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입니다.
우리한테는 항상 신앙이 기준이라는 얘기를 했더니 한 분이 그랬습니다.
“말씀은 맞는데요, 그렇게는 못 살아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잖아요.”
이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앙을 지키면서는 세상을 살 수 없습니까?
그러면 신자는 신앙을 지키지 않아도 별 수 없기로 하고 세상을 사는 사람입니까?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얘기는 대체 무슨 뜻입니까?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신앙은 만만합니까?
미국에 <인 앤 아웃 버거>라는 체인점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가 있고 서부 5개 주에 250개 지점이 있는데
신선한 재료만 쓰기 때문에 상당히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컵 밑바닥과 포장지에는 ‘REVELATION3:20’, ‘PROVERBS24:16’,
‘JOHN3:16’, ‘NAHUM1:7’처럼 성경 장, 절이 쓰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사업 확장에는 지장이 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법률이 다릅니다.
종교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하는 주도 있습니다.
그런 주에는 별 수 없이 성경 장, 절을 쓰지 않은
포장지를 쓰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점을 내지 않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돈을 안 벌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걸핏하면 하는 얘기가 먹고 살려면 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요?
사실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먹고 더 잘 살려니 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 욕심 때문에 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의 대표는 단연 돈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기는 애초에 틀린 노릇입니다.
예수를 믿기 위해서 써야 할 생명을 돈을 위해서 쓰는데
무슨 수로 예수를 믿습니까?
명심해야 합니다.
돈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예수는 절대 못 믿습니다.
사람들의 인생 목표가 죄다 돈이기 때문입니다.
바빌론 교리에 따르면 황금은 지옥의 똥이라고 합니다.
에릭 프롬이 이 얘기를 설명하기를 죽은 자의 세계인
지옥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은 똥이라고 하면서,
돈과 더러움과 죽음이 같은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이 한 얘기가 있습니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것이다.
설령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한테도 이 정도의 기개가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그만 못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하물며 돈 몇 푼이겠습니까?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얘기는 이미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까먹은 때문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에 빗대볼까요?
지렁이를 밟으면 꿈틀거리는 이유는 아직 덜 죽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죽었으면 꿈틀거릴 여지가 없습니다.
강학종
'펀글모음 > 신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 (0) | 2019.08.12 |
---|---|
자기를 부인하는 자의 삶 (0) | 2019.08.11 |
믿음의 기도는 기다림 (0) | 2019.08.11 |
실리적인 기도 생활 (0) | 2019.08.10 |
신앙은 영적인 싸움이다 (0) | 2019.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