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끝이 우리 세대에 일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것을 목격하는 세대에게 축복과 재앙의 격류가 교차한다
지혜와 미련한 세대가 같은 장소과 시간속에 있고
영광과 진노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선과 악의 혼동속에 엉망진창이고
무질서하게 현혹되고 세뇌된다
현자는 때가 다 되었음을 알아차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신중하게 점검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개인의 자유가 최대치를 갱신한 후
점점 법령으로 제한되고 통제될 것이다
순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잃어버릴 것이 많은 사람은 순응할 것이다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은 등을 들고 주님을 기다릴 것이다
종말에 대한 메시지에는 서로 대비되지만
상호 보완하는 개념들이 있다
예를 들면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지만,
그 때를 분간해야 한다
종말론에 빠져서 일상사를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일상사에 너무 푹 빠져서 종말이 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면 안 된다
어떤 이는 그 날이 임박했다 말하고
어떤 이는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 날은 도둑같이 오실 것이라고 말하고(벧후 3:10)
그날이 도둑같이 우리에게 임하지 못할 것이라 한다(살전5:4)
그 날과 그 시는(the day and hour) 모르지만(마 24:36)
때와 시기(the times and seasons)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전 5:1~6)
그 날짜는 알 수 없으며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러나 표적들을 분간하며 깨어 준비하는 것은
크로노스에 사는 사람의 영역이다
미련한 처녀들과 악한 종들의 특징은
둘 다 버리는 쪽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남겨졌다
그 날과 그 시를 알 수 없다는 말씀에 과도하게 꽂여서 모두 버리는 쪽을 선택한다
오직 믿음의 교리에 과도하게 꽂여서 믿음의 증거인 선한 행위까지 던져 버린 것과 같다
종말에 대한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에는
이처럼 너무 방심한 쪽과 너무 과도한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위치한다
이 양극단 사이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자세부터 의심스러운 자세와 파괴적인 자세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그날은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지만
우리는 그날을 알지 못한다
특정한 시간에 목표를 정하거나
인내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종말론적 신앙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양지에 자리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 음지가 되고 심지어 조롱과 이단의 대상이 되었다
전통적인 종말의 개념은 초대교회부터 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는 때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 전반에 걸쳐 또는 사람의 일생에 걸쳐 주력이었으나
오늘날 종말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
현실도피의 방편으로 선택하는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교회건물의 크기와 훌륭한 프로그램같은 비본질적인 것들이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침입하여 변질되어 왔기 때문에
본질적인 핵심교리는 변두리로 밀려나고 말았을뿐 아니라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위장되었다
양의 탈을 쓰고 복음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배후에 자리잡은 어두운 면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신자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① 종말을 준비하는 그룹과 ② 종말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그룹이 있다
성경에는 이들을 대비하여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신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휴거 그룹 : 이긴 자들, 첫 열매들, 지혜로운 처녀들, 택한 자들,
상속자들, 14만 4천명, 양,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
환난을 통과하는 그룹 : 미지근한 자들, 미련한 처녀들, 익은 곡식,
기름이 충분하지 않은 자들, 준비하지 않은 자들, 염소, 악한 종들
필자는 그 날짜와 그 시를 알 수도 없으니
그날을 확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표적들을 살피며 때를 분간하려는 일은 계속해 나갈 것이다
"10년 안에는 오시겠지" "거봐 유월절이 지났잖아" 이런 자세보다는
"이번 오순절에는, 이번 여름 시즌에는, 이번 나팔절과 초막절에는.." 주님이 오실까! 기대하게 된다
이런 자세는 영적 긴장감과 영적 자극을 주어
세상으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보호해준다
기다림에 지쳐 기름이 떨어진 미련한 처녀들의 스토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시작은 10명이 했지만
끝까지 남은 사람은 5명이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인내에 성공하여
시험의 때를 면제 받은 것도 실상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우리도 경험한바와 같이
자유분방하고 분주한 스케즐에 몰입되어 살다보면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깨어 민감하게 자신을 준비하는 일은
억제되고 세속적인 환경에 타협하고
애착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게 마련이다
우리를 깨어 있지 못하게 만드는 빌미는
도처에 그 개념들이 보암직하게 질주하고 우리를 설득하려 한다
신부들의 변형과 주님의 날이 재빠르게 우리에게 접근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긴장하며 정한 때를 위해 준비하게 만드는 콘텐츠들이 올라오는 것은 다행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에 관심을 갖고 잠에서 깨어나 그 날을 대비하게 한다
우리는 마지막 시간 한가운데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주님께 더 집중해야 한다
마라나타~
출처: 카이로스
https://blog.naver.com/acoloje/22196528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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