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이란 우리네 조상들이 영원했던 신앙방식으로
복을 구하는 신앙을 말한다.
그래서 아침 새벽 아무도 기르지 않은 우물물을 떠와서
자손이 잘 되라고 정성껏 빌곤 했다.
기복신앙의 특징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 할수록
축복이 빨리 그리고 많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일기도보다 천일기도가,
낮에 하는 기도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하는 기도가
효험이 있다고 믿는다.
무당을 찾아가면 오백만원짜리 굿보다
천만 원짜리 굿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복신앙은 성경적인 신앙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복 받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전도구호를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과 뜻을 순종하여 지키는 백성들에게
영혼이 잘 되는 복과 더불어 세상에서 잘되고 형통한 복도 약속하셨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영혼의 복이 임하게 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복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면 세상에서 잘 되고
부자가 되며 성공하고 자녀가 잘 된다고 여기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교묘한 함정이 숨겨져 있다.
목회자들은 하루빨리 많은 교인으로 교회가 채워져서
대형교회를 이루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예수만 믿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잘 드리고
십일조와 많은 헌금을 드리면서 목사가 시키는
희생적인 교회봉사를 헌신적으로 하면
세상에서 원하는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이유이다.
예배를 잘 드리고 희생적인 교회봉사를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인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의 조건은
성경에서 명령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지,
교회에서 가르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교회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종교행위가 비성경적이라는 게 아니라,
종교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한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종교행위를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성품과 생각,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켜보고 계시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에 참석하여 헌금을 드리고
교회조직을 지탱하기 위한 봉사를 하는 것으로 대체해버렸다.
교회의 이러한 가르침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기복신앙과 무엇이 다른가?
기복신앙도 복을 비는 행위가 얼마나 희생적인지를 보고 있지,
복을 비는 사람의 마음과 성품, 속내나 동기 따위는 묻지 않듯이 말이다.
우리네 교회도 삶의 현장에서 어떤 성품과 마음으로 살고 있으며
신앙행위를 하는 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축복의 조건이
무당이 말하는 기복신앙으로 전락된 이유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1:11~17)
하나님은 거룩한 성품과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와서 열정적으로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엄청난 헌금을 드리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을
가증스럽게 여기신다고 선포하셨다.
그러한 헌금을 외면하시고
기도를 많이 할지라도 듣지 않으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교인의 숫자와 헌금에 눈이 어두운 삯꾼목자들은
기복신앙을 들여와서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하나님께서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복을 쏟아부어주실 거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래서 평생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며
엄청난 헌금을 드린 당신의 현재의 모습을 잘 살펴보라.
교회의 목사들이 공언한 모습이 아니라면,
그동안 값비싼 등록금을 치른 것으로 만족하시고 이제 그만하시라.
다음으로 번영신학을 살펴보자.
번영신학이란 재정적 축복이나 물질적 풍성함이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신앙이 자신들의 물질적 부를 증가시킨다고 믿는 비성경적 신학이다.
번영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안정과 번영을 준다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서 성경을 이해한다.
번영신학의 교리는 개인적인 능력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비성경적인 신학이 대형교회를 넘어
초대형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성공을 꿈꾸는 목사들이 원하는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그리고 7,80년대의 우리나라의 교회부흥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필자의 인생도 여기에 희생이 되었다.
교회는 부와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로 커졌지만
재산을 교회에 쏟아 부으며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은
인생파산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갔다.
번영신학이란 하나님의 자리에
맘몬의 신이 앉아서 가르치는
사탄이 펴낸 가짜성경인 셈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번영신학에 현혹되어 교회마당을 밟는 교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중이지만,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겨서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성공하고 부자가 되려는 속내와 동기가 무엇인가?
자신이 소망하는 폼 나고 럭셔리한 삶이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 따위는 없다.
그러나 교묘하게 감추고 경건한 말과
헌신적인 종교행위로 감추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세상은 현장 예배 중심의 교회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적이고 희생적인 종교행위가 신앙방식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떠받드는 기복신앙과 번영신학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무능하고 무기력한 교회는 무너지고
양들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을 토대로 메가처치를 꿈꾸던
삯꾼목사들의 헛된 욕망도 같이 망하게 될 것이
불 보듯 환한 일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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