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징계하실 때가 가장 좋은 것이다.
기도를 해도 말씀으로도 환상으로도 응답하지 않으시고 외면하신다면
사울과 같이 버림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징계한다는 것은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크고 깊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되돌아 보며
겸비하는 모습으로 회개운동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하심을 보고도
무감각하다면 그는 불쌍한 사람이다.
목자 없는 양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애끓는 긍휼하심으로 안타까워 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마9:36)
자녀를 징계하는 부모의 마음은 더 아프다.
우리 주님의 마음이 아프시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배의 소중함을 몰랐던 우리에게
코로나는 교회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깨닫고 알게 하셨다.
자유로히 마음껏 예배할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교회 안의 개구리였다.
그것도 청개구리처럼 살았다.
외부와 단절한채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
'고르반 '하면 그 누구도 말을 못했다.
믿는 사람들 끼리만 형제라 불렀다.
그러나 불신자도 모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며 우리의 형제 자매다.
집을 나간 형제를 비난하는 집안의 탕자가
남이 아닌 오늘날 나를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이다.
저들은 믿지 않으니 지옥 갈 존재로 불쌍히 여기기 보다는
나는 구원 받았다는 안도감으로
만족하며 산 것이 바로 '나'자신이다.
긍휼함도 진정한 그들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다.
솔직해지자.
불신자들을 진정으로 가슴에 품고
사랑했다고 말 할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가?
그 동안 우리는 습관처럼 예배하고
습관처럼 기도하고
습관처럼 사랑을 외쳐 댔으나
내 속에는 그런 사랑이 없었다.
나의 신앙은 앙고 없는 찐빵이다.
코로나로 평소에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이 귀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작은 모임 하나도 마음껏 할 수가 없다.
그 수많은 외식을 하면서도
외식 한번 하는 것의 소중함과 감사함도 없이
무조건 즐기기만 했던 삶을 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 모든 자유를 잃고
그 자유의 문이 닫힐 날이 올지도 모른다.
교회 예배당의 문도, 예배도,찬송도 마음껏 할 수 없는
박해의 때가 언제 이 땅에 도래할는지 모른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햇던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의 교회가 문 닫힌지가 벌서 70년이 넘었다.
신앙의 자유가 많다는 미국에서
코로나로 인한 집회 중지 경고를 무시하고 예배를 강행하다가
어느 목사님이 체포되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보았다.
이것이 어찌 남의 일이겠는가?
깨어나야 한다.
순교의 자리에 앉을 각오를 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내가 배교자가 될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가룟유다가 되고
이교도 앞에 무릎꿇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세계는 점점 박해의 강도가 더해 지고 있다.
중국에 있는 교회들이 파괴되고 불타고
수많은 나라에서 박해속에 눈물 흘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번 코로나가 기회다.
주께로 돌아와 신앙을 회복할 절호의 챤스다.
코로나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살길은 오직 주께 붙어있는 것 뿐이다.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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