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하나님은 마치 이 세상에
나 한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60억 인구와 온세상 우주 만물을 일일이 관여하시려면
얼마나 바쁘시고 힘드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나같은 사람을
마치 이 세상에 나 한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아찔한 사랑을 하신다니...
여러분은 믿어지십니까?
저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좀 더 가까이 하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함께 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최고의 사랑은 1대 1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1대 1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눈 앞에서 나의 얼굴을 보시고,
나의 코 앞에서 내 숨결을 느끼시고, 그것도 모자라
내 심장 속에 자리잡고 사시면서
함께 숨을 쉬십니다.(시139:1-4,17)
하나님은 내가 눈 한번 깜빡이는 것 조차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시며,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빠져버린 머리카락이 몇 가닥이고
아직 머리에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몇 가닥인지조차 날마다 세고 계십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어하는지,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지,
누구를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아이고... 큰일났네. 내가 응큼한 생각을 하고,
누구를 싫어하는지조차 다 알고 계신다는거야?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것들을 보시면서
책망하시는 게 아니라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하십니다.
정말 나의 눈길 한방에 훅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마도 바람에 파르르 나풀거리는 나의 솜털 하나까지도 그렇게 보실 것입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이런 아찔한 사랑과 관심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감사하고 고마운 느낌이라면 '서로 사랑'하는 게 맞고요
심히 부담스럽다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짝사랑'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일방적으로 짝사랑을 하게 하시렵니까?
아마도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듣고 본 한 문장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가 아닐까요?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 사랑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상 사랑이십니다.
이 말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서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은 3단계를 거치는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 반응하는 단계를 첫사랑이라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예수님을 처음 믿고 고백했던
'믿음의 첫사랑'시기가 있었습니다.
기도만 하면 응답이 되고 기적이 일어났던 '첫사랑' 시기가
길든 짧든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첫사랑의 신혼이 지나고 하나님에 대한 감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덤덤해지다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신데, 마치 외도를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스스로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도망다니는
'도망자'단계의 신앙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 번째 단계는 너무 친근하다 못해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인 아가(雅歌)의 사랑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하나님과 나의 사랑은 너무나도 깊고 오묘해서
거기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성경 아가서에서는 너무도 깊은 사랑에 빠져서
거기서 빠져 나오기에는 절망감을 느낄 정도라고 표현합니다.
사랑에 미쳤던 자신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떠올려도 좋고,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 속의 미치도록 황홀한 사랑의 스토리를 떠올려도 좋을 것입니다.
사랑이시라서 사랑밖에 모르시는 하나님과
3단계의 깊은 사랑, 최고의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신인일치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 최용우 -
'펀글모음 > 신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하고 게으르고 무익한 종의 핑계 (0) | 2019.04.16 |
---|---|
기도하고 기다려라 (0) | 2019.04.14 |
하나님의 생각 (0) | 2019.04.14 |
성도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 (0) | 2019.04.13 |
어제를 복사하듯 신앙생활 하지마라 (0) | 2019.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