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달리 인간을 구별하여 일컫는 학술적 용어 중에
[호모사피엔스]라는 말이 있다.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이 학술적 용어에 따른 사람의 사람 된 높은 가치는
동물들과는 달리 <생각하는 인간>에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없는 인간은 다만 동물성만 갖고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생각하는 능력, 생각하는 기능은
하나님이 특별히 인간에게 넣어주신 소중한 선물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에게 있는 가장 귀중한 기능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이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꾸 의심 쪽으로 진행되는 그릇된 형태의 생각이다.
생각하다 생각하다 의심으로 발전하게 되고 의심하는 쪽으로 계속 추리하게 된다.
‘그 사람 분명히 날 속이는 뭔가가 있어! 그 때 나를 피해가는게 수상 했어!
나를 따돌리려는 속셈이 있는게야’라는 식의 생각이
의심 쪽으로 자꾸 가다보면 결국에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유형을 에덴동산에 있었던<아담타입>이라고 한다.
‘정말 선악과를 따 먹으면 안 될까? 너무 맛있으니까 못 먹게 하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아! 하나님이 그러시면 안 되지.’ 라는 방식으로 의심하는 형태의 생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성인들이 의심의 병에 감염되고 있다는 것이 현대사회의 문제이다.
또 하나의 생각은 생각하면서 믿게 되는 좋은 방식의 생각이다.
‘아, 그 사람은 이러니까 분명히 그렇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생각해 보니까 확실히 이건 믿을 수 있다.
여태껏 해 온 것으로 봐서 절대로 배신하거나 실망 시킬 사람이 아니다.’
라는 유형의 생각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좋은 생각은 생각이 깊어질수록 믿음도 점점 깊어지게 된다.
이것을 <아브라함 타입>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무작정 길을 떠났고
아들을 주시겠다는 막연한 약속도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늘 그 약속을 생각하면서 ‘아! 하나님은 이루실 것이다.
지금까지 하시는 걸로 봐서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라고 믿음의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다.
[리차드 칼슨]은 <생각의 집착을 버리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것은 관점의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놓고도 어느 쪽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해결이 달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행복은 소유의 문제도 아니다.
지위의 문제도 아니고 지식의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생각하느냐의 것이다.
거기에 따라서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방향으로 좋게 생각하고
밝게 생각하는 그런 생각의 성향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범사에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에게 불행은 끝도 없이 덤벼든다.
계속 부정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부정하고
마지막에는 우울증에 빠지고 절망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첫째,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을 따져 보자.
생각할 때 멀리 있는 것까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마지막 궁극적 종말은 어디 있느냐를 생각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이다.
현재에 살지만 미래를 생각하고, 오늘에 살지만 끝을 생각해야 건강하게 생각할 수 있다.
둘째, 어떤 방향에서 생각하느냐 하는 것을 따져 보자.
흔히 말하는 대로<과거 지향적>이냐<미래지향적>이냐의 의미이다.
셋째, 집중력이다. 생각을 하되 건성으로 되어선 안된다.
깊이 생각하고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게 쉽지 않다. 집중에는 지속성을 요구한다.
한두 번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평생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만사를 모두 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말이다. 세상만사 다 생각하면
뇌가 미치도록 인체 구조가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지혜롭게 살려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최우선, 절대우선적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나마나한 거, 쓸데없는 거, 그 복잡한 거,
그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집중적으로 생각하되 최우선적인 것을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하되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생각 습관을 본 받을 필요가 있다.
그분은 오직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상급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었다는 고백을
서슴치 않고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고 있는 것이다.
내일 염려를 미리하는 어리석은 부지런을 떨지 말고
오늘이라는 공간에서 소여된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가는 생각의 기술을 키워보자. 할렐루야!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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