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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썩은 자에겐 기대할 것이 없다 (막 9:19~29)

007 RAMBO 2020. 9. 28. 10:33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막 9:19)

 

 

미국의 어느 무역회사에서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려고 판매사원을 파견했습니다.

그 판매원은 알래스카로 출발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아니, 알래스카에서 냉장고가 팔리겠어? 온 천지가 얼음인데.’

 

그는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방문판매를 해보았으나

현지인들은 냉담한 반응만 보였습니다.

 

그는 몇 개월 동안 한 대의 냉장고도 팔지 못하고 본사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회사 측에서도 알래스카로의 냉장고 판매계획을 접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직원이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알래스카에 가서 냉장고를 팔고 오겠습니다.”

 

사장은 지금까지 몇몇 직원을 파송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고 그에게 설명했으나

그는 여전히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사장은 그의 자신감에 반해

그를 알래스카에 파견했습니다.

 

그는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집집마다 돌며 냉장고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냉장고가 없으면 미개하다고 사람들이 상대도 안 합니다.

냉장고는 문명인의 기본 필수품이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냉장고가 없는 곳은 아마 여기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판매 전략이었습니다.

알래스카인들은 미개하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너도나도 냉장고를 사 얼음집 입구에 진열해놓았습니다.

 

‘우리는 미개인이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 판매사원은 투망으로 고기를 건져 올리듯

엄청난 판매수익을 올려 승진하게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와 유사한 내용이 민수기에 나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 중 10명은 돌아와 말하기를

‘거기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을 정복했음은

두루 알려진 사실입니다.

 

위에 나열한 두 경우에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어진 환경이 달랐습니까?

아니면 조건이 달랐습니까?

 

아닙니다.

외적인 조건이나 환경은 동일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생각이었습니다.

 

먼저 알래스카에 간 판매원이나 10명의 정탐꾼이 가진 생각은 부정적인 반면,

자원하여 알래스카에 간 판매사원과 여호수아와 갈렙은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이와 같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생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그 생각이

바로 우리의 행동이나 말의 근본이요 근원인 것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가 가득한 나무의 본질이

열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 뿌리에 있습니다.

 

고로 뿌리가 실해야 유실수에 열매가 맺히고, 잎이 무성함은 물론

대나무처럼 쭉쭉 자라게도 되는 겁니다.

 

나무가 부실하다면 분명 뿌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뿌리가 썩어 있는데 거기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무엇 하겠습니까?

그것은 괜한 물 낭비요, 비료 낭비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썩어있어 있는 자,

즉 생각이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자에게 투자하는 것은

낭비 중에 낭비입니다.

 

썩은 나무에 물을 주면 뿌리가 더 썩어질 뿐이듯,

생각이 썩은 자에게 투자하거나

그와 대업을 논하는 것은 같이 망하는 길이며,

오히려 그를 더욱 죽이는 꼴이 되고 맙니다.

 

건강할 때 보약이지,

몸이 아플 때 보약은 되레 독이 될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썩은 것은 잘라내는 것이 상수고,

고름은 짜내야 다시 곪지 않는 법이며,

거미를 잡아내야 다시는 거미줄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썩은 뿌리, 즉 썩은 생각을 잘라내야 그 사람이 삽니다.

근원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정적인 생각을 치료하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주위 환경이나 조건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생각이 주입되어야

인간의 생각이 바뀝니다.

 

수도 공급지에서 아무리 생수를 보내도

수도 파이프라인이 녹슬었으면 녹슨 물이 나옵니다.

 

생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은

생각이라는 파이프라인이 녹슬었기 때문입니다.

 

왜 녹슬었을까요?

청소하지 않아서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닦지 않았기 때문에

악한 것들이 녹슬게 한 것입니다.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 생각에 부정의 녹이 쌓입니다.

 

‘넌 안 돼.’, ‘네 주제에.....’ 

이런 생각들이 말입니다.

 

한 번은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제게 물질적인 도움을 청하러 오신 것입니다.

 

물론 개척하는 심정을 제가 모르는 바가 아닌지라

도와 드리려는 자세로 그 분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 분의 말이 자꾸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겁니다.

 

“목사님, 성도가 아직 적어서 피아노도 없고, 교회에 필요한 차도 없고.....”

저는 한참을 듣다 그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목사님의 생각을 먼저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강대상은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 그럼 장의자는 있습니까?” “예”

“십자가는 달았습니까?” “네, 그거야 기본이죠.”

 

“목사님, 그렇게 다 있는데

왜 없는 것만 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자가

매일 없다고 뿌리니 없을 수밖에요.”라고 했더니

그 목사님은 크게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가 그 목사님을 동정하며 돈이나 건네주었다면

그것은 썩은 나무에 물을 붓는 격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 부정의 뿌리를 뽑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것이 적중되어 아마 그 분은 지금은 분명 거목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비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 아비의 말에는 다분히

‘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고요’라는

부정적인 요소가 깔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정적인 것에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가 죽었을 때도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는 부정의 뿌리를 다 뽑아내신 후,

그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믿음의 긍정을 표할 때에야 비로소 예수께서 죽어 냄새나는

그들의 오라비를 살리셨음이 요한복음 11장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 속에 사로 잡혀 있습니까?

당신의 생각이 어떠한지는 당신이 제일 잘 압니다.

 

만일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면

어서 속히 그 뿌리를 뽑아내야 당신이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 삶에 열매가 없어 배고플 것이며,

나무에 잎이 없어 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뿌리, 즉 생각이 실하다면

성공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생각이 썩은 자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부정적인 자와 누가 사업을 하겠으며,

그 사업이 어찌 잘 되겠습니까?

 

만사 부정적인 자에게 누가 인생을 맡기겠고,

또 어느 성도가 부정적인 목자를 따라가겠습니까?

 

뿌리가 썩으면 열매는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말을 낳게 되어 있고,

부정적인 행동을 일삼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곧 인생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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