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먼저 우리는 이러한 갈증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 살펴보십시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생기를 부어주셔서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흙으로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흙을 뛰어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 주시고
위를 바라보고 살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위를 바라보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갈증을 느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바로 영원한 세계로부터 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듯,
한국사람들이 세계 어디를 가도 김치를 그리워하듯,
우리는 신령한 것을 그리워하는
영적인 존재인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만들었으므로
우리가 당신 품 안에서 쉴 때까지는
진정한 안식은 없습니다.”
우리의 근원을 발견하기까지는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적인 갈증은
어떠한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고플 때 밥이 없으면 빵을 먹어도 되겠지만
하나님에게 대한 주림과 배고픔은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있는 대용식품이 없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면서(삼하15:16-30)
유대 광야에 있을 때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여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63:1).
그리고 그가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시63:5)고 갈급하게 사모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그는 주님이 베푸시는 식탁을 그리워하며 만족해하였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갈급함을 가진 자들이
주님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배고픔과 갈증에 대해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건강하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고도 곧 우리는 배가 고프게 됩니다.
그래야만 다시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전혀 배고픔이 없는 자들이 문제가 있습니다.
식욕이 없다는 뜻이고 소화기관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갈증을 느끼는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이러한 초청에 응할 수 있는 자들도 이렇게 주리고 배고픈 자들입니다.
배부른 자들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2).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갈증을 느끼고 배고픈 자들이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깊이 비어 있는 잔에 주님이 부어 주시고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니고데모라고 하는 바리새인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한 밤중에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찾아 왔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요 유대인의회(산헤드린:유대인의 종교적 최고 의회)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밤에 주님을 찾아오게 된 니고데모의 심정을 헤아려 봅시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이요 산헤드린의 의원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인 사회에서 높이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었을 것이며
전혀 부족한 것이 없던 상류사회의 인사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율법적인 상류생활이 그를 전혀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되자
그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였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귀한 비밀을 설교하시며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데
그 말씀이 서기관의 것과 다르고 권세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주리고 배고픈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율법이 제공해 주지 못하는 생명을 공급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니고데모는 많은 것을 꺠달았습니다.
그는 외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후에 예수님을 법정에서 변호하였고(요7:50,51)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약 100근의 몰약과 향료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요19:39).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중요한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 받았다는 증거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니고데모도 증인의 삶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로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까?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배고픔이나 갈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증인의 영성까지 성장하게 되면
마땅히 구해야 할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게 됩니다.
증인은 주님의 양식을 공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더욱 이 양식과 그리스도를 목마르게 구하게 됩니다.
증인은 만나는 자들마다 생명을 공급하게 됩니다.
그것은 증인의 삶이 언제나 주님에게 주리고 주님에게 목마른 자로서
주님만을 구하고 주님만을 양식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윤남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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