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듯
여러 사람들이 모여 교회 공동체를 이룬다.
조건과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공동체나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가정공동체와는 다르게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며 누구든지 포용할 수 있는 것이 교회 공동체이다.
그러다 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나름의 양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이것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고난 기질이 있으며
태어나서 자란 지역적 특성과 가정환경, 배움의 다양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어진 성품에 신앙이 결합되어
다양한 신앙생활의 양상을 보인다
나는 여기에서 신앙생활의 양상을 세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육적인 신앙생활(감각적)
육적인 신앙생활은 감각과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다.
보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등으로 기분이 좌우되며
판단하고 상처가 되고 시험에 든다.
예를 들면 타인의 옷차림이 눈에 거슬려 기분이 상하고,
화장, 액세서리, 신발, 가방 등등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기분 상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교회 점심시간에는 밥이 되다, 질다,
반찬이 싱겁다, 짜다, 부실하다, 불평이 많고
교회 모임에서 어디를 가든
그곳 음식이 어떻고 장소가 어떻고 하며
비판과 불평을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적대적이며 비판적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는다.
육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회의 진행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모임은 단합이 어렵다.
강대상 위치, 휘장과 커튼, 성가대 가운 색깔에 목숨 걸고,
권사님 파마가 어떻고
사모 스타킹 반짝이 무늬에 핏대 세우고
간식에 시험 들고
어느 집사 보기 싫어 교회 안 가고.......
우리주변에서 볼 수있는 육적인 신앙생활의 전형이다.
이런 교인은 감정을 움직이는 설교를 좋아하며
보수적이고 전통적이며 형식적인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혼적인 신앙생활(지식적인)
지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교양과 지적 수준, 교육의 정도, 기능의 정도, 생활환경, 등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본인이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교양이 있는지, 교육의 정도, 직업의 종류 등으로 사람들을 분류하여
선호하는 무리와 어울린다.
설교를 들으면
말씀이 지식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나름대로 말씀을 분석하고 판단한다.
분석과 판단이 거듭되면서
본인이 말씀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누구의 설교를 듣든
말씀을 잘 쪼갠다 못 쪼갠다느니
신학이 어떻고 교리가 어떻고 하며 본인의 잣대를 들이댄다.
지식적인 설교를 좋아하며
세미나, 제자훈련, 성경공부 등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말씀을 먹어야 하는 영은
점점 메말라가고 머리만 커지게 된다.
체계적이고 잘 짜인 시스템과 행정을 요구하며
그런 부분이 자기의 요구에 미치지 않으면 그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육적인 신앙생활과 혼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교만이다.
말씀이 등불이 되어 자신을 비춰보아야 하는데
그 등불로 항상 남을 보기 때문에
남의 눈에 티만 찾기에 바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항상 비판하고,
업신여기고, 완악하며, 목이 곧아 뻗뻗하고, 겸손할 줄 모른다.
이들은 시기와 다툼의 원인이 되며,
찌르는 말로 다른 사람 의심령을 상하게 하고,
자존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교회 내에서 직분을 맡거나 리더가 되면
교회의 기관들이 병들게 되고
교회는 교회로서의 능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목회자는 직분자를 세울 때 반드시 영적 상태를 진단하여야 하며
목회자 자신의 영적 상태도 항상 점검해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다.
내가 교만한가를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내 마음에 누군가에 대하여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상대가 나보다 부족하고
실제로 많은 부분이 모자라고 연약한 사람일지라도
내 마음에 그를 무시하는, 내려다보는, 비판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교만이다.
"감히 나한테 ~~~~."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정말 교만한 사람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자기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간혹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들이
교회 내의 대중적인 장르의 음악에 대하여 상당히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클래식이 아니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한다.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서툰 연주에 거슬려
예배 시간 내내 은혜를 못 받는 경우가 있고,
악보를 잘 볼 줄 아는 사람은
예배 인도자가 찬양을 부를 때 음정과 박자를 틀리면
마음속으로 저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예배 인도를 하느냐고 불평을 한다.
그날의 예배는 실패하고 만다.
이것은 음악의 예를 살펴본 자기 기준이다.
한 가지 음식을 놓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맛이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맛이 있다고 한다.
맛이 있다 없다의 기준은
자기의 혀가 어떤 맛에 길들여져 있는 가에 따라 다르다.
나에게 익숙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기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각의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자기 기준이 확고한 사람들은
자기 기준이 자신을 넘어뜨리는,
예배를 실패하게 하는,
주님과 인격적 만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경험, 자기 기준, 자기 생각은
본인에게 익숙해져서 자리 잡은 정보일 뿐이다.
자기 기준이 틀릴 수 도있다는 생각을 갖고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비로소 진리가 내 안에서 역사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 남을 업신여기는 도구가 된다면
교회에서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예배만 드려라.
예배를 통해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을 만나라.
그럼 내가 얼마나 작은 자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적인 신앙생활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있고 인격적 만남이 있다.
각자의 시간대에 각자의 장소에서 하나님과 기도로 만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한다.
교회 공동체 안의 연약한 지체들을 긍휼히 여겨 섬기고,
겸손하며, 무례한 말과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삶 속에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있고
거룩과 경건의 삶을 살기 위해
날마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
지식과 기능, 능력, 은사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삶의 모습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며
가족과 이웃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선한 증거를 받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다.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이며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나갈 것이며,
주님 부르실 때에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자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로서
낙오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면 추구하는 것이 달라지고
따라서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주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길 원하고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죄와 사망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하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산다.
만약 교회를 다니면서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미움이 가득하고
불법과 속임수를 행하며
술과 세상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당신의 신앙은 거짓이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
유창한 기도문과 말솜씨가 아닌
오로지 그분을 찾고 찾으라.
그러면 그분이 당신을 만나주실 것이며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당신의 삶의 치유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초청하라.
당신이 성령을 간절히 원하면
성령이 당신에게 임하실 것이며
그분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아야 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5절~9절)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로마서 8장 16절)
신부
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온라인 교회)
'펀글모음 > 신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스천이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 (0) | 2020.08.02 |
---|---|
하늘에서 큰 자가 누구이겠느냐? (0) | 2020.07.31 |
신앙은 기억하는 것이다 (0) | 2020.07.31 |
가치 있는 말 (0) | 2020.07.31 |
신앙의 가속도 (0) | 2020.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