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화장 / 이성훈, 정신과 전문의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미워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한다.
처음에는 뜨거운 것이 연약한 마음에 와 닿을 때
무척 괴롭고 고통스러워
이것을 어떻게 떨구어 내볼까 몸부림쳐 보기도 하지만,
점차 그 데인 마음의 살은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때로는 그 무감각한 상흔 속에
미움의 씨가 암세포처럼 점점 자라나기도 하여
미움이 분개와 증오심으로, 심하게는 복수와 원한으로
그 마음의 심층을 온통 지배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그 연약한 어린아이의 피부와 같은 마음은 속수무책이다.
모든 것이 미움과 원망의 뜨거운 불에 태워져
검은 마음으로 퇴색되어진다.
그 누가 자기 마음의 살이 검게 태워졌다는 것을 내보이려 하고,
또 이를 스스로 인정하려 할까?
사실 화장이란 피부의 탄력과 생기가 넘치는 젊은 여인에게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다.
화장은 여성으로서 성숙하면서 하기 시작하고
또한 자신의 원래의 모습을 감추고 꾸미기 위한 마음에서
대부분 출발한다.
특히 내 마음이 우울하고 어두울 때
화장은 더욱 화려해 지고 진해 진다.
가끔 TV를 통해 보는 연예인들의 찢어질 듯한 웃음과
미녀들의 흘기는 듯한 매력적인 웃음에서
어두운 색조가 스쳐 지나감을 감지할 때가 있다.
마치 아마데우스의 그 맑고 명랑한 음율 속에서
그의 슬픔과 우수를 느낄 수 있듯이
과장된 웃음 속에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인간됨에
한없는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기를 두려워한다.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는 마음이
나의 마음속에도 있다.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 의존하고 보호를 받고 싶은 마음,
열등감, 이기적인 욕심, 두려움과 무력감, 미움과 죄의식 등
우리 속에는 부인할 수 없는 가난하고 아픈 마음이 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남에게 드러내기를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거나
남들이 눈치를 챌까봐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숨기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꾸기 위해
마음의 화장을 하기도 하고 아주 마음의 성형수술을 해서
영구히 감추어 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우리는 치장하고 가꾸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할 때가 있다.
남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단정하고 검소하게 입어도 되는 의복인데
값비싼 의복으로 자신을 치장하려 하기도 한다.
자동차도 그렇다.
이제는 자동차도 더 이상 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일상 생활을 돕는 생활용품처럼 되어 가는 데도
더 크고 화려한 차를 찾는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내가 다니는 대학,
내 직업과 직장 등은 단지 생활의 한 영역과 기능으로서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마음을 화장하는 데 사용된다.
모두 열등감의 외적 표출이다.
열등감이 클수록 우리는 이를 화장하여 감추어 보려고
더 비싼 옷, 더 큰 차, 더 좋은 학교와 직장을 다녀야 된다고
강박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 만연되어 있는 과소비의 풍조 속에
혹시 이러한 가난한 마음을 치장해보려는 욕구가 없는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화장도 그 원래의 얼굴을 바꾸어 놓을 수 없듯이
아무리 화려한 치장도 나의 가난하고 허전한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때로는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밑 빠진 독처럼 채우고 채워도 끝이 없는
중독성 소비로까지 번져가기도 한다.
마음은 마음으로 채워져야 한다.
마음이 바깥의 것으로 꾸며질 수는 없다.
마음은 마음을 겸허하게 드러낼 때만이 그 치유가 시작된다.
서로 과시하고 오만을 내보이는 화장을 이제는 지우고
그 속의 가난하고 아픈 마음을 솔직하게 서로 내보일 때
그 마음은 평온해 질 수 있고 또한 위로 받을 수 있다.
조용히 마음의 거울 앞에 앉아
내 마음을 얼마나 두껍게 꾸미며 사는지
잘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나의 연약하고 가난한 그대로의 마음을 용납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그대로 드러내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줄 때만이
우리의 참 행복이 시작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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