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구원 받은 후의 삭개오의 삶이 궁금해요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 받은 마지막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죽으려 가시는 도중에 만나서
구원받은 막차를 탄 사람입니다.
구원이라는 복권을 탄 행운아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구원 받은 후
정말 복권이 당첨된 생활이었을까요?
글쎄요?
다음부터는 저의 상상입니다.
삭개오의 삶을 추리해 보면
1) 첫째: 국세청이라는 좋은 직장에서 해직 당했을 것 같습니다.
2) 둘째: 완전히 가정이 경제적으로 가난해졌을 것 같습니다.
3) 셋째: 사회 동료 직장에서 왕따 당했을 것 같습니다
4) 넷째: 회개가 쉬운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경험을 했을 것같습니다.
직장이 국세청인데 국세청이라는 관료 사회는
예로 자신도 구정, 추석 명절에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돈 봉투를 받고 받은 돈은 상관 또는 동료들에게도 상납하고 동료들과 나누어야
그 자리를 유지 하는 것 아닙니까? 안 그래요?
회개 후 이제부터 삭개오 자신이 부정한 돈 봉투는 절대로 안 받고
상관이나 동료들에게 돈을 상납 또는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겠다하면
옆 동료들은 국세청 관례대로 예전처럼 여전히 돈 봉투를 받고 상납도 하는데
자기 혼자서 깨끗한 척하고 적폐청산 한다고 하면 얼마나 주위에서 부담이 되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죄인은 죄인들과 함께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요,
죄인이 의인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불편한 법이며 동시에 의인도 불편합니다
아마 삭개오는 동료들한테 왕따 당하다가
결국 그 후 국세청 임직원 자리에서 해직되었을 것 같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 만난 후에 재산 반절은 사회에 헌납하고
부정한 돈 받은 것은 네 배(4배)로 갚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 모두 실천하면 돈 한 푼도 삭개오에게 남아 있었겠어요?
아마 이 약속을 모두 지키면 계산상 삭개오는
재정적으로 빈털터리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재산의 거의 다가 부정한 수입 이었는데
그것도 네 배(4배)로 배상하겠다고 했으니
자신의 통장에는 돈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삭개오는 주님 만나 회개하고 구원 받으니까
결과가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현실성이 있는 상상입니다.
회개는 순간이지만 회개 후 성화의 삶을 산다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다 반칙하며 사는데 나는 규칙대로 산다는 것이 쉽겠어요?
반칙이 문화가 된 세상 속에서 말입니다.
반칙을 잘해야 능력 있고 유능한 사람,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사회에서 말입니다.
1)예수님도 유대교 주류 사회로 부터 왕따를 당하셨고
2)요한 웨슬레도 영국 국교인 성공회로부터 왕따 당하여
교회에서 설교할 강단을 주지 않기에 할 수 없이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외치며
길거리로 나선 것이 감리교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3)세례요한도“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리라” 외치다가
사람도 없는 광야로 쫓겨나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된 것이 아닙니까?
들어줄 사람도 하나도 없는 광야에서 말입니다.
바른말 하기에 세례 요한은 광야로 강제로 추방된 것입니다.
구원 받은 기쁨은 순간이지만
구원 받은자로서의 삶은 동네에서 계속적으로 나타나야 하기에
더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좁은 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누가 19장)
우리는 이 말씀으로만 은혜를 받습니다.
구원 받은자의 삭개오의 가정이
동네에서 구원 받은자로써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좁은 문 인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는 그 자체가
바로 “좁은 문”입니다.(마태7장)
구원받은 자로써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주님을 이것을 좁은 문 이라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말씀 자체가 좁은 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화 과정(Sanctification)입니다.
구원 받은 후의 삭개오의 생이 궁금 하다는 이유는?
1) 우리는 구원의 기쁨만 생각합니다.
2) 회개를 후회와 비슷하게 여기거나 혼돈한다는 점입니다
3) 구원받은 기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구원 받은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좁은 문입니다.
제 상상입니다마는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부부 싸움 하지 안 했을까요?
예전에 구원 받은 자의 삶이 미처 이런 줄 몰랐다고 말입니다.
신학에도 균형이 잡혀야 하는데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번영 신학에만 치우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결단과 좁은 길의 삶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합니다.
- 이용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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