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 다니엘과 세친구, 요셉, 에레미야, 바울등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간 경우를 봅니다.
그들 중에서 사도 바울의 투옥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당시 큰 도시들을돌아다니며 충성되게 선교여행을 마치고,
많은 교회를 세운 후, 마지막으로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초대교회 교인들은 처음에는 희망과 기쁨 속에서
“주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려나” 하고 기대가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제자들을 비롯해 아가보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투옥과 핍박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자
모두들 낙심과 절망에 빠져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적극 만류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어찌하여 울며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느니라”(행 21:13)라며 굳은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인들에게 심한 몰매를 맞고
쇠사슬에 묶인 채 감옥을 전전 긍긍하다
그 상태로 로마로 끌려가게 됩니다.
우리 생각으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면
쇠사슬에 묶인 죄수의 몸이 아니라 자유로운 몸으로 순조롭게 로마에 가서,
맘대로 로마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주님의 계획과 섭리는
우리 생각과 다르며 더 높다는 것을 배웁니다.
바울이 죄수로 로마 감옥에 들어감으로써
로마 황제 가이사집 사람들과 시위대 군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고,
바울로 인해 형제들중 다수가 오히려 겁 없이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빌 1:14)
그뿐 아니라 바울이 보낸 옥중서신들이 모아져
신약의 큰 부분을 차지함으로 인해
복음의 진리를 더 잘 깨닫게 해주신 주님의 섭리는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가 보낸 서신들을 보면 빌립보 형제들에게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빌 1: 12) 되었다고합니다.
또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서두에서부터 “찬송하리로다” 외치며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고 있습니다.(엡 1:3-14)
당시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죄수의 몸으로
참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과 입장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과 성도들에게 베푸신 은혜와 영광에 대해
열렬히 찬양할 수 있었던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은혜는 현실이고 영광은 장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두 가지를 하나로 보며 찬송한 것입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6)
사도 바울은 성공, 명예 등 세상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 라는 말씀을 실천하며,
바라는 천국에 대해 실제로 보는 것처럼 확신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또“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등 이미 영화된 몸으로 변해 있는 영광스런 모습을 실상으로 믿었습니다.
즉 현세적 천국을 사는 실상의 믿음을 가졌기에
당시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 대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나는 하늘시민이다”라는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것들의 증거니”(히 11:1)
사실 우리 모두 위 요절을 달달 외우면서도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가 나에게 실상으로 증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 일상에서 닥치는 시험과 유혹에 넘어지고,
낙심, 절망, 좌절을 느끼며 핍박과 어려움 등으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바울이 가진 실상의 믿음을 더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되면, 여러 어려움과 고난들이 나를 천국백성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의 과정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어,
어떤 경우에서도바울처럼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마귀로 인해 지구가 타락할 것을 예지하셨음에도,
인간을 구원할 완전한 계획을 가지셨기에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마귀의 지배 아래 고통 당하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주셨고,
주님이 승천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시어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을 은혜로 인도해 주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
곧 거듭난 성도들이 많이 있을 것도 보셨습니다.
이렇게 설계하신 창조의 목적과 계획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1:6)
그런 믿음이 있다면 나의 삶에서 고난이나, 불행한 힘든 일이 닥치거나,
가족문제로 또는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누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할지라도
위에 것을 바라보며 인내로 견딜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나를 승화시켜,
창세 전에 예비한 나라를 주시기 위함인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수고와 슬픔과 고생이 될 뿐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려움이 자꾸 닥치는 것일까”
하며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주님의 계획이 나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이루느니라” (롬 8:26)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있는 한
주님은, 혹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계획과 섭리로
하늘나라 백성으로 만들어 가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좋은 예가 애굽 총리가 된 요셉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므로 형통하였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형들에게 미움 받고, 종으로 팔려 갔다가
그것도 모자라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삶이 무슨 형통인가 싶지만
결국 그를 고난을 통해 단련시켜 당시 최강대국의 지도자로 만들고,
나아가 형들도 회개시켜 둘 다 주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진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요셉)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시 105:18-19)
오늘날도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단련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개하라.
세상과 벗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니 세상의 집착을 버려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니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등등 여러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위 말씀들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감옥에 갇힌 상태가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옥 안에서는 바깥 세상과 벗할 수도 없고,
육신의 생각대로 살 수도 없고,
자연히 내가 부인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곳에서 위에 것만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성령님의 인도와 도움을 통해 말씀과 기도로 자라간다면
주님께서 천국시민권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의 투옥은,
우리도 “영적 은혜의 감옥에 갇히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적 은혜의 감옥에 갇히는 신앙”은
땅에 것을 포기하고 위에 것을 바라보며 주님 뜻대로만 살기로 결단하고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빌1:20) 하려는 것이며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엡 1:3) 곧 성령의 인치심을 확신하는 실상의 믿음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거듭남)을 받았으니”(엡 1:13)
우리가 사형에 처할 죄수였다는 빚진 자의 자세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말씀의 쇠사슬로 내 육신을 묶어,
보지 못하는 하늘 나라를 실상으로 확신하며 증거할 수 있다면,
또 내 삶에 일어나는 어려움들이 나를 천국 백성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이 손길로써 합력하여 선을 이룰줄 믿는다면
얼마나 세상에 대해 초연해지고 자족하며 평강을 누릴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코로나 온역으로 인해 가택 연금상태에 들어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육신의 생각대로 살 수가 없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우리도 바울처럼, 요셉처럼
주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선을 이루는
은혜의 감옥으로 들어가시지 않으시렵니까?
밖에서 볼 때는 좁고 협착한 곳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거기에는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가
실상으로 증거되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리 되어 주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성령의 인치심을 받는
“영적 은혜의 감옥에 갇히는 신앙”을 소유함으로써
주님과 동행하며 형통함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송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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