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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착한 교인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

007 RAMBO 2020. 10. 4. 08:59

‘사람들이 하나님을 못 믿는 이유도

선량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기 때문에

과연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겁니다.

 

요 앞전에 신실한 개척교회 목사님이

집에 불이 나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그리고 한 여성분이 차비 아끼려고 걸어가다 비제이에 빠져

별 풍선 쏘아 돈 탕진한 놈에게 살해당했죠.

 

이러한 무수한 사건들이 왜 일어나며

왜 하나님이 보호 하시지 않느냐에 혼란스러워 합니다.

사실 너무 납득 안 가는 일들이 많긴 합니다.’

 

윗글은 필자의 유투브 동영상에 댓글로 올려놓은 내용이다.

이 분이 느끼는 혼란함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왜냐면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투의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고난이 닥치고 고통스런 사건이라도 생기면

믿음에 균열이 가고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이 문제를 토로하거나

주변에 친한 신앙의 연륜이 묵직한 권사님이나

신앙의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험 따위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이 신뢰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평생 교회 일에 헌신한 수많은 교인들이

불행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착하고 헌신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불행한 사건이 끊이지 않으며

고통의 수렁에 빠져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사람들이 착한 성품을 가지거나

헌신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거나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착하게 살면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존 우리네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권선징악의 뿌리 깊은 사상에 의한 견해일 것이다.

 

또한 교회 일에 열정적이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헌신적으로 해온 교인들은

하나님의 도움이나 복을 받아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 역시

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복관에 의한 견해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원칙들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이렇게 가르쳐왔는데,

몇몇 사람들에게서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석고사죄 하겠는가?

 

그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나,

믿음의 단련을 위한 하나님의 시험쯤으로

대충 얼버무리면서 덮어두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제시하는

기준의 토대는 무엇인가?

바로 성경말씀일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어떤 말씀의 근거로

이런 삶의 원칙을 제공하고 있는지

곱씹으며 살펴보자.

 

1. 착한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원칙에 대하여

 

착한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크리스천은 물론 세상 사람들이 철석 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착하다는 기준이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도덕적인 기준에 합당한 근거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에서 제시한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예수님은 착한(한자어로 선(善)한)이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선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인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의 기준에 의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성경에서 권하는 거룩하고 온전하고 자비로운 성품 중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성품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턱 없이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이 설정한 기준에 의해

아무리 착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불행한 사건사고를 당해

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는 기준은 잘못된 기준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완벽하게 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2.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순종적인 교인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원칙에 대하여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여

십일조와 헌금을 넘치도록 드리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교회봉사를 열정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 살게 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교묘한 속임수이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복의 기준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은

성경에서 명령하는 게 아니라 교회의 관행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천하며 내려온 종교의식이다.

 

또한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금액수의

많고 적음을 보시는 게 아니라

헌금을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속내,

동기나 목적을 날카롭게 살펴보신다.

 

또한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조직을 지탱하거나 교인 수를 늘이기 위한

각종 교회봉사를 열정적으로 하면

세속적인 복을 내려주시겠다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런 투의 가르침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형통하고 행복하게 사는 성경의 원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며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이다.

 

하나님을 만나서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사람들이

성령과 동행하며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는 기도와 말씀이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습관을 들여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한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여서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가슴에 새겨

삶에 적용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녀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일마다 형통하며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며

하나님이 각종 위험에서 지켜주시고

불행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백성인 셈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