가 있었으며

기도훈련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영성학교를 교회공동체로 삼아 눌러앉은 이들이다.

 

떠나버린 교회목사들은 혹시라도 교인들을 빼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껴,

남은 교인들의 문단속을 하면서 그들이 이단에 빠졌다면서

아예 접촉하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지곤 한다.

 

영성학교의 기도훈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필요를 느끼고 각오와 결심을 동반해도 쉽지 않기 때문에

친한 교인들을 데려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며,

멀리 충주의 한적한 시골까지 따라올 교인들이 누가 있겠는가?

 

어쨌든 오랫동안 헌신해왔던 교회를 떠나자마자

냉대와 핍박을 당하면서 억울함과 허탈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기존교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교우들과는 만나거나 교제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존 교회의 문단속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고

현장예배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하면서,

이전교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교인이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물어보기 무섭게,

그 후배는 코로나사태로 교회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서

신앙의 목적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자신도 기존 교회에서 나와서

개인적으로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습관을 들인

선배부부가 무척이나 부럽다고 털어놓았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면서 신앙이 헝클어지고

믿음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메마르고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면 하나님을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절박감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드디어 올게 왔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는 기도와 말씀이다.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내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를 하려면

기도와 말씀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네 교회는

하나님과 사귀는 기도를 가르치거나 훈련하지 않았다.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사귀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고 졸라대는 간구가

기도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쳤다.

 

그래서 기도자리에 앉자마자 담임목사가 원하는 목회성공과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주구장창 외쳐대는 기도만을 할 뿐이다.

 

게다가 귀신이 속여 넣어주는 방언을 성령이 주시는 방언으로 착각하여

기도시간을 즐기는 수단으로 방언기도를 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평생 방언기도를 하여도 성령의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가 없는 목사나 교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로서 자기 의를 드러내거나

새벽기도에 나가는 것을 훈장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오실 리가 없다.

 

그 결과 전국 방방곡곡에 빼곡했던 기도원은 죄다 문을 닫았고,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사람들이 급속도로 줄어들다가

코로나사태로 아예 문을 닫은 실정이다.

 

기도만 이런 것은 아니다.

성경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지식을 이해하여 머리에 쌓아두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가슴에 새겨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해박하게 되고

성경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말하자면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가 없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우리네 교회는 성경공부에 무척이나 많은 공을 들였다.

수도 없이 드려왔던 예배의 중심도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시간이다.

 

매년 외부에서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들여와서

열정적으로 가르쳐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이

성경지식을 쌓아두는 자기만족으로 그치거나

남을 판단하는 자기 의로 변질되어 사용하지 않은가?

 

성령의 깨달음이 없는 성경공부는 사상누각이다.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내가 한 말을 깨닫게 해주신다고 선언하셨고,

사도요한도 기름부음이 임하시면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공표하셨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네 교회의 성경공부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성경대로 살 수가 없는 기이한 종교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사태가 터지고 현장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하나님과 교제가 없이 교회마당을 밟아왔던 교인들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장예배나 교회의 커뮤니티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해왔던 종교행위를 할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벌거숭이 임금님의 몰골이 드러나고

종교주의자였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있다.

 

하나님은 코로나사태를 통해

그간 미혹의 영이 지배하는 교회와

목사들의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속이지 못하게 막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다.

코로나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울한 현실에 낙담하며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을 것인가?

 

시간이 지나 이전의 현장예배가 속개되더라도,

교회가 이전의 신앙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속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현장예배중심의 신앙방식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죄다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과 가족이 사는 길은

골방에 들어가서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 길만이 당신과 가족의 영혼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