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글모음/간증과 일상

찬양사역자 강정남님과 주고받은 카톡 1

007 RAMBO 2019. 1. 13. 00:41


이분과 동역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순복음 원당교회에 다니시는데,

제가 원당역 근처에서

3년 동안 살았고

그 전에 일산에서 10년 동안 살았습니다.


1월 08일 김정은 생일

1월 10일 강정남 결혼기념일

1월 12일 김준현 카톡보낸날

(걍 끼워맞춘 검다 ㅋ)


두 아드님 3살 터울

저와 여동생 3살 터울

저와 정남님 3살 터울 (제가 연하)

제 생일 3월 3일


저는 작년 말부터 기도원 인근에 있는

지인의 집에 얹혀 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어둡지만

은혜는 많이 받고 있고

과거에 눈물로 많이 뿌렸으니까

머지 않아 기쁨으로 거두게 되리라

미꼬 있슴다~~^^














안녕하세요? 주의 은혜로 인사드립니다.

한국찬양사역회, 국민일보, 오산리기도원, ccm 찬양사역자, 작사, 작곡자, 강정남입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희 집에 작은 아들이 중3, 고1 때 두 번이나 깡패를 만나 봉변을 당하여

그 충격으로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깡패에 대한 마음의 분노, 죽고 싶다는 우울한 증상 등이 있어

예수이름으로 마귀 대적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찬양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명령, 선포하게 하는 찬양을 자작곡으로 주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놀라운 하나님 은혜입니다.


예수이름으로 대적하는 기도와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찬양을 통하여 작은 아들 3가지 증상을 하나님 완전히 치료해주셨고

이 찬양을 계기로 기적의 하나님께서 작곡에 무지한 부족한 저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작사, 작곡의 능력을 부어 주셔서 2015년 1월에 2집, 3집 음반 자작곡 25곡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너무 사랑하사 새로운 찬양에 은혜 받게 하시려고 부족한 저를 작은 도구로 쓰셨습니다.


또한 지난 2012년 3월에 하나님께서 음반1집과 함께

전도용으로 작은 간증책을 출간하는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친정 어머니께서 제4살 때 소천 하셔서 어린 시절의 고난그 동안 하나님 만났던 체험,

전도 노하우 등을 제 자존심 다 내려놓게 하시고 오픈하여 눈물로 간증 책을 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기적으로 주신 모든 찬양과 작은 간증 책을 통하여

많은 성도님 은혜 받으셔서 온전히 내적치유 받으시고 모든 기도에 응답 받으시고

특별히 열심히 복음 전하여 주님께 기쁨을 드리시고

많은 상급과 주님 만나면 잘했다 칭찬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기적의 하나님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지금도 시간 날 때 마다 작사작곡을 합니다.


2016 1월 지금까지 찬양을 작사 300곡 하나님 쓰게 하셨고

작곡 150곡 넘게 기적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앞으로 제 생애 찬양 작사시 3000곡을 하나님께 드리게 기도하며 준비합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낮아진 마음으로 기쁨을 드리길 원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다 돌리며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주신 주님 바라보며 언제나 힘냅시다


파이팅!!!

감사합니다.





05 고통의 시련 속에서도


중학교 떄 어느날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언니가 먼저 출근하기 위해 일어났어요.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나 저를 겨우 밖으로 끌어내어

의식을 찾고 눈을 떴을 때 머리가 빙빙 돌았습니다. 

어찌나 어지러웠든지 그 때 언니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언니들을 통해 저의 사랑을 계획하셨던 섬세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나 감사한지요.


바다 같은 주의 사랑 내 맘 속에 넘치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둘째 언니는 여수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언니가 시집간다 하니 기쁜 마음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저를 두고 가족회의가 열려졌어요. 

앞으로 저는 작은 오빠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고

고등학교 공부는 내 위에 6살 많은 언니가 공부시키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의논하는 동안 혹시 나는 고등학교를 못가게 될까봐 걱정하며 많이 울었었죠. 

주님의 은혜로 오빠, 언니들의 도움의 손길을 받았습니다.


작은 오빠 집에 살게되어 고마웠지만

작은 울케 언니께서 재개발되어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판자집을 사셨습니다.

오빠집이 판자집이라 사춘기에 오빠 집 출입할 때 얼마나 창피했는지 누가 볼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어요.


작은 오빠 집에 살면서 창피함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추위였습니다. 

