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얼음 위를 어린아이처럼 종종 걷고,
토실토실한 배를 썰매 삼아 미끄러지기도 하는 특유의 귀여움,
날개는 있지만 날지는 못하고 뒤뚱거리며 걷는 신체의 희극성,
까만 연미복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생김새.
이런 모습은 동심(童心)을 사로잡을 만하다.
그런데 이 펭귄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펭귄의 ‘생존전략’이다.
펭귄이 사는 남극의 겨울 기온은 섭씨 영하 60도에서 70도를 오간다.
펭귄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집단적 체온 나누기’이다.
눈보라가 덮치기 직전 펭귄들은 본능적으로 서식지 중앙을 향해 모이기 시작한다.
펭귄들은 자신의 체온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어깨를 맞댄다.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펭귄의 생존법,
허들링(Huddling-아무렇게나 포개지는 행위)이다.
대열 안쪽의 펭귄은 자신보다 바깥에 있는 펭귄들이
눈폭풍을 막아줘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하지만 바깥쪽 펭귄들은 눈폭풍을 맨몸으로 견뎌야 한다.
신비로운 점은 펭귄의 배려이다.
무리의 바깥에 있는 펭귄은 동료와 자리를 바꿔가며 점점 안으로 들어오고,
안에 있던 펭귄은 동료와 자리를 바꿔가며 바깥으로 나간다.
그 어느 펭귄도 안쪽에만 있겠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혹한의 추위로 비유되는 재난(災難)은
사람들을 [한 몸 의식] (고전 12:12-14, solidarity)을 갖게 하기도 하고,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빠지게도 만든다.
펭귄이 눈보라 앞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은
[한 몸 의식](solidarity) 이다.
펭귄은 동료를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만 고집하지 않는다.
[한 몸 의식]은 이웃을 서로 돕는 일이지만,
자선(charity)과는 다르다.
자선이 시혜적(施惠-Visually beneficial이라면,
[한 몸 의식]은 상호 의무로 묶인 관계다.
자선이 누군가의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는 접근이라면,
[한 몸 의식]은 위험을 분산시키는 공동의 노력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앞이 보이지 않고 힘겨울 때는
연미복을 입은 남극신사 펭귄의 생존 전략을 한번 쯤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 고전 12:12-14,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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