오빠 집 방 한 칸에 조그만 다락방에 있었는데

저는 그 다락방에 기거하면서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한 겨울엔 너무 추워 염치불구하고 오빠, 언니, 조카 들이랑 같이 한 방에서 잤어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작은 오빠 가족이 주공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제가 사용하던 작은 방은 보일러가 제대로 안 되어 추위는 여전했습니다. 

언니한테 얘기하니 1인용 전기 장판을 사주었어요. 

작은 올케 언니 몰래 잠깐씩 사용하다가 들켜버렸습니다. 

작은 올케 언니는 어찌나 무섭게 화를 내시던지...


추위를 많이 타는 저는 얼른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취직하여 독립하고 싶었어요.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크게 위로된 말씀이 있었습니다. 

작은 오빠집 가는 길에 코팅해서 선물 받은 시편 23편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니니

내가 야훼의 집에서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 말씀이 마음이 편안하고 좋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습니다.

사랑하고 의지했던 둘쨰 언니는 시집가고

큰 언니와 저 위에 언니는 부산에서 살게 되어 정말 외로웠을 때였거든요. 

이 말씀이 가슴에 너무 와닿았습니다.



 

06 부모님을 떠나 보내고


교회에서 10년 넘게 주일학교 교사 봉사를 하셨다는 친정 아버지께서는

새 어머니께서 우리집에 오시고 부터 교회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얼굴도 준수하셨고 노래도 잘 부르셨습니다. 

또 그림까지 잘 그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능에 달란트를 아버지께 주셨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끼를 닮아 그림에 취미가 있어

미대에 갈려고 했었는데 형편상 접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직접 그려 친구들에게 선물도 주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밥을 먹으면 제 밥 위에 생선살을 발라얹어 주시던 자상한 아버지,

언니와 자취 할 때도 연탄 가스 조심하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습니다. 


결혼하여 명절날 집에 가면 우리 예쁜딸 왔냐며 반갑게 맞아 주셨던 아버지,

학교 다닐 때 아버지께서 리어카에 시장 물건을 실어 일하시던 모습이 창피하여

자주 찾아가지 못하고 가끔씩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 주시며 어시장에서 국밥을 사주셨습니다.


소천하시기 몆 달 전에 교회 다니시는 큰 오빠와 둘째 언니와 저는 아버님 모시고 동네 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목사님 안수 기도도 받으시고 그 뒤로 당신 스스로 교회 나가셔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자상하셨던 친정 아버지께서는 80세에 위암으로 소천하셨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천국에서 만나요.

아버지께서 소천하시고 새 어머니께서도 몇 달 뒤에 당뇨 합병증으로 소천하셨습니다.


새 어머니께서 편찮으실 때에 신앙고백을 따라 하셨고

중환자실에서 의식은 없었지만 귀는 들으실 수 있다 생각하여

둘째 언니와 함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찬양을 불려 드렸습니다.

 

 

작은 언니와 부산에서 자취하며 살던 스무살 가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일찍 만나게 하여 3년 반을 교제하다가

스물 네살 되던 88년 1월 10일 날 결혼 하게 되었습니다.

3살 터울로 두 아들을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랑이 많아 저를 10살 때부터 거둔 둘째 언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구역장 직분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남편과 같이 여의도에 사는 둘째 언니 집에 놀려갔어요.

언니 집에서 맛있는 비빔냉면을 해주셨었요. 

이렇게 맛있는 비빔냉면은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언니의 음식 솜씨는 여전히 훌륭했어요.

맛나게 먹고는 한강에 바람 쐬러 나갔습니다.

언니는 이 교회 다니고 있어 오늘 주일날이니까 교회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자

, 그래 


교회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듣던 대로 교회 안은 매우 넓고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 예배를 드리고 계시던지

예배드리는 성도님들의 모습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쉴새 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너무 편안하고 기뻤습니다. 

저에게 하나님께서 한 없는 평강과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신유시간에 기도 할 때 초등학교 때부터 빈혈이 심해 약을 먹으며 고생하여 왔는데 하

나님께서 이제 결혼도 했으니 자녀도 낳아야 됩니다. 

제 빈혈을 치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빈혈이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 확실하게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하여

지금부터 30년 전 순복음원당교회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아들들도 아직 어리고 부족한데,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에 순종하여 

25년전 구역장 직분을 5년 감당하고 지역장 직분을 17년 감당하였습니다